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에 대한 편애

by 누룩취

수년 전 어느 겨울날이었다. 다운파카에서 비죽 삐져나온 깃털 하나가 안에 입은 스웨터에 박혀 있었다. 나는 곁에 있던 딸아이에게 농담을 던졌다.

“아빠는 전생에 천사였나 봐. 가끔 이렇게 날개의 흔적이 나오네.”

돌아온 아이의 대답은 명쾌했다.

“응? 아냐 아빠. 아빠는 전생에 오리였어. 그거 오리털이야.”

한순간에 천사에서 오리로 전락한 순간이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왜 이토록 새를 좋아할까? 아마도 하늘을 난다는 판타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문명권에서는 이 판타지를 날개에서 찾았다.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천사는 모두 새의 날개를 달고 있다. 반면 악마에게는 박쥐의 날개를 달아 주었다. 포유류인 인간이 조류를 동경하고, 정작 같은 포유류인 박쥐는 배척한 셈이다. 요정들에게는 곤충의 날개를 붙여 놓았다. 나비도 있고 잠자리도 있다. 그렇다면 모기나 파리, 바퀴벌레 요정도 있지 않을까.

인간이 이토록 편파적인 판정을 내린 이면에는 빛과 어둠이라는 상징적 감정이 자리한다. 밝고 푸른 낮의 하늘을 가르는 새는 동경의 대상이었으나, 축축하고 어두운 동굴 속에 은둔하며 밤의 하늘을 나는 박쥐는 공포와 불길함이었다. 결국 날개 그 자체의 용도보다 그것이 펼쳐지는 배경이 인간의 선호를 결정한 셈이다.

생물학적으로 새나 박쥐는 앞발이 변해 날개가 되었다. 반면 천사와 악마는 손이 그대로 있는데 날개까지 따로 달려 있다. 구조적으로 보면 이는 곤충과 더 가깝다. 결국 종교는 인간의 몸에 새나 박쥐의 날개를 추가로 붙여 놓은 그로테스크한 괴물을 창조했다.

날개를 가진 짐승 중에서 가장 뛰어난 날개는 가장 마지막에 등장했다고 한다. 진화의 순서를 따지자면 곤충보다 새의 날개가 성능이 좋고, 새보다는 박쥐가 더 뛰어난 날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타락한 천사 루시퍼의 날개가 새에서 박쥐 것으로 바뀌는 것도 이 상징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

그는 타락하며 성능이 떨어진 새의 날개를 떼어내고 박쥐의 날개라는 최신형 아이템을 얻었다.

그럼에도 인간이 박쥐보다 새의 날개를 더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능이나 생물학적 구조보다 우아한 외형을 택하는 복고의 편애일까. 아니면 식용이 가능한 것에 대한 은근한 애착일까.

오리털 파카 하나에 천사를 꿈꾸다 오리로 돌아온 그 겨울날을 떠올리며, 나는 인간의 이 기묘한 선호를 생각하다 치맥을 주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