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겨우 꺼내보려 하는 이야기.

긴장감 넘치는 가정, 폭력에 노출된 아이. 01

by 누리달


내 기억 중 가장 어린 시절의 기억은..

긴장감 넘치는 가정, 폭력에 노출된 아이. 01

단칸방,

방 중앙까지 햇살이 너무 예쁘게 들어와 앉아있던 오후,

그리고 아빠.


"아빠는 회사에 있어야 할 시간에 왜? 무슨 일이 있나?"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아마도.. 아버지는 무언가 엄마에게 화를 내고 있었을 것이다.


많은 기억은 왜곡되어 있기에 현실과는 다를 수 있다. 그저, 나에게는 그러한 상황과 감정이 첫 기억이다.


어린 시절 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 대부분 '분노하는 모습'이었다. 양쪽 친척들을 향한 분노. 뉴스에서 정치인을 향한 분노. 어느 이웃이나 엄마의 맘에 안 드는 행동과 대한 부정적인 평가.


화를 내시고, 또 화를 내시고, 밤 새 화를 내셨다.


본인의 형제들에게도 늘 불만이셨지만, 본인의 처가에 대해서도 그러했다. 특히 명절 다음이면 나는 늘 한참을 욕을 들어야 했다. 그 수많은 것 중 하나는 '장모님은 본인 아들만 챙기고 차별한다'였다.


하도 많이 들어서 나는 그것이 사실인 줄 알고 외할머니에게 편지도 보냈다. 아마도 내용은 이런저런 말 끝에 "할머니, 우리 아빠도 예뻐해 주세요"라는 것이었을 것 같다.


어린 마음에 늘 그것 때문에 속상해하시는 것이 싫었기에 도움이 되고 싶었고. 또한 그분이 직접 장모에게 하지 못 하는 말을 내가 전달해 드림으로써 조금은 해결이 되어서 제발 불평 좀 그만 들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뭐. 아무 의미 없는 노력이었지만.


늘 나를 가장 예뻐해 주시던 외할머니는.. 그 편지를 읽고 어떤 기분이셨을까.


차별이 이루어졌는지 안 이루어졌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설혹 그렇다 해도 어쩔 것인가. 아들이 더 귀하던 시대였는데.


그만큼 어린 나에게는 아빠가 표현하는 세계가 전부였으리라.






그 시기의 많은 분들이 그러하셨다지만, 아버지의 옆에는 늘 녹색병이 있었다. 어린 기억에도 술 드시고 아침에 제시간에 출근 못 하시는 날도 많았고, 심지어 평일 하루를 꼬박 앓아누워 계시는 날도 있었다.


어린 나는, 이럴 거면서 왜 돈도 없는데 술을 드시는지 백만 번을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고, 그래서 이상형이 '술 안 먹는 남자'였다. (물론, 나도 성인이 되자마자 술을 마셨지만 ;;)


보통의 직장이었다면 잘렸겠지만, 큰아버지와 같이 일을 하시다가 어느 즈음부터 분리되어 나와서 혼자 일을 하셨으니(도와주는 직원이 있었을 때도 있던 것 같다) 가능한 일이었다.


내 아버지는 무척이나 예민한 사람이었다.


어느 시간에 내가 라면을 끓여먹으면 왜 이 시간이냐며 라면 냄새난다고 뭐라 하셨고, 전화 통화를 하면 전화를 길게 한다고 뭐라 하셨다. 그런 것들이 반복되다 보니 그럼 도대체 어느 시간에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워졌다.


집 안에서 아버지와 있는 시간은 늘 긴장상태였다. 지금의 언어로 하면 '워라벨'인데, 그 시절에 그것을 챙기신다고 일곱 시만 되면 집에 오셨다. 휴대폰이 생긴 뒤에도 그러셨다. "내 식구들과 저녁시간은 중요하니까"라며 퇴근시간 이후 휴대폰을 꺼 놓는 것을 자랑처럼 말씀하셨다.


집에서 아버지가 없는 시간이 마음이 편했던 만큼, 나는 종종 늦게 들어오시길 바랬고, 늘 돈 문제를 끌어안고 사셨으니 그 시기에 나는 '노동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두 시간 즈음 더 전화 켜놓고 물건 주문이라도 받으면 좋은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이야 나도 성인이 되었으니 퇴근하고 와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게 말씀하시고 집에 일찍 오셔서 가족들의 모든 일에 간섭하시고 온갖 것에 화만 내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 싫었던 사춘기였다.


자기 계발? 공부?

그런 모습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 그리고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모습을 유지하시는 중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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