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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 Oct 25. 2022

귀뚤귀뚤 왕귀뚜라미

[도감으로 숲누리기] ①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 동요 <오빠 생각>            




 한 달에 한 번씩 ㅅㅇ유치원으로 숲놀이하러 가고 있다.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OO산 숲놀이'라는데, 유치원 뒷문으로 나오면 바로 숲이 있었다. 유치원 아이들은 월요일마다 이 숲에 나와서 산책을 하고 있었다. 숲유치원이 아닌데도 동네 숲에서 산책할 수 있다니! 서울 한복판에서 숲을 누리는 이 아이들이 좀 더 깊은 숲을 만날 수 있게 도울 생각에 기뻤다.


 내가 맡은 햇살반, 꽃잎반은 만 4세, 여섯 살 반이다. 꽃과 새, 애벌레, 잎, 열매, 나무 등을 다달이 다른 주제로 만나는데, 9월 주제는 '가을 곤충'이었다. 숲에 직접 나오는 만큼 실제 살아있는 곤충을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곤충은 잎이나 열매 같은 자연물과 다르게 각자 하나씩 보기는 어려웠다.곤충 자체보다는 먹이나 흔적을 보면서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겠다 생각했다.


  한 가지 곤충으로 그날 수업을 이끌고 싶었다. 가을 곤충 가운데 어떤 하나를 골라야 할지 몰라서 <곤충 도감>을 꺼냈다.






각종 곤충 그림이 가득 채운 표지





 가을이 오면 하루가 다르게 날씨가 서늘해진다. 곡식이 여물고 과일이 익는다.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하다가도 한낮에는 더워져서 일교차가 10도를 넘기도 한다. 풀밭에서는 왕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린다. (...) 사마귀는 풀 줄기에 거꾸로 매달려 거품에 싸인 알을 낳는다. 모두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는 것이다.

세밀화로 그린 보리 큰도감 <곤충도감> 25쪽


                              

 도입부 가을 이야기에서 가장 먼저 소개된 곤충은 '왕귀뚜라미'였다. 귀뚜라미는 시나 노래 가사에서도 보이고, 보일러 이름에도 있어서 친숙한데 '왕귀뚜라미'는 처음 들어보았다. 왕귀뚜라미는 귀뚜라미의 한 종류인건가? 귀뚜라미랑 왕귀뚜라미가 다른 건가? 학생으로 돌아간 듯 설레는 마음으로 도감 차례를 펼쳐보았다.




                          

왕귀뚜라미는 여치, 방아깨비와 함께 메뚜기목에 속해있었다.







왕귀뚜라미

메뚜기목 귀뚜라미과
학명은 Teleogryllus emma

귀뚜리, 기또래미, 귀엽다!





 이름을 살피고 옆장에 세밀화를 보는데 광교산에서 아이들과 봤던 그 곤충이었다! 아이들과 '왕뚜기'라고 따로 이름 만들어서 불렀는데 진짜 '왕'귀뚜라미였다. 이름을 짓기 위해 자세히 들여다보았던 터라 그림을 보고 바로 기억이 났다. 직접 만났던 곤충이니까 유치원 아이들에게도 생생하게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겠다 싶어 자신감이 생겼다.



광교산에서 본 왕귀뚜라미




왕귀뚜라미는 가을밤에 풀섶이나 집 둘레에서 "뜨으르르르" 하고 운다. 앞날개 두 장을 서로 비벼서 소리를 낸다. 소리는 수컷만 내는데 암컷을 불러 짝짓기를 하려는 것이다. (...) 암컷은 앞다리에 있는 귀로 소리를 듣고 수컷을 찾아간다.
- 세밀화로 그린 보리 큰도감 <곤충도감> 80쪽            




 울음소리로 가을을 알리는 곤충답게 가장 먼저 소리에 대한 설명이 나와있었다. 생김새, 사는 곳, 한살이 등을 찬찬히 읽어보고나니 왕귀뚜라미가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다시 세밀화를 들여다보았다. 정말 머리가 둥글고 단단해보였다.


그림 ⓒ권혁도




 다행히 유치원 뒷산에도 왕귀뚜라미는 울고 있었다. 아이들과 숲길을 걸으며 왕귀뚜라미 소리를 듣고, 귀뚤귀뚤 소리를 흉내내며 누가 왕귀뚜라미인지 맞춰보며 놀았다. 앞날개를 비벼서 소리내는 왕귀뚜라미처럼 팔을 비벼보기도 했다. 가을을 알리는 왕귀뚜라미 이야기로 마무리하며 앞으로 아이들이 만나갈 가을에 왕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길 바랐다.


 유치원 수업 시간은 한 시간 반, 만 3세와 만 5세 반까지 여러 반이 동시에 숲에 나오다보니 공간도 제한되어 있다. 숲학교에서 두 시간 동안 여덟 명이랑 드넓은 산을 누비다가, 한 시간 반동안 스무 명을 데리고 숲에 있으니 깊은 숲을 만나게 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광교산에서 만난 왕귀뚜라미와 도감 덕분에 아이들에게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었다. 햇살받은 꽃잎처럼 반짝이는 스물한 명의 천사들은 이렇게 말했다. "누리 선생님이랑 숲에서 노는 게 제일 좋아요."


 왕귀뚜라미를 알게 된 이후로 울음 소리가 더 잘 들린다. 9월이 다 지나고 서리가 내리는 절기 상강(霜降)인 오늘까지도 왕귀뚜라미는 계속 울었다. 도감에 적힌대로 정말 11월 입동이 오기까지 가을밤을 노래할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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