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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달 Oct 22. 2022

중년 그리고 사회 초년생 01

그저 자존감도 자기애도 낮은 가정주부


일을 해서 돈을 벌기로 마음먹고 알바몬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면 볼수록 내가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만 깨닫고, 또 좌절을 한다.


모르고 있던 사실은 아니었다. 경력 단절도 아니고, 단절될 경력조차 없던 나였다. 20대 초반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다고 생각해서 우연히 들어갔던 상담 센터에서 돈을 좀 벌다가 그대로 결혼하고 육아만 하던 나였으니 사회의 어딘가에서 쓸모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게 벌써 20년이 다 되어간다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더라.


나름 재미있게 시작해서 공부했던 사이버 대학교의 졸업장은 취업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 이상의 자격증도 필요하고, 또 경력도 필요하다고 했다. 자격증 따려고 준비를 하다가 코로나19로 뒤틀린 일상에 무너졌었다 (- 핑계다. 나는 당시 살기 위해..라는 이유로 마음공부를 선택했으니)


아니. 일을 하려고 공부를 했는데 경력직만 찾으면... 내 경력은 어디서 챙겨야 한단 말인가.


나는 하다못해 그 흔한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증조차 없었다. 2년 전 엑셀 공부를 하려고 구입했다가 못 하고 있던 묵은 책을 다시 꺼냈다. 들여다 보고 혼자 공부를 하다가 과거의 나에게 짜증이 났다.


도대체 넌, 왜 아무것도 안 하고 살았던 거니?


그렇게 또 자기비판을 시작한다. 그건 아주 오랜 습관이었다. 나는 그렇게 나를 공격하고 나서 지금 현실에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깨닫고 또 주저앉고 싶어졌다. 


그럼 어쩌라고. 

돈 벌다가, 그 돈으로 결혼했고. 남편의 적은 월급에 끙끙대며 세 아이들 학원 하나 안 보내고 키웠으면 되었지 뭘 더 바래. 시간을 무식하게 보냈을지언정, 휴일 한 번 마음 편하게 누리지 못 하고 쉬는 시간조차 사치라고 스스로를 압박하면서 살았던 시간들의 결과가 고작 이거라니.





나는 그동안 내가 아등바등했던 일들을 생각해내고, 그것에 대해 그 어디서도 아무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괴롭다며 몸부림을 치다가, 그건 나의 쓸데없는 인정 욕구일 뿐 그 어디서도 무엇을 바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애써 마음을 다잡는다.


그러고 보니 그것이 최근 2년 동안 내가 한 일이었다.

내 마음 들여다보고, 그것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 

지금 내 현실에 돈이 그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잘 알면서도 그것을 외면하고 내가 했던 일.


내 머릿속은 참 끊임없이 바쁘다.

지난 내 시간들을 돌아보다가, 20년 전의 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또 한 번 좌절감을 느낀다. 그때에도 구인 페이지를 뒤적거리면서 분명 같은 감정을 가졌었다. 도대체 할 줄 아는 게 없는 나는 어딜 가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은 지금과 놀랍도록 닮았다. 


당시의 나는 무언가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으면서 돈도 없는데 앉아서 공부나 하는 시간이 불안하기만 했었고, 결국 매달 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싫었던 상담 센터로 다시 돌아가서 돈을 벌었던 기억이 있다. (수입은 나쁘지 않았다)


더 솔직해지자면.. 그만큼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잘할 수 있는 것도 없다는 생각이 바닥에 깊게 자리 잡고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도움받을 곳도 없고 도움을 받아서도 안 되며 나에게 여유처럼 보이는 것들은 사치라는 그 생각.


지금의 내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런 내 등짝을 내려치며 급할 것 없으니 잠시 내려놓고 너 자신이나 좀 들여다보라고 하고 싶은데.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겨우 알기 시작한 것들을 그때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렇게 습관처럼 잡생각을 하다가 다시 엑셀 책을 꺼내고 조금 끄적거리다가 생각은 또 다른 곳으로 향한다(공부하기 싫어 자꾸 딴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엑셀은 나에게 너무 재미가 없다). 단순 보조,라고 쓰여있어서 이력서를 넣었던 그곳에 내가 엑셀 하나 조금 한다고 작성했다고 해도 과연 나에게 연락을 했을까?


생각해보니, 특별한 경력이 아니라면 대부분 나이에서 먼저 탈락이었을 것이다. 단순 작업이 아닌 일에서 초보 환영이라면 나이 어린 사람을 뽑겠지 마흔 넘은 사회 초년생 아줌마를 누가 뽑고 싶을까.


이 작은 내 울타리, 집 밖에서 보기에 나는 20년 전과 똑같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회 초년생이다. 심지어 지금은 나이도 많은. 


안 그래도 자존감도 자기애도 낮은 나인데, 그 20년에 우울해하지 말고 긍정적인 것들, 내가 해낸 것들로 채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무엇을 해야 할지는 대충 알겠지만 그래도 너무 벅차다. 


그럼에도 움직여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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