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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넛츠피 Jan 20. 2023

우리 집에 도둑이 들었다!

돈과 나의 이야기 2화


나는 부모님이 말하지 않아도 직감적으로 우리 집이 그렇게 넉넉한 집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엄마아빠가 힘에 부칠까 염려되어 이거 사달라, 저거 사달라 투정을 부리지 못하는 편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엔 지금 초통령 뽀로로처럼 세일러문이 한창 유행이었다.

사랑과 정의의 이름이라는 바람을 타고, 세일러문 내복, 세일러문 책가방, 세일러문 실내화가방, 세일러문 신발… 등 정말 많은 물건들이 세일러문 그림이 붙어 세상을 휩쓸고 있었다.


우리 집 보다 조금 여유로웠던 옆집에 살던 동생은 세일러문 다이어리가 무려 3개나 있었는데

핑크색, 파란색, 초록색 다이어리에 옆집 동생은 각종 세일러문 스티커를 붙이며 나에게 자랑을 하곤 했다. 나는 그저 부러웠다.


문방구를 오갈 때마다 엄마에게 사달라는 말을 할까 말까 고민했지만,

극도로 소심했던 나는 어느 날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질렀다.

맞벌이하는 엄마 아빠가 집을 비운 사이 엄마의 지갑에 손을 댔다.


무려 2만 원.


그날은 왼쪽가슴에 있던 심장이 가슴이 아닌 나의 귀 바로 옆에서 뛰고 있었다. 쿵쾅쿵쾅!


나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누가 볼까 무서운 마음에 주위를 살피면서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조심스럽게 식탁 위에 올려져 있는 엄마의 빨간 장지갑을 열어 세종대왕님 두 개를 빼어 들고 방으로 재빠르게 돌아왔다.


나는 엄마 지갑에 손을 댄 것이다!

나는 도둑질을 했다.


우리 집에 도둑이 있었다.


그건 바로 나!


2만 원이면 세일러문 다이어리를 2개를 사고도 남는 돈이었다. 이런 거금을 손에 쥐다니.. 여전히 내 심장은 왼쪽 가슴팍이 아닌 귀 바로 옆에서 아까보다 더 크게 뛰고 있었다. 쿵! 쿵! 쿵! 쿵!




 우리 집 도둑은 그토록 바라던 세일러문 다이어리를 사고, 매번 오갈 때마다 먹고 싶었던 집 앞 트럭에서 파는 상투 과자까지 사 먹어 버렸다.


남은 돈이 6천 원쯤 됐는데 바보 같은 이 도둑의 머리로는 남은 돈을 도대체 어디다 둬야 할지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훔친 돈으로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고 나니 돈이 필요 없어진 것이다.


“이제 이 돈을 어디다 두어야 한담..”


그때 책상 위의 구몬비 봉투가 보였다. 구몬선생님께서 다녀가시면서 엄마에게 구몬비를 청구하기 위해 전해달라고 준 봉투였다.

(당시엔 계좌이체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기라, 구몬선생님이 한 달에 한 번씩 구몬봉투를 두고 전해주고 가시면, 다음 주에 엄마가 구몬봉투에 돈을 담아 전달해 드렸다.)


이거다! 구몬선생님이 엄마한테 이 돈을 전해달라고 했다 꾸며내야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어디든 다 써버렸으면 완전범죄가 되었을 텐데… 어리석은 도둑은 남은 6000원을 구몬 선생님이 준 구몬봉투에 넣었다.

엄마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구몬선생님이 전해주라고 했다고 하면서 줘야겠다는 완벽한 시나리오를 구상했다.


그건 정말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빈틈없이 완벽한 계획이었다.

그리고 먹다 남은 상투과자를 베란다 쌀창고에 숨겼다.

정말 정말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리고 그날 밤 엄마는 일을 마치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 이거 구몬선생님이 주고 갔어”


“응? 이 돈은 뭐야? “


“선생님이 줬어. 난 몰라”


“??????!!!!!!! “


엄마는 의심스럽게 나를 쳐다보더니 곧바로 구몬선생님께 전화를 넣었다.


“ 아니 선생님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구몬비 봉투에 돈이 들어 있어서요.

혹시 선생님이 넣어두고 가셨나요?”

“네??!? 어머님 그럴 리가 없는데요..? 그건…. 제 돈이 아닌 것 같아요. 어머님”








“으애애애애애애애애애앵 엄마 잘못했어요”

엄마가 혼내지도 않았는데 잘못했다고 그 자리에서 싹싹 빌며 대성통곡을 했다.

나는 그날 하루종일 방에 갇혀 반성문을 써야 했다.


훔친 돈으로 산 세일러문 다이어리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반성문을 적었다.

“다시는… 엄마.. 지갑에.. 손을 대지 않겠습니다.”

“다시는… 엄마 지갑에 손.. 을 대지 않겠습니다.”


아빠도 집에 돌아와 나의 도둑질을 듣고 한번 더 나를 호되게 혼냈다.

 정말 아직도 그 기억이 선명할 정도로 내 10살 인생에서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가장 큰 시련의 날이었다.


그날 이후 아빠는 퇴근길에 종종 집 앞 트럭에서 상투과자를 사가지고 오셨다.

매번 허겁지겁 먹는 나를 바라보며 아빠는 “이게 그렇게 먹고 싶었어? “하고 내 머리칼을 뒤로 넘겨주곤 했다.

아무리 그래도 엄마지갑에 손대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그건 도둑이나 하는 나쁜 짓이라고 했다. 나는 과자를 입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 이후로 누구의 지갑에도 절대 손을 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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