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가요 '동동'에도 나오는 국화... 눈을 밝게, 어지러움증에 좋아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사군자 중 국화는 가을을 대표한다. 늦은 가을, 모든 꽃들이 진 뒤 추위를 이겨내며 피는 국화는 아름다운 자태와 맑은 향기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다. 그 결과 국화를 그린 그림도, 국화의 지조와 절개에 대해 노래한 시도 셀 수 없이 다양하다.
국화를 사랑한 시인하면 특히 중국 동진 시대의 도연명(365~427)이 떠오른다. 그가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오며 쓴 시 <귀거래사>에서 "세 오솔길은 황폐해졌지만,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 남아 있네"라 하였다. 이때부터 국화는 세상을 피하여 숨어사는 은일의 상징이 되었다.
▲ 도연명애국도(일부) 장승업, 128.8 x 31.7cm, 종이에 채색, 개인 소장 ⓒ 공유마당(CC_BY)
장승업이 그린 작품으로, 세로로 긴 그림의 일부이다. 도연명의 옆쪽으로 보이는 마른 나무 위로 난초와 대나무를 심은 화분이 차례로 놓여 있다. 푸른빛 옷을 입은 도연명이 책상 앞에 앉아 있고, 동자가 국화 화분을 보여준다. 광대가 두드러지도록 가득 미소를 띤 모습이 인상적이다.
▲ 동리채국(일부) 정선, 59.7 x 22.7cm, 종이에 담채 ⓒ 국립중앙박물관
정선이 부채에 담은 그림의 일부로, 제목인 <동리채국>은 작품의 제일 오른편에 적혀 있다. 김홍도가 그린 같은 제목의 그림도 있다. 이는 도연명의 시 <음주>에 있는 "동쪽 울 밑에서 국화를 따다가, 한가로이 남산을 바라본다(采菊東籬下 悠然見南山; 채국동리하 유연견남산)"는 구절에서 나온 말이다. 이 때문에 국화는 '동리군자(동쪽 울타리 밑에 있는 군자)'라는 별칭을 얻게 된다.
음력 9월 9일은 중양절로, 2022년 올해는 10월 4일이다. 1월1일(설날), 3월 3일(삼짇날), 5월 5일(단오), 7월 7일(칠석), 9월 9일처럼 홀수 즉 양수(陽數, 일반적으로 0보다 큰 수를 양수, 0보다 작은 수를 음수라고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양수란 홀수, 음수는 짝수를 뜻한다)가 겹치는 날은 모두 중양(重陽)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중에서도 특히 9월 9일은 중양절로 부른다.
양(陽)의 기운이 가득한 중양의 날은 예로부터 길일로 여겼다. 삼짇날은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날인데, 중양절에는 제비가 다시 강남으로 떠나는 날이다. 중양절은 중구(重九)라고도 한다.
중양절은 중국에서 유래한 명절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신라 시대부터 이날 모임과 향연을 벌였다. 조선시대에는 삼짇날(중삼)과 중양절(중구)을 명절로 공인했다. 중양절의 다른 이름으로는 국화절, 상국일이 있다.
이 즈음은 단풍이 한창이고 국화가 피며 산이 아름다울 때이다. 중양절에는 국화와 관련된 풍속이 많은데, 국화주를 마시며 산에 오르는 등고, 국화를 감상하는 상국 등이 있다. 황화 즉 노란 꽃인 국화를 술잔에 띄운다는 황화범주는 범국이라고도 하는데, 국화주는 장수를 기원하며 마시는 술이다. 국화로 전(국화전)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국화는 여러 색깔과 종류가 있지만, 술과 전을 만들어먹을 때 사용하는 국화는 주로 감국으로 약재로도 쓰인다. 감국은 흰꽃과 노란꽃이 있으며, 성질이 서늘하고 맛은 달고 쓰다. 해열, 항균, 항바이러스 작용이 있고, 눈을 밝게 해준다. 눈이 충혈되고 붓거나 통증이 있을 때, 두통이 있고 어지러울 때 좋다. 해독 작용이 있어 피부병에 응용 가능하다.
국화를 베개에 넣고 자면 두통과 불면증에 도움이 되는데, 고려가요 <동동>의 9월령에도 국화를 약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9월 9일에
아으 약이라 먹논 (약이라고 먹는)
황화고지 안해 드니 (누런 국화꽃 안에 드니)
새셔 가만하ᆞ얘라 (갈수록 아득하구나/초가집이 고요하여라)
아으 동동다리
또한, 조선 후기의 시인 조수삼(1762~1849)은 그의 시문집 <추재집>에서 국화 베개(국침)의 효과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현기증이 있어도 온갖 약효 없더니
의원이 이르기를 국침이 좋다 했다
...(중략)...
잠깐 베고 있어도 중향국(衆香國)에 들어간 듯
높이 괴어 베면 감수곡(甘水谷)이 부럽지 않도다
효험도 신기하여 몸이 가뿐하고
더욱 신기한 건 두 눈이 점차 밝아지네
머릿속의 잡생각이 말끔히 가셔지고
목욕하고 난 듯 그 기운 온 몸에 퍼지네
국화를 갱생(更生), 장수화, 부연년(연년, 장수를 도와주다), 연령객(수명을 늘이는 객), 수객(壽客) 등으로 부른 것도 국화가 지닌 장수의 의미 때문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한의사와 함께 떠나는 옛그림 여행'에 연재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