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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을 걷는 사람들 Oct 08. 2018

미투(Me too)를 넘어 위드유(With you)로

#6 [민주경희 기고글-2018년 4월]

아래의 글은 경희대학교 총 민주동문회 동문회보 '민주경희'에 2018년 4월에 기고한 글입니다. 

처음 학부 때는 사학을 전공했지만, 연세대학교 심리학과에서 학부와 대학원(사회심리학 전공)을 졸업하고 10년 넘게 그와 관련된 일을 해왔네요. 경희대 총 민주동문회 사무국에서 제게 '심리학으로 바라본 세상'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달라 말씀해주셔서 2017년 11월부터 2018년 10월인 현재까지 매달 기고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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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문이나 방송, 그리고 SNS에서 가장 많이 듣고 보는 단어 중 하나는 ‘미투’가 아닐까요? 2017년 10월 미국의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과 성희롱으로 비롯된 미투 운동은 사회운동가 타라나 버크가 ‘#MeToo’라는 해시태그를 사용하면서 확대되어 전세계로 퍼져 나간 캠페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지현 검사를 통해 법조계의 성폭력, 성희롱이 폭로됨으로써 공연계, 문학계, 영화계 등에까지 확대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정치권에서도 미투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습니다. 


미투 운동은 성차별적인 고정관념과 편견, 권위에 대한 복종, 주변 사람들의 암묵적인 동조, 그리고 개인-상황 논쟁, 귀인(Attribution) 등 온갖 사회심리학적인 주제가 포함된 꽤 흥미로운 주제이기도 합니다. 

미투 운동의 주체로서 성폭력 피해자들은 대부분 다음과 같은 공통적인 과정과 상황을 경험합니다. 권력(귄위)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 지배하는 집단으로의 편입, 개인의 의지와 무관한 권위에의 복종, 집단 내 구성원들의 묵인과 동조, 그리고 불합리한 피해자 개인에 대한 비난이 바로 그것입니다. 


문화 차이에 대한 연구를 하는 사회심리학자들은 우리나라를 집단주의 문화권으로 분류합니다. 일부에서는 권위주의가 만연한 문화권으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특히, 문화예술계는 도제식으로 스승-제자라는 위계질서가 존재하며, 정치권도 권위주의 의식이 만연한 곳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집단에서는 한 개인의 일탈을 용납하지 않으며, 개인적인 의견은 무시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래서 내부 고발자들은 집단 내부의 문제를 개선한다는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단합을 저해한다는 역기능을 초래하는 장본인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성차별과, 성폭력, 성추행 등은 드러나기 쉽지 않습니다. 

이전까지 없었던 문제도 아닌데, 도대체 왜 이제야, 그런 문제들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밝혀지는 것이며, 피해자들은 왜 지금껏 침묵하고 있었을까요? 


Milgram의 전기충격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1961)

심리학에서 너무나 유명한 스탠리 밀그램(S. Milgram)의 실험(1961)은 권위에 복종하는 인간의 모습을 잔인할 정도로 솔직하게 묘사합니다. 실험 참가자들은 선생님의 역할을 하며, 학생 역할을 하는 사람은 실험자와 서로 미리 계획하여, 연기를 하게 됩니다. 실험 참가자들은 학생이 과제를 틀릴 때마다 전기충격을 주게 되는데 처음에는 16V의 약한 전기충격을 주고 실수가 반복될 때마다 전기충격의 강도를 올리게 됩니다. 물론 학생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전기충격을 전혀 받지 않고, 충격을 받는 척만 합니다. 그런데 점점 전기충격을 올리던 실험 참가자들은 괴로워하는 학생을 보며, 전기충격을 주는 것을 망설입니다. 이때 실험자는 모든 책임을 지겠으니 강도를 계속 올리라고 말합니다. 결국 실험 참가자들 중 65%(40명 중 26명)은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450V까지 전기충격을 주게 됩니다. 이 실험을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요?


히틀러의 명령에 따른 유대인 학살, 5.18 광주에서의 군인들의 발포상황, 그리고 한 극단 대표의 성폭력과 성추행, 이 모든 것들은 권위에 대해 복종하는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이죠. 물론 35%의 실험 참가자들은 실험자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무려 65%가 실험자가 책임진다는 말, 하얀색 가운, 하버드대의 권위에 굴복했던 것이죠. 미투 운동의 당사자들, 피해자들은 아마도 이런 권위적인 분위기에서 거부하거나 ‘No’라고 이야기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당연히 그 집단 내의 주변 사람들 역시, 권위에 굴복하고 침묵하면서 동조했겠지요. 


한편, 기본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라는 오류는 어떤 행동이 원인이 상황에 있음에도 개인에게 그 원인이 있다고 보는 대부분의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오류입니다. 특히, 타인의 행동에 대해 그러한 현상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왜 거부하지 않았느냐’, ‘왜 싫다고 말하지 않았느냐?’라고 묻는 건 바로 이 기본 귀인 오류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 학살에 대한 전범 처리 문제나 친일파에 대한 단죄 여부 등과 같은 역사적 문제를 다룰 때, 자주 등장하게 되는 질문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명령하는 자와 명령에 따르는 자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입니다. 일반적으로 불합리한 명령에 따르지 않은 35%에 속한 사람들은 불의에 맞서고, 신념을 굽히지 않은 자로서 칭송을 받습니다. 반면, 명령에 따른 65%는 불의에 굴복하고, 자신의 신념을 저버린 자로 비난을 받습니다. 이 글에서는 옳고 그름의 문제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35%의 실험 참가자들이 개인의 소신을 지키는 가운데서도 권위에의 복종 현상이 65%의 실험 참가자들에게 나타났다는 점입니다. 


최근 미투 운동의 당사자들인 피해자들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조직 내 권위적인 문화에 굴복하지 않고 소신을 지킨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을 비난하지 말고, 권위를 빌어 성폭력, 성추행 가해자가 된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미투 운동은 암묵적인 동조와 권위에의 복종을 거부하고, 첫발을 내디딘 작은 움직임입니다. 오히려 박수받고 격려받아야 할 행동이기도 합니다. 미투 운동의 당사자들로부터 시작된 작은 움직임과 주변 사람들의 동조현상이 ‘위드 유’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얼마 전 제 아내가 잠들기 전, ‘요즘 남자들 전부 미투 운동 때문에 벌벌 떨던데, 당신은 그런 거 없어?’라고 장난스럽게 묻더군요. ‘뭐 누가 미투라고 할 만한 건 없는데?’라고 대답했지만, 돌이켜보면, 술자리에서, 남학우들끼리의 시시콜콜한 농담에서 요즘 기준으로 보면 약간 비판받을 만한 행동은 한 것 같았습니다. 저 역시, 연애시절부터 결혼한 이후까지, 아내로부터 들었던 수많은 이야기에 대한 침묵하는 동조자였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딸아이를 키우게 된 아빠로서 이제야 느끼게 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무언가 한꺼번에 바뀌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함께 하는, 동조하는 한 사람으로서 작게나마 응원해봅니다. ‘위드유’라고


밀그램 실험 그림 출처 : 

https://blog.naver.com/wjdtkd1227/221230809543

[참고문헌]

Milgram, S. (1963). Behavioral study of obedience. Journal of Abnormal and Social Psychology, 67, 371-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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