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어차피 나에겐 선택지가 별로 없었으니 첫 직장이고 나발이고 아무 상관없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구직 사이트에서 전화 상담직을 열심히 뒤적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상담심리 말고 보육교사 과정을 취득할 걸. 그랬다면 지금 쯤 그나마 나이 제한에서 조금 자유롭게 취직은 가능했을 것이고 난 아이들을 돌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쓸데없이 시간 낭비했나 싶었지만 그때에는 정말로 나는 심리학이 재미있었고, 특히 청소년 상담에 마음이 쓰였다. (내 우울했던 십 대를 치료하고 싶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혼자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이 있었지만 당장 돈도 벌어야 했으니, 최대한 시간이 짧은 쪽으로 검색을 하고 그 분야 말고도 몇 군데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았다.
몇 년 전.. 그러니까 코로나 시작 직전에도 영업 관련 상담 업무를 몇 달 하긴 했었다. 당시 불안정한 심리 상태로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스트레스받으며 맞벌이를 하다가 이러다간 몇 푼 안 되는 돈 벌다가 이혼하자고 하고 싶어지겠다 싶어서 그만두었지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로 남편도 직장을 잃었다)
그런데. 다시 그 분위기에 들어가려니 시작 전부터 심장이 두근거린다. 면접에 늦지 않게 가면서도 느릿느릿 무거운 발걸음을 질질 끌고, 도착해서 익숙한 그 분위기를 보면서 또 숨이 턱 막히고. 숨도 잘 안 쉬어지는 것 같아서 티 안 나게 계속 호흡을 크게 하고.
칸막이가 있는 좁은 자리에 앉아서 하루 종일 고객들을 응대하는 것도 모자라, 영업 실적까지 신경 써야 하는 일이었다. 단순 안내하는 상담 일은 일단 나이 제한에 걸렸고, 또 하루를 전부 써야 하는 일들이었기에 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과연 여기서... 잘 버틸 수 있을까.
그렇게 숨을 쉬는 것을 처음 배우는 사람처럼 생각을 하면서 숨을 쉬다가.. 그곳에서 나와서 한참 만에야 편안하게 숨이 쉬어지는 것 같은 느낌에 공황장애가 시작된다면 이런 기분일까 싶기도 했다.
불합격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안 한 것이 아니라 면접에서 떨어져서 일을 못 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좀 낫지 않을까? 그런데 또 내 무의식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나 자신이 싫어진다.
나는 내가 지금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한다는 현실보다, 나도 돈을 버는 쓸모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서 이렇게 나왔다는 이유가 더 큰..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책임지지 못하고 고작 그것밖에 안 되는 무책임한 인간이라는 것인가?
나는 돈이 필요하다. 그것은 현재 내 현실에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그것을 잘 알면서도 이 와중에 나는 이것저것 따지고 드는 한심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면접을 보고 나와 들른 다이소에서 물건 정리를 하고 있는 분들이 부러워 보일 만큼 나는 그곳이 싫게만 느껴졌던 것 같다.
결국 나는 일을 시작하긴 했다. 그래도 새로 교육받거나 공부를 해야 할 일도 없어서 시간을 뺏길 일도 없었고, 업무 시간도 짧게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시간 내내 기계처럼 앉아 '안녕하세요'를 반복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성과에 대해 압박을 주지 않는다면 모르는 사람들에게 거절당하는 것쯤이야 상관없었는데.
막상 사무실에 들어가 보니 성과 압박은 잘 모르겠지만, 빈자리가 가득 있는 곳이었다. 황량한 분위기에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도, 말을 할 시간도 없었으며 첫날부터 점심도 혼자 먹었다. 어차피 짧은 시간의 단순 알바였으니 사람들과 섞이는 것도 싫어서 그런 것을 기대했으면서 막상 그런 환경이 되니 어색하고 도망하고 싶은 나의 이중적인 마음을 어찌해야 하는 것인지.
어색한 사무실 분위가 와 더 보기 싫은 나의 모습에서 그냥 무조건 도망치고만 싶어졌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이전에 면접 본 유치원 보조 단순 업무 면접에서 나는 이 일이 아니면 안 된다고 무조건 하고 싶다고 열정 넘치게 보일 걸. 그저 멍- 하며 소심하게 다 괜찮아요 하고 나왔는데.
최저 시급도 안 되어 현재 일을 시작한 곳 보다 급여가 더 적었던 그 일자리가 왜 그렇게 후회가 되던지.
그렇게 내 마음 한편에서는 무언가를 계속 후회를 하면서 동시에 새로 일을 시작한 그 회사에서 일을 하지 못 하겠는 이유를 계속 찾고 있었다.
첫날 일을 끝내고 돌아와 멀미가 날 것 같은 기분으로 계속 다른 일자리를 찾았지만 뭐 특별할 것이 있을 리 없었다. 문제는 그 회사가 아니라 나였는데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계속 제자리를 빙빙 돌며 땅만 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