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이름을 내려놓고, 딸은 엄마가 된다

by 느루


저녁을 먹고 방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딸의 윽박지르는 소리에 묻혀 하민의 서러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울음소리는 작고 떨렸지만, 방 안 가득히 퍼지는 슬픔은 무겁게 다가왔다. 하민이에게 물어보니 울기만 하고 대답을 하지 않는다. 하민이의 손을 붙잡아 마음을 진정시키며 다시 물었다.

“엄마가 왜 화내는 거야? 이유가 있었어?”

여전히 대답 없이 입을 꾹 다물고 눈물만 뚝뚝 흘린다.

“엄마는 맨날 화만 내고 너를 미워하는가 보다.”

다른 날 같으면 그렇다고 했을 텐데 웬일로 고개를 저었다.

“할머니가 네 편들어줄게. 소은이 장난감을 뺏어도 ‘아유, 잘했어!’ 하면서 칭찬만 해주고, 누나 때려도 ‘아유, 주먹도 센데!’ 하면서 잘했다고 해줄게. 말해 봐, 무슨 일이 있었어?”

자기가 듣기에도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편들어주니 기분이 좋아졌는지, 뺨에 눈물 자국을 흥건히 묻힌 채로 웃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할머니도 너한테 화내고 소리 지를 때 있잖아. 너 미워서 그런 건데?”

아니란다. 그러면서 소은이 자꾸 장난감을 뺏어 가는 게 속상해서 자기도 뺏었다며 잘못했다고 했다. 그제야 마음속 단단하게 얽혀 있던 감정이 조금 풀린 듯했다. 여전히 훌쩍거리면서도 나지막이 말을 잇는 모습에서 용기가 느껴졌다. 가서 엄마에게 잘못했다고 얘기하라고 등을 떠밀었다. 쭈뼛거리며 제 엄마 옆에 가서는 겨우 모기만 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나 보다. 딸이 안 들린다고 소리를 질렀다. 다른 때 같으면 울어버리거나 또다시 입을 닫았을 텐데, 좀 더 큰소리의 ‘잘못했어요’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조근조근 뭘 잘못했는지에 대해 설명해 주는 딸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방 안에서 그 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손주들도, 엄마도 조금씩 자라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어린 딸이 유치원에서 돌아와 내게 투정을 부리던 날이었다. 그날도 바빴고, 피곤했다. 딸이 왜 우는지도 모른 채,

"왜 또 그래? “

라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잘못한 어린 딸은 혼내면 그저 울기만 했다. 그 모습에 나는 더 화가 나서 뭘 잘못했는지 몰라서 대답을 안 하느냐며 소리부터 질렀다. 그럼 딸은 더 크게 울고, 악순환이 되곤 했다. 딸이 울면 그저 얼른 달래서 상황을 해결하려 하기보다, 감정을 끊으려 했다. 딸이 울면 그저 겁박하고 억누르며 조용하게 만드는 게 전부였다. ‘왜 우니’라는 말은 사실 ‘울지 마’라는 명령에 가까웠다. 그렇게 자란 딸 역시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아이를 대하고 있었다. 딸이 하민이를 대하는 모습에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엄마, 내년쯤에 애들이랑 같이 나가 살 거야.”

뜬금없는 딸의 폭탄선언에 잠시 멈칫했다.

작년부터 유난히 몸이 무겁고 마음마저 지쳐갔다. 갱년기인지 잦은 감정 변화에 휩쓸렸다. 노안 탓에 책 읽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목 디스크는 손끝까지 저릿하게 만들었고 팔에 힘이 빠져 그나마 위안이 되던 요가마저 그만두어야 했다. 체력이 바닥을 치자 그동안 억지로 붙잡고 있던 일들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번아웃, 그 짙은 그림자가 나를 덮쳐왔다. 손주들이 중심이 되어 흐르는 시간들이 나를 짓눌렀다. 내 마음의 공허함은 고스란히 딸에게까지 번져갔을 것이다.

“왜?”

수십 분처럼 늘어진 찰나의 침묵이 흐르고 나서 겨우 뱉어낸 목소리는 낯설고 건조하게 울렸다.

“엄마가 요즘 너무 힘들어하잖아. 나도 이제 엄마인데, 애들도 내가 챙겨야지.”

딸이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순간 맥이 풀리면서도, 딸과 손주들에 대한 뭉클함과 걱정이 앞섰다.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더니 마음이 먼저 주저앉았다. 딸이 엄마가 되었다는 말이 낯설게 들리면서도 어쩐지 따뜻했다. 어느새 훌쩍 자란 손주들처럼 딸도 조금은 자랐나 보다. 하지만 딸은 여전히 서툴다. 자식들을 돌보는 일에도, 살림에도 한없이 어설프다. 밥을 해놓고는 간을 보지 않아 싱겁다고 투정하는 하민의 말에 기운이 쭉 빠졌다며 난감해하던 얼굴도 떠오른다. 소은이가 오밤중에 깨서 울어도 이유를 알지 못하고, 열이라도 훌쩍 오르면 어찌할 바를 모르는 딸이다. 갓난아이 손톱을 잘라주다 피를 몇 번 본 후로는 아직도 손주들의 손톱을 자르는 걸 겁낸다.

“엄마, 이건 엄마가 해줘”

손톱깎이를 내 손에 쥐여주던 딸의 눈빛엔, 여전히 나에 대한 의존과 두려움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서툰 엄마였던 나는, 서툰 엄마가 된 딸을 믿지 못했다. 딸의 홀로서기를 위해 육아도 살림도 믿고 맡겼어야 했다. 하지만 마음보다 손이 더 빨랐다. 걱정이 사랑인 줄만 알았던 나는 늘 딸의 공간으로 먼저 들어가 버렸다. 자식 셋을 둔 스물일곱의 딸을 열일곱 살의 딸로만 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딸과 손주들을 같은 눈높이로만 대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끝난 줄 알았던 나의 첫 번째 육아는 여전히 착오 진행형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기다려주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딸이 나를 걱정하며 온전한 엄마가 되겠다고 독립을 선언했으니, 나도 딸을 믿고 기다려보기로 했다. 비로소 엄마가 엄마를 놓아주는 연습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제는 서로를 붙잡기보다 한 걸음 물러서 바라볼 때가 되었으니까.

서툰 사랑일수록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그랬듯 딸도 그렇게 배워가겠지. 이번에는 믿음으로 조금 더 단단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 역시 놓아주는 연습을 하며 홀로 서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할 것이다. 이제는 ‘함께 있음’보다 ‘떨어져 있음’을 통해 새로운 사랑의 모양을 배워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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