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은 작가 님을 보내드리는 빈소에서 (중략)“
아침에 눈을 뜨고 습관처럼 핸드폰을 열었다. 잠결에 핸드폰을 뒤적이던 중 고우리 편집자 님의 소셜 계정에서 이 문장을 보는 순간 잠이 확 달아났다. 다시 읽어도 믿기지 않았다. 오해하기 딱 좋은 뉘앙스의 문장에 맘이 불편해졌다. 무언가 잘못된 거로 생각하며 뉴스를 검색했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흐억 흐억 통곡하던 시기는 지났고, 요새는 그냥 조용히 운다."
편집자 님이 소셜계정에 적은 추모의 문장에 뭉클해진다. 그녀의 마지막 그리움에 나도 그리움을 더해본다. 정아은작가님을 북토크에서 만난 그 순간은 비록 짧고 스쳐 지나갔을지언정 내게는 강렬한 순간이었다. 그 잠시의 순간이 내 삶의 지표가 되어줬으니 그리워할 자격이 아주 조금이라도 있지 않을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떠오르는 어떤 목표나 꿈이 없었다. 그냥 아주 돈이 많아서 돈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정도랄까. 그런 막연한 생각만 하고 사는 단순한 사람. 나는 정말로 꿈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을 읽게 되었다. 내가 아는 서점은 어릴 적 문제집을 사던 작은 서점과, 끝없는 책장이 늘어선 대형서점뿐이었다. 그런데 영주가 운영하는 동네 책방은 전혀 달랐다.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이고 머무는 곳이었다.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쓰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서점이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 순간,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릴 적,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끌리는 것들은 결국 나를 찾아오는 걸까. 마침 YES24 알림 문자를 통해 근처 책방에서 북토크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작가를 만날 수 있다니! 그 순간부터 설렘이 시작됐다. 읽어본 책도 아니고 작가도 몰랐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두근거렸다. 신청 버튼을 누른 후 매일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기분이었다. 누군가를 알기 전부터 그리워할 수 있다면 아마 그때의 내 마음이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 정아은 작가님과 고우리 편집자님을 만났다. 처음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의 세계가 이렇게 가까 운 곳에 존재한다는 걸 실감했다. 북토크가 끝날 무렵, 망설이다가 어렵게 손을 들었다.
” 글을 쓰겠다고 맘먹은 이후로 오히려 첫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할지 전혀 생각이 안 나요.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정아은 작가님은 단 한 마디로 답했다.
"무작정 써야 합니다. “
쉬우면서도 어려운 말이었다. 어느 책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문장이지만, 그날 작가님이 전해준 한 마디는 전혀 달랐다. 그 말속에는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결단의 단호함과 자신이 직접 겪어온 시간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그 한마디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날,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아니, 꼭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가 님을 만났던 그 순간의 벅참과 내 안에서 끓어오르던 감정, 모든 것이 강렬했다. 그런데 막상 책상 앞에 앉자, 그 열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첫 문장을 쓰는 일은 여전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손은 키보드 위를 맴돌았고, 아무것도 적지 못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무엇이든 쓰라고 했지만,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 떠다니는 생각들은 많았지만, 어느 하나도 단단하게 문장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정말 잘 쓰고 싶은 걸까, 아니면 잘하지 못할까 봐 두려운 걸까?'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잘 쓰고 싶었고, 동시에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첫 문장을 적는 순간, 내 글이 엉망이라는 걸 마주하게 될까 봐 애초에 시작조차 하지 않으려 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 마음을 겨우 걷어내고 내가 진짜 쓰고 싶은 게 무엇인지 고민했다.
나를 쓰고 싶었다. 그림을 배우면서 사과를 오래 바라보게 되었던 것처럼 나를 세심하게 애정을 가지고 바라봐야 함을 깨달았다. 나 자신을 바라보는 법도 몰랐다. 뭘 원하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건 뭔지. 뭘 할 때 행복한지. 그래, 내 꿈이 뭔 지조차 잊고 살지 않았던가. 무심하게 살다 보니 너무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해 내 옆에서 소중한 것들이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는 걸 몰랐다.
『아티스트 웨이, 마음의 소리를 듣는 시간』을 읽으면서 한동안 새벽에 일어나 모닝 페이지를 썼다. 눈뜨자마자 졸린 눈을 비비며 책상 앞에 앉아 머리에 떠오르는 걸 아무런 필터 없이 그대로 노트에 적었다. 내용이나 문법 혹은 앞뒤가 맞는지도 생각하지 않고 그냥 떠오르는 대로 적었는데 사실 남이 보면 부끄러운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며칠을 꾸준히 하다 알았다. 모닝 페이지를 적은 날 하루 종일 내 머릿속은 먼지를 툭툭 털어낸 듯 개운했다는 걸. 정 어려우면 그냥 ‘졸리다‘ ’ 감사하다 ‘부터 적었다.
정아은 작가는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에서 이렇게 말했다."글쟁이는 사람에 대해 언제나 관심을 두고 탐구해야 한다."
여전히 글쓰기가 어렵다. 첫 문장은 막막하고, 내 글이 형편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글이 아니라 오늘도 한 줄을 적을지라도 나를 들여다보는 과정 자체라는 것을. 그래서 계속 관찰하고, 탐구하고, 글을 쓸 것이다. 이것이 내가 나를 이해하는 첫걸음이 될 테니까. 언젠가 흙탕물이 가라앉아 맑아지듯 나의 마음도 차분하게 정리될 날이 오리라 믿는다. 그러니 오늘도 작은 조각을 붙잡고 글을 써 내려간다.
나를 탐구하며 첫 문장을 쓴다. 느리더라도, 포기하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