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이 허락되는 단 하루, 만우절은 평범한 일상에 작은 균열을 내어 웃음을 실어 나르기도 한다. 2026년 오늘 다시 마주한 만우절은 문득 오래전 동료들과 나누었던 두 가지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하나는 동료들의 진심을 담보로 했던 ‘장난’이었고, 다른 하나는 임신 중이던 아내의 상황을 빌려 시작된 농담의 기록이다.
사건의 시작은 1998년의 만우절이었다. 회사의 짧은 휴게시간, 커피 한 잔의 여유 속에서 나는 상기된 표정으로 알렸다. “저, 날 잡았습니다.” 이 짧은 한마디는 탕비실을 즉각 흔들어 놓았다. 동기 녀석은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축하를 건넸고, 평소 꼼꼼한 선배 대리는 여성 특유의 촉이 발동된 듯 구체적인 시기를 물었으며, 호탕한 선임 과장은 당장 축하주를 마셔야 한다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10월 둘째 주라는 구체적인 날짜까지 덧붙이자 나의 결혼 발표는 의심의 여지없는 기정사실이 되었다.
퇴근 후 이어진 술자리는 축복의 열기로 가득했다. 선임 과장은 기꺼이 지갑을 열어 축하주를 샀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예식장과 신혼집으로 흘러갔다. 특정 웨딩홀의 이름과 지인 찬스를 통한 예약이라는 디테일, 현재 살고 있는 오피스텔을 도배만 해서 시작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보태지자 거짓은 더욱 단단한 진실의 옷을 입었다. 선배로서, 친구로서 “나중에 곤란해지지 말고 꼼꼼하게 잘 챙기라”는 아낌없는 조언을 건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제서야 오늘의 거짓말을 고백하였다. “실은 대부분 다 준비했는데, 한 가지가 빠졌더라고요.” 분위기는 의구심으로 가득 찼다. 동료들은 무엇이 부족한지 궁금에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재촉했다. 뜸을 들이던 끝에 터뜨린 나의 한마디는 술자리의 공기를 단번에 얼려버렸다.
“여자가 없어요.”
순간의 정적 뒤에 찾아온 것은 폭소나 허탈함이 아닌, 배신감 섞인 물리적 폭행이었다. 두 명의 남자와 한 여자에게 ‘얻어맞으며’ 마무리된 그날의 풍경은 1998년 만우절이 남긴 잔상이다.
그로부터 6년 뒤인 2004년의 만우절 날. 2002년에 가정을 꾸린 나는, 마침 첫 아이를 임신 중인 아내의 설레는 현실에 살을 붙여 “쌍둥이래요”라는 발칙한 거짓말을 던졌다. “우리 집에서 쌍둥이는 처음인데 정말 신기하네요.”라는 나의 천연덕스러운 연기에 동료들은 열광했다. 회사 내에서 나는 순식간에 ‘쌍둥이 아빠’로 불리게 되었고, 나는 그 기분 좋은 오해를 굳이 정정하지 않은 채 축하를 만끽했다.
시간은 흘러 계절이 바뀌고 10월의 마지막 날, 기다림 끝에 딸이 내 품에 안겼다. 출산 소식을 들은 동료들의 첫마디는 축하보다 앞선 의구심이었다. “쌍둥이라며?” 그제야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 그날 만우절이었어요.”
4월 1일에 던진 가벼운 거짓말이 10월 31일의 현실로 들통나는 과정은 만우절이 가진 묘한 재미를 보여준다. 비록 ‘쌍둥이’는 아니었지만, 새로운 생명이 찾아왔다는 본질적인 기쁨만큼은 거짓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998년의 만우절이 ‘여자만 빼고 다 준비 됐다’는 고백으로 매를 벌었다면, 2004년의 만우절은 아내 뱃속의 생명을 ‘곱절의 축하’로 받은 셈이다.
돌아보면 이 장난들이 성립될 수 있었던 바탕은 결국 동료들의 ‘진심’이었다. 타인의 경사를 제 일처럼 기뻐하고, 앞다투어 술잔을 기울이며, 살뜰한 조언을 건네던 그들의 마음이 없었다면 이 에피소드들은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비록 현실의 삶이 때로는 고달플지라도, 일 년에 한 번쯤은 이런 실없는 농담으로 소중한 이들과 웃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만우절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따뜻한 선물이 아닐까. 28년 전의 유쾌한 폭행과 22년 전의 행복했던 오해는 오늘날의 나를 여전히 미소 짓게 만든다.
지금도 나는 그들에게 ‘쌍둥이 아빠’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