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하루 종일 생일을 축하해주는 알림들 속에서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텅 빈 가족단톡방 화면을 몇 번이나 들여다봤다.
‘바쁜가 보다’라며 애써 마음을 눌렀지만 기대가 없었던 건 아니었기에 더 서운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손주들이 우다다닥 현관문을 들어서고 나는 서운한 마음을 꾹꾹 욱여 넣은 채 뒤따랐다.
마음속에 뭔가 작고 단단한 덩어리가 생긴 듯했다.
말하지 않으면 사라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커지는 것 같았다.
들어가 처음 눈에 띈 건 미역국과 잡채접시가 있는 식탁이었다.
그 순간 멈춰 섰다.
미처 준비되지 않은 마음 한쪽에서 무엇인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미역국 냄새가 서서히 코끝을 타고 들어왔다.
막내아들이 다정한 손길로 어깨를 감싸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냉장고 문을 열어 주었다.
케이크박스와 봉투가 보였다.
아이처럼 웃고 있는 아들의 얼굴과 그 뒤로 반짝이는 초가 든 케이크 상자가 겹쳐 보였다.
혼자 꿍해 있었던 민망함과 고마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툴툴댔다.
"에이, 이런 거 뭐하러 했어"
마음은 이미 울컥해져 있었고, 그 조용했던 단톡방의 침묵조차 이젠 괜찮았다.
말보다 마음이 먼저였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엄마 생일 다들 까먹은 줄?"
손 닦는 척 화장실로 가서 표정을 단도리 했다. 못난 엄마 같으니라고.
저녁을 먹고 나서 방에 들어가 봉투를 열었다. 딸이 준 봉투 겉에는 축하메세지가 적혀 있었다.
막내 아들의 봉투 안에 대충 찢은 노트에 몇 줄의 편지가 적혀 있었다.
봉투 안의 금액보다도 편지 내용이 궁금했다.
「엄마 생신축하 드리고 고마워요. 항상 고생해 주시고 희생해줘서 고맙고 엄마한테 이쁜 모습, 좋은 모습 많이 보여주지 못해도 걱정해주시고 챙겨 줘서 고마워요. 엄마도 힘들고 지칠텐데 계속 고생하고 뭐하나라도 더챙겨줄려고하고 그럴때마다 참 고마워요. 엄마도 슬슬 하고 싶으신거 하시면서 걱정도 줄이시고 힘든것도 조금씩 내려놓으면서 살아가면 좋겠어요. 책 쓰는 것도 힘내시고 사랑해요.」
다 큰녀석의 편지가 초등학생마냥 띄어쓰기도 엉망이었고 글씨체는 어렸을 적 그대로였다.
피식 웃음이 나면서 마음이 울컥하며 눈가가 시큰해졌다.
늘 보살펴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막내가 군복무를 하고 오더니 훌쩍 더 자라있었다.
아니다. 어쩌면 늘 나보다 더 어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들의 편지를 읽고 나니, 오래전 그 날의 말이 떠올랐다.
솜털이 보송했던 어린 아들에게는 이혼 사실을 알리기가 두려웠었다.
일 이년이 지나서야 저녁 퇴근 길에 차 안에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
“할 말이 있어. 아빠는 출장 간 게 아니라 엄마랑 이혼한 거였어.
너한테 말도 없이 아빠를 뺏은 게 너무 미안한데 엄마가 너무 불행했어. 미안해.”
아들은 한참을 말없이 앞만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젠 행복해요? 아빠랑 같이 살지 못해서 슬프지만, 엄마가 행복한 게 전 더 좋아요.”
가슴에 두고두고 아팠던 말이었다.
어린아들에게는 세상 무너질 만큼 슬픈 소식이었을 텐데 다정했다.
성인이 된 아들은 여전히 다정하다.
어린 형과 누나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제대로보살펴 준 게 없었던 막내였다.
뭐하나라도 챙겨주려고 했다고 생각하며 쑥스럽고 서투른 맘으로 꾹꾹 눌러 썼을 편지에 위로를 받는다.
아들의 마음속에 비치는 엄마의 모습은 여전히 힘겨움에 지친 사람이었나 보다.
아들에게조차 힘듦을 감추느라 애써 웃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혼자만의 발버둥이었다보다.
제대로 감추지도 못할 바엔 툭 터놓고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외쳐볼 걸 그랬다.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채 스스로에게조차 외면당했던 시간들이었다.
애타게 바라던 위로는 왜 그렇게 오래도록 닿지 않았던 걸까.
돌아보면 나를 다독이기보다 먼저 몰아세우곤 했다.
어쩌면 내가 정말 필요로 했던 건 위로보다 용서였는지도 모른다.
내게 벌어진 모든 일을 내 탓이라며 너무도 미워했다.
미움과 용서 그리고 위로의 감정들이 스크류바처럼 꼬여 내 마음을 어지럽힌다.
풀리지 않은 감정들이 여전히 내 안에 얽혀 있다.
미움은 사라지지 않고 상처는 아물었다 싶으면 다시 쓰라리다.
이제는 그 감정들을 억지로 밀어내려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려 한다.
용서란 누군가를 위한 것도 과거를 덮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더 이상 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나 자신에게 건네는 하나의 태도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막내의 말처럼 이제는 나도 내가 원하는 걸 하면서 조금씩이라도 내려놓으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사실 나는 이미 그렇게 살아보려 노력 중이었다.
누군가를 위한 삶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걸 늦게야 알게 되었고, 조금씩이라도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 어딘가에는 아직도 멈칫거리는 지점이 있었다.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도 괜찮은 걸까? '
그런 마음의 의심들을 조용히 다독여준 것이 바로 아들의 편지였다.
그래서 그 말이 마음 깊은 곳을 두들긴다.
내가 나를 얼마나 오랫동안 외면하며 살아왔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동안의 삶이 죄책감과 책임감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무거웠는지.
그리고 이제는 그 무게를 조금은 내려놓아도 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허락한다.
아들의 말은 내게 그런 허락이었다.
「엄마도 이제는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가면 좋겠어요」
이 문장이 남긴 건 위로를 넘어서 조금씩 더 나를 살펴보고 더 자유롭게 더 나답게 살아가도 된다는 다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