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 이후의 쓸모

by 누룩취

나는 어렸을 적부터 갈무리에 서툴다. 물건을 버리는 일에 거부감까지 자리 잡고 있다. 덕분에 내 책상은 금세 온갖 것들이 뒤섞인 두엄자리가 되고 만다.

큰마음을 먹고 책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서랍까지 열어젖히니 금세 휴지통 하나가 가득 찼다. 버리기 아까운 물건도 눈에 밟혔지만, 2년 동안 한 번도 손길이 닿지 않은 것들이다. 앞으로도 쓰일 리 만무하다. 나는 그것들을 과감히 덜어냈다.

물건들이 사라진 자리에 책상의 맨살이 드러났다. 내 책상은 생각보다 넓었다. 비로소 책상다운 책상을 마주하게 된 기분이다. 실은 더 큰 책상을 새로 살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책상이 좁았던 이유는 테이블의 넓이가 아니라 나의 게으름 때문이었음을 깨달았다. 서랍 속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빈 공간이 생기고서야 나는 무엇이든 새로 시작할 준비가 되었음을 느낀다.

이러한 일상의 체득은 그릇을 빚는 이치와 닮아 있다. 진흙을 이겨 그릇을 빚을 때, 손끝에 닿는 차가운 감촉이 온기를 머금으며 둥근 형태를 갖춰간다. 정성스레 벽을 올리고 겉면을 매끄럽게 다듬을수록 그릇은 온전한 모양새를 드러낸다. 하지만 이 그릇이 제 구실을 하는 순간은 외형이 완성되었을 때가 아니라, 그 안이 비워졌을 때이다.

흙이 빽빽하게 차 있는 그릇은 그저 덩어리에 불과하다. 그 안을 비워내야만 물을 담고 음식을 채울 수 있다. 형태는 외부가 만들지만, 쓰임은 비어 있는 내부에서 나온다.

이러한 가르침은 일본 메이지 시대의 선승 남인(南隱)의 찻잔에도 담겨 있다. 선(禪)을 묻는 이에게 넘치도록 차를 따르며, 비우지 않고서 어떻게 새로운 깨달음을 담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 같다. 우리는 흔히 지식과 경험, 소유와 성취로 스스로를 가득 채우려 애쓴다. 빽빽하게 들어찬 생각들은 자신을 견고하게 만드는 듯 보이지만, 정작 새로운 인연이나 깨달음이 들어설 자리를 지워버리곤 한다. 가득 찬 그릇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담을 수 없다.

진정으로 쓸모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비워내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고집을 덜어내고 아집을 비워낼 때 비로소 타인의 목소리가 머물 공간이 생긴다. 비움은 결핍이 아니라 가능성을 수용하기 위한 준비이다.

그릇의 본질은 재료나 화려한 무늬에 있지 않다.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깨끗한 빈자리, 그 비어 있음이 그릇을 그릇답게 만든다.


비워야 비로소 쓸모가 생긴다.

나는 오늘, 책상이 아니라 나를 조금 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