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입은 사람에서 치유하는 사람으로
처음 상담실 문을 두드렸던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믿을 수 없는 긍정적인 변화와 마주하게 된다.
'와! 내가 그런 말도 안 되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지냈었다고? 그렇게 스스로 마음을 괴롭히면서 지냈었다고?'
자신과 삶에 대한 관점이 바뀌고 태도가 변했다. 피해자, 약자에서 누군가를 케어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나 자신을 잘 키울 수 있는 사람으로 되어갔다. 여전히 상처를 받는 순간이 있지만 그것이 그렇게 오래가지 않는다. 나 중심의 사고에서 세상의 흐름을 파악하는, 즉 상대의 입장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좀 더 넓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넓은 시야를 얻을 수 있었다. 시야가 넓어지니 스스로 만든 날카로운 울타리는 저절로 녹아내렸다.
상처가 많았지만 안전하고 편안한 곳에서 그것을 열어 보였다. 성장의 시작이었다. 변화의 시작이었다. 치유되는 과정에서 우연처럼, 필연처럼 상담사가 되기 위한 여정으로 이끌렸다. 나를 보살피고 가꾸어 나가는 과정에서 좋은 도반과 스승을 만나기도 하면서 말이다. 바른 길로 걷게 되면 그에 따른 좋은 인연들은 저절로 나타난다.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나는 프로이트가 거의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감명을 받았다. 그는 종종 10분 내지 15분 간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이건 성장의 문제이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가 해답을 찾아내야만 한다." _스밀리 블랜톤 <프로이트와 나눈 시간들>
스밀리 블랜톤의 이야기처럼 스스로 해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었다(상담실에서 보낸 50분으로 나머지 일주일을 유지할 힘을 얻었다). 상담실과 선생님은 그러기 위한 좋은 환경, 좋은 조건이 되어 주었다. 칼 로저스가 말했던 것처럼 유기체가 가진 자기실현 경향성을 이루기 위한 최적의 환경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심리상담은 한 존재가 마음껏 자기를 표현하며 성장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든든한 상담 선생님을 통해 혼자 일상을 헤쳐나갈 힘을 얻었다. 항상 옆에 있어주는 사람이 아니지만 정신적으로, 심적으로 연결감을 느꼈다. 일주일에 한 시간 만나는 사람의 힘은 컸다. 든든한 한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고 나다움을 찾아 나갈 수 있었다. 아픔을 나눈 자리에 희열을 채웠다. 서로의 마음이 오고 간 후 정화되는 걸 체험했다. 내담자로서의 표현(억눌린 감정)이 상담사의 따뜻한 마음 바구니에 보드랍게 담겼다.
내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상담실에서 그게 가능하다는 건 직감적으로 알았다. 상담료를 지불하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기에 무의식 중에 선생님이 날 위해 존재한다는 안정감이 들었던 것 같다. 저절로 편안해졌다.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안에 성장과 변화가 담겨있다는 걸 알게 된 심리상담이었다.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면서 자아가 성장을 했다. 말속에서(표현을 통해서) 심리적 나이를 먹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나란 사람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어려웠다. 상담실에서 말을 하며 존재감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들 속에 묻혀 느끼지 못했던 '나'가 선생님 앞에서는 온전히 드러났다. 감사한 일이었다. 존재감을 느끼니 저절로 성장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나에게 성장이란, 나란 사람의 존재를 스스로 인정하고 드러내어 표현해 주는 것이다. 또한 타인의 표현을 그의 입장에서 고려하며 서로가 함께 존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치유는 저절로 일어난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기에 성장 역시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