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두 번째 하루가 있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가끔 묘한 공기가 나를 감싼다.
회사에서는 제도, 규정, 근로시간 같은 단어들 속에서 하루를 보냈는데, 집으로 들어서면 전혀 다른 종류의 책임과 에너지가 나를 기다린다. 현관문이 열리는 그 짧은 순간, 나에게 ‘두 번째 하루’가 시작된다.
도어락 번호를 누르는 사이에도 이미 집 안의 소리가 들린다.
“아빠!”
아들의 밝은 목소리는 의심할 여지 없이 반갑다. 하지만 동시에 저녁 먹이기, 씻기기, 치우기, 재우기 같은 업무 목록이 머릿속에 차례로 나타난다. 게다가 ‘물음표 살인마’가 된 아들의 폭풍 질문, 갑작스러운 공룡 놀이 요청처럼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은 늘 준비되어 있다. 회사에서 집중하고 돌아와도, 집에서는 다른 종류의 집중이 필요하다.
회사와 집의 업무는 다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예측 불가능성이다.
아들이 잠들기 직전에 갑자기 눈물이 터질 수도 있고, 신나게 놀다가 다칠 수도 있고, 열이 올라 병원에 뛰어가야 할 수도 있다. 이런 일들은 하루의 계획을 가볍게 무너뜨린다. 회사에서는 내 계획대로 움직일 가능성이 더 크지만, 집에서는 아들의 기분과 가족 전체의 리듬이 모든 일정을 좌우한다. 그래서 퇴근 후의 바쁨은 종종 퇴근 전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
HR로 일하다 보면 ‘근로시간’, ‘복지’, ‘자율성’ 같은 거대한 단어들을 다루지만, 정작 부모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이런 작고 소박한 현실이다.
아들이 잠드는 시간이 30분 늦어지면 내 하루의 유일한 휴식이 사라지고, 설거지와 빨래가 유독 많은 날은 10시 전에 육퇴하는 것이 희망사항이 된다. 우리 집에는 아빠가 설거지를 하면 엄마가 아이를 씻긴다는 암묵적 규칙들이 있고, 이런 작은 합의들이 하루를 굴러가게 만든다. 하지만 진짜 균형은 늘 와이프와 나 사이의 조정, 포기, 선택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나는 회사와 부모가 서로를 이해하고 균형을 맞출 방법을 자주 고민하게 된다.
결론은 의외로 단순했다.
부모인 구성원이 회사에서 ‘충분히 유능하게 일하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고, 회사는 부모가 집에서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조직의 문화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예측 가능한 회의 시간, 갑작스러운 보고 일정 최소화, 유연근무에 대한 신뢰 같은 작은 변화들이 부모에게는 큰 힘이 된다. 그래서 나는 특별한 제도보다, 현실을 이해하는 배려가 조직에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루의 마지막, 불을 끄고 누우면 가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왜 퇴근 후 집에서 더 바쁠까?”
정답은 명확하다.
회사는 나를 직원으로 필요로 하지만, 집에서는 누군가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나에게 “외벌이에 육아까지… 힘들지 않으세요? 대단하세요.”라고 말하지만, 오히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마음이 뿌듯해지고 편안해진다.
나의 하루는 두 세계를 오가며 이어지지만, 그 사이를 지탱하는 건 결국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이다.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나는 퇴근 후 집에서 더 바쁘겠지만
어제보다 조금 더 균형 있게, 조금은 더 단단하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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