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현, 현자
어쩌면 태현에게 현자는 유일한 가족이 되는 셈이었다. 그녀를 처음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태현은 자신도 행복해 질 수 있다는 사실에 벅차올랐다. 형수는 그녀의 집에 함께 살 수 있는 집이 있다고 저쪽 집에 거짓말을 한듯 보였다. 나서서 바로 잡을 수도 있었지만 모른척 했다. 그녀가 진실을 알았을 때는 혼인을 무를 수 없을 때였다.
정순이 현자를 태현에게 시집보내기로 마음 먹었던 이유는 하나였다. 정순의 남편처럼 술을 마시지 않고 착실한 총각이라고 중매쟁이가 말했기 때문이었다. 함께 살 수 있는 집까지 있다니 정순의 생각엔 이만한 혼처가 없다고 생각했다.
둘의 사주를 들고 점쟁이를 찾아가니, 이만한 궁합도 없으니 당장 결혼시키라했다.
성격급한 정순은 현자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몸이 안좋다고, 그러니 집에좀 들렸다 가라고 말이다. 착한 현자는 결국 정순의 뜻대로 결혼할 것이 틀림없었다.
아니 정순은 그렇게 만들 것이었다.
세번째 만남은 둘의 약혼식이었다. 작은 식당에서 상견례와 약혼식을 겸하여 식사를 했다. 현자는 울상이었고 태현은 꽤나 상기된 모습으로 보였다. 스물셋, 스물일곱 궁합도 안본다는 4살차이이지만 현자의 눈에서는 마치 어디로 팔려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눈물이 고여있었다. 현자는 지난 밤 정순이 해준 옥색 한복을 입었고, 태현은 검은 양복으로 멋을 냈고, 큰맘먹고 마련한 세이코 시계가 팔에 채워져있었다.
약혼식이라고 했지만 태현과 현자는 세번째 만남 이후에 태현의 자취방에서 같이 살게 될 것이었다. 정식으로 결혼식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날은 부부가 되는 첫 행사였다. 약혼식 내내 인현은 태현의 양복 소매너머의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시계 그거 참말로 좋아보인다”
“나도 시계하나 있음 어디 다닐때 차고 다닐텐디” 태현에게 인현은 계속해서 연거푸어시계를 탐내었다. 옆에서 인현의 처는 곁에서 인현의 말을 거들었다. “도련님, 원래 좋은 것은 형님한테 쓰시라고도 하고 그러는 거에유~” 버럭 화를 내버리고 단호하게 거절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제 방금 막 가족이 된 장인장모와 처제, 처남이 듣고 있었다.
부글부글 끓는 속을 삭히며 “그럼 형님 쓰셔유”하고 시계를 풀어 인현에게 건넸다.
약혼식 식사자리가 마무리 되고, 밥값을 계산할 때가 다가오자 형은 돈을 내지 않으려는지 뒷짐을지고 어슬렁 거리며 한참을 떨어져 서있었다. 많아야 열명 남짓, 동생의 약혼식에 얼마나오지 않은 밥값이 그저 그렇게도 아까운 내색이었다. 이제 아내가 된 현자에게도 면이 서지 않았고 처가식구들 앞에서 부끄러워 태현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혹시나 해 챙겨온 쌈지돈을 꺼내 밥값을 지불했다. 처가집 식구들에게 그저 창피한 감정을 어찌 숨길 방법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