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물을 마시려던 순간 싱크대가 눈에 들어왔다.
정수기 옆 트레이는 텅 비어 있었고, 싱크대에는 어제 저녁부터 쌓인 그릇들이 그대로였다.
깨끗한 공간을 기대했던 아침이었는데 시작부터 엉망이었다.
퇴근 후 분명 설거지를 끝냈다. 하지만 저녁을 준비하며 다시 그릇이 쌓였고 손주들을 씻기고 재우느라 미처 정리하지 못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치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마음이 밀려왔다. 바쁘기 때문이라고 정의하기엔 미흡하다.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
나는 보이지 않는 물건은 쉽게 잊어버린다. 서랍 속에 넣어두면 마치 사라진 것처럼 느껴진다.
결국 모든 물건을 눈에 보이게 두려다 보니 공간은 물건들로 계속 쌓여만 갔다.
정리를 해야 한다는 압박과 정리를 하면 잊힐 것 같다는 불안, 이 딜레마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건뿐일까.
한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인간관계가 지금도 의미 있는지, 붙잡고 있는 감정이 여전히 내게 필요한지 고민해 본 적이 있다.
과거의 상처를 오래 간직한 채 살아가면서도 그 무게를 내려놓지 못한 이유는 단순한 미련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버리지 못하는 물건처럼, 필요 없는 감정과 관계를 무심코 쌓아두고 있었던 건 아닐까.
물건과 삶의 정리를 위한 딜레마를 해결하려고 3가지 작은 변화를 시도했다.
첫째, 완전히 닫힌 수납공간 대신 안이 보이는 반투명 정리함을 사용하는 것.
둘째, 자주 쓰는 물건과 그렇지 않은 물건을 구분하여 일정 주기로 점검하는 것.
셋째, ‘지금 당장 쓰지 않으면 버려도 괜찮다’는 기준을 세우는 것.
처음에는 꼭 필요한 물건들만 두기로 했다. 그러나 오히려 물건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물건 정리를 위해 완전히 닫힌 서랍 대신 안이 살짝 보이는 반투명한 정리함을 활용하게 되었다.
물건을 감추지 않되, 공간은 정돈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반복해온 인간관계의 습관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그래서 택한 방식은 완전히 닫힌 문이 아니라, 적당히 열어둔 ‘반투명한 정리함 같은 거리’ 였다.
감정의 결을 숨기지 않되, 서로의 삶에 과도하게 개입하지 않는 방식. 그렇게 거리를 두자 마음이 훨씬 편안해졌다.
관계도 꼭 깔끔하게 끊어내야만 하는 건 아니었다. 감정이 보이되 흐트러지지 않도록, 관계를 정리하고 배치하는 일이 필요했다.
서랍 속을 열어보니 지난달에 산 노트가 그대로 있었고, 몇 달 전 새로 산 볼펜도 그대로였다.
분명 필요해서 샀지만 ‘언젠가 쓰겠지’ 하는 마음으로 둔 채, 또다시 새 물건을 들여왔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지금 자주 쓰는 물건’과 ‘단지 가지고만 있는 물건’을 구분해서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일정한 주기를 두고 물건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어떤 물건은 여전히 자주 쓰였고, 어떤 물건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반복적으로 확인하고 다시 분류하는 이 작업은 번거롭지만, 공간을 더 넓고 가볍게 만들어주는 방법이었다.
관계는 한 번 맺으면 그대로 유지된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감정의 온도도 변하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의 결도 달라진다.
자주 떠오르고 만나고 싶은 사람인지, 아니면 ‘그땐 그랬지’의 감상만 남은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불필요한 물건이 늘어날수록 물건을 소유하는 기준이 흐릿해졌다. 꼭 필요한 물건과 그렇지 않은 물건을 구별하는 능력도 부족했다. 스스로의 필요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물건을 보고 생긴 단순한 욕심으로 사는 경우도 많았다. 욕심이 생길 때마다 멈춰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게 지금 필요한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물건이 생기면 이유를 노트에 적고 며칠 동안 고민해본다.
욕망을 거르는 습관을 만들어 가며, 진짜 필요한 것과 순간적인 충동을 구분해낸다.
쉽게 끊어내지 못했던 관계들이 있었다. 완전히 단절할 용기는 없었고, 그렇다고 마냥 끌고 가기에도 지쳤다.
미련, 의무, 기대 대신 ‘지금 나에게 진짜 필요한 연결인가’를 기준 삼는다. 그제야 오히려 더 깊은 관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꼭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니, 삶이 단순해졌고 마음이 가벼워졌다. 완벽한 인간관계를 꿈꾸기보다, 편안한 관계를 만드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도 하나의 감정을 정리하고, 한 사람과의 거리에서 내가 설 자리를 다시 잡는다.
눈에 보이는 공간이 정리되자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집 안에 불필요한 물건이 줄어들면서 청소가 쉬워졌고 정신적인 피로도 줄었다.
공간이 정리되자 정리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손주들이 잠들기 전에 같이 그림책을 읽을 수도 있었고, 함께 이불 속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이전에는 몰랐다.
물건이 많다고 풍요로운 것이 아니었고, 단순하다고 불편한 것도 아니었다.
결국 삶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더 이상 ‘완벽하게 깨끗한 집’을 꿈꾸지 않는다.
대신 편안한 집을 만들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하나를 덜어낸다.
그리고 그 빈 자리에는 진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만 남기기로 한다.
삶도 마찬가지였다.
삶에서도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니, 더 집중할 수 있는 것들이 보였다.
완벽함을 목표로 할 때는 늘 압박감 속에서 살았지만, 덜어내기로 하자 중요한 것이 보였다.
삶을 정리하는 것도 결국 물건을 정리하는 것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