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그리고 소비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고 치료를 위해 다닌 지도 2년이 되었다. 그동안 난 무엇이 좋아졌을까? 하고 생각을 하다가, 좋아지긴커녕..이라고 생각을 했다가, 나름 2~3년간 인생에 가장 큰 전환점을 맞게 된 많은 일이 있었으니 덕분에 더 나빠지지 않고 잘 버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싶다.
처방받은 약과 간단한 의사의 조언이 없었더면 내가 이만큼 버티고 잘 지낼 수 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큰맘 먹고 돈 쓴 보람이 있네.
약 없는 하루를 지내보았다가 하루 종일 일도 제대로 못 하고 뭘 하는지 모르게 시간을 보내게 되었던지. 그런 내 모습을 보는 것도 한심스럽고, 일이 밀려서 다음날 더 힘들었었다. 악순환의 반복을 끊어내기, 그게 병원을 계속 다니는 이유다.
꽤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우울증을 의지로 이겨내려던 적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병원에 갈 시간과 돈 몇 푼이 그토록 아까웠었다. 그때 내가 조금만 날 위해서 시간과 돈을 써서 병원을 다녔으면 현재 삶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이미 다른 선택을 하고 지나왔던 시간들에 대해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분명히 조금이라도 더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거라 생각을 한다.
그깟 병원비 몇 푼, 그게 뭐가 그렇게도 무섭다고 그것을 못 쓰고 살았을까.
이혼을 결정하고 19년을 함께 살았던 남편이 집을 나간 후, 내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치과였다. 10대 때부터 튀어나오고 울퉁불퉁했던 치아에 대해서 약간의 불만이 있던 나였다. 그래도 10대와 20대에는 나름 개성 있다고 볼 수 있을 정도였으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못생긴 치아는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학생 때는 부모님이 동생의 치아가 더 못생겼다는 이유로 동생만 교정을 해주셨고, 20대에 돈을 벌면서는 일하느라 바빠서, 그리고 모은 돈 모두 결혼자금에 쓰느라 큰돈 들어가는 교정을 하지 못했다. 결혼 이후에는 외벌이에 부족하면 시댁의 돈을 받아 쓰는 입장이라 당연히 상상도 못 했었다.
이혼을 했다고 해서 결코 경제적 상황이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소심하기 그지없는 나의 급여와, 또 그만큼 소심한 양육비로 남은 네 식구 한 달 살이를 겨우 할 수 있는 정도였으며, 그것조차 1년 뒤 첫째가 법적 성인이 되면 그마저도 줄어들터였다.
그래서 그게 뭐. 이런 거 저런 거 다 따지다가 보니 20년이 지나있던데.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나는 큰돈과 많은 시간이 들어가는 교정을 시작했다.
고3인 첫째가 갑작스럽게 진로를 정하고 1년이 지났다.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나에게는 거대하던 학원비도 일단은 끝이 났다. 그리고 나는 성형외과로 달려갔다.
안검하수.. 를 핑계로 한 쌍꺼풀 수술. 사실 이혼결정 직후에 치과와 동시에 달려가려고 했으나 학원비 때문에 나름 참았던 것이었다. 퉁퉁 붓고 멍투성이인 나를 보고 아이들이 한 마디씩 한다.
"근데, 난 성형수술 같은 거 왜 하는지 잘 모르겠어. 자존감의 문제인가? 그리고 너무 무서워."
"그렇지, 나도 무서웠어. 자존감의 문제일 수도 있지, 인정. 근데 너도 늙어봐. 그리고.. 그냥 눈을 떴는데 천장이 보여!! 시야가 엄청 넓어졌어!!(처진 눈꺼풀로 인하여 위가 보이지 않았었다)"
안 그래도 우울해 보이던 얼굴이 우울증과 나이로 인하여 더욱더 우울해 보이는 얼굴이었는데. 이걸로 외모의 변화와 함께 내면의 변화도 찾아오려나.
이혼 후, 긴 결혼생활 중 나는 나를 위해서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 사고 싶었던 것은 (핑계일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누가 시키지는 않았지만 나는 내 입에 들어가는 것, 내가 걸치는 것, 심지어 내가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것에서조차 눈치를 보고 살았었다.
나는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이가 없었더라면, 혹은 내 돈이 많았더라면 그 긴 시간 중에 나를 위해서 무엇을 꼭 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치과'와 '성형외과'였다.
더 늦기 전에, 나를 위해 돈을 써보기로 했다. 있어서 쓰는 돈이 아니기에 오래 가장 친한 친구인 죄책감이 자꾸만 찾아오는데, 애써 외면하고 쫓아내고 있는 중이다.
눈치 보지 않을 수 않고 돈을 쓸 수 있는 상황을 20년 동안 바라왔다.
나이 마흔 중반에, 나를 위한 첫 소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