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년 전 일이다. 코로나19 시작으로 남편은 겨우 잘 다니고 있게 된 직장을 잃었었고, 그 뒤로 우리는 다시 또 시댁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나름 배달 일 등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는데 역부족이었고, 처음에는 '어쩔 수 없으니 일단은...'이라는 핑계 아닌 핑계로 주는 이도 받는 이도 괜찮았는데,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무게감은 점점 더 커져갔다.
중간에 나도 아르바이트도 하기도 했으나 그것조차 오래 하지는 못 했고, 그도 뒤늦게 겨우 다시 일을 구했으나 계속 하지는 못 했고 중간에 쉰 기간이 또 생겼었다. 다 나름의 이유는 있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있었고, 어찌 보면 사기를 당한 것 같은 상황도 겪었고.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밖에서 남들이 보기에는.. 신체 멀쩡한 성인들이 아무것도 안 하고 부모 등골만 빼먹는 철없는 애어른. 본인들 앞가림 하나 못 하면서 애는 셋씩이나 낳아서 손주들조차 할아버지 한 사람의 수입에 의지해서 살도록 만들고 있는 한심한 부모.
그게 우리 부부의 모습일 것이다. 나도 알고 있다.
오랜만에 시어머니와 시간을 보냈다.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고 난 후에 다 큰 아이들은 각자 제 갈길(?) 가고,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다 주신다고 하셔서 마트 쇼핑을 함께 하고 새로 생긴 베이커리 카페를 가보고 싶다고 하셔서 같이 다녀왔다.
내가 무엇을 카트에 담아야 시어머니의 기준에서 '기분 좋은 합리적 쇼핑'이 될지 알 수가 없어서 적당히 눈치를 보면서 시어머님이 추천을 하시는 것들을 장바구니에 넣고, 오랜만에 "아이고. 너희가 있으니까 확실히 금액대가 달라지네"등의 말씀을 오랜만에 들었다.
내가 시어머님이 사 주시는 것들이 불편해진 것은 그런 말들이 쌓인 지 10년이 넘어서면서부터였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나는 대로 하시는 말씀인 것 잘 알고 있기에 처음에는 나도 그저 감사하게 받았는데.. 나에게 무언가를 사 주신다고 하실 때마다 카드값 얘기, 본인도 이런 거 잘 못 사신다는 말씀(쇼핑이 취미이자 본업이시다)등은 시간이 지날수록 차곡차곡 내 어깨 위에 얹어졌다.
내가 그분에게 자신 있게 용돈 한 번, 비싼 가방 하나 사 드린 적이 없으니 그 무게를 덜어낼 틈이 없이 쌓이기만 했다.
카페에서도 마찬가지셨다. 이 얘기 저 얘기를 하시면서 꼭 한 번씩 나오는 말은 '우리 가족은 다 시아버님께 빨대 꽂고 산다'라는 말씀이었다.
물론, 이 표현에 시어머님 본인도 포함이 되어 있으셨고, 현재 시어머님의 친정 쪽 상황도 포함되어 있으셨기에 그저 농담처럼 심각하지 않게 말씀하신 거겠지만 그 말을 10년 넘게 듣고 있으려니 그 무게감이 상당했다.
말이란 것은 참 이상하다. 오래전에는 분명 내 현실을 인정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며 농담으로 같이 웃으면서 들었던 말이었고, '지금은 그렇지만 이 현실에서 벗어날 날이 있을 거야! 그땐 다 갚아드려야지!'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그것이 계속 반복되면서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더 이상 웃을 수도, 벗어날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현실이 된다고 했던가.
어느 순간 우리 부부는 시어머님이 늘 말씀하시는 그 '빨대 꽂고 사는 쪽쪽 빨아먹는'사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우울하고 무기력한 감정은 마치 '늪'과 같았기에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사회적 거리두기에 이어 자체적 거리두기 덕분에 그 말씀을 정말 오랜만에 들어서 그런가.. 크게 짓눌리지 않고 잘 버텼다. 2~3년 전에는 같은 상황 같은 말씀을 들을 때면 정말 공황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말처럼 호흡이 가빠지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기분이 들었었다.
두근거리는 감정을 진정시키고 싫은 표정을 짓지 않기 위해 얼마나 속으로 애를 써야 했는지. 그게 뭐라고, 나에게 욕이나 비난을 하시는 것도 아닌데 시어머님과 마트 한 번 다녀오면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어서 힘들었었는데.
한동안 그 말에서 좀 벗어나 있으면서 조용히 책을 읽고 마음공부를 한 덕분인지 그래도 가볍게(솔직히 가볍지는 않았지만) 넘기면서 잘 마무리를 할 수 있게 된 나 자신을 본다.
돈은 못 벌고 여전히 시아버님에게 빨대 꽂고 사는 무능력한 인간이지만, 여전히 그런 말을 듣고 있어야 하는 나 자신이 너무 싫지만, 그래도 이렇게 작은 것에 상처받고 좌절하며 그대로 드러누워버리지 않을 수 있을 만큼은 회복되었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