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퇴사여행 in Moscow - 재회를 기약하는 작별
모스크바에서의 마지막 날. 여독을 풀기 위해 가능한 늦게 체크아웃을 하며 캐리어를 맡겼다. 산보하듯 걸어 볼쇼이 극장 앞에 섰다. 퇴사일이 정해지자마자 비행편을 예약한 다음 발레 공연부터 검색했는데, 그때서야 알게 됐다. 극성수기인 7월 말부터 8월까지 발레단 또한 휴가 시즌에 돌입한다는 것을. 많이 속상하긴 했으나, 낮에도 밤에도 아름다운 볼쇼이 극장에서 언젠가 반드시 무대를 만나리라 다짐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볼쇼이 극장의 건너편에는 칼 마르크스의 동상이 있다. 소비에트 연방의 이론적 근간을 구축한 경제학자이기에 러시아에 이런 동상이 있는 건 이상하지 않지만, 어쩌다 볼쇼이 극장의 맞은편에 위치하게 되었는지 그 연유는 사뭇 궁금하다. 그리 작지도, 그렇다고 위압적이지도 않은 동상의 그가 멀리 응시하고 있는 건 무얼까.
얼마 걷지 않아 역사박물관이 시야에 들어왔다. 여행을 할 때면 처음 마주한 도시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곳을 꼭 들리는 편인데, 모스크바에서는 박물관들을 방문하지 못했다. 곱씹을수록 모스크바를 다시 만나야 할 이유만 한가득이다. 먼 미래의 어느 날에는 다시 갈 수 있을까, 러시아.
부활의 문을 지나 붉은 광장에 섰다. 오른편으로는 레닌 묘에 입장하기 위해 늘어선 긴 줄이 보였다. 특정 요일에만 개방하는 이곳을 일정에 넣기 위해 애를 써봤지만, 이곳 역시 아쉬움으로 남기게 됐다. 왼편에는 카잔 성당이 있다. 17세기 러시아 정교회 성당을 재건한 곳으로, 아주 작은 내부에도 불구하고 성스러운 분위기가 부드럽게 온몸을 감싸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단체 관람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요함과 침묵이 전제된 묵직한 공기가 마음에 들었다. 차분하고 잔잔한 공간에 한참 서있다가 초 하나를 사서 불을 붙였다. 작지만 아름다운 이 성당에 흔적 하나를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성 바실리 대성당(Храм Василия Блаженного). 찬란하게 아름다운 외관만큼 내부도 숨 막히게 아름다웠다. 고풍스럽고 섬세하며 화려한 성당. 이쪽에서 저쪽을 엿볼 수 있는 내부의 창문들도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곳저곳을 탐방했다. 운 좋게도 이날 어느 남성 중창단이 성당 안에서 노래 부르는 걸 들을 수 있었는데, 울림 가득한 공간에서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가 특별했다.
벽부터 천장까지 다채롭기 그지없어서 쉽게 발을 뗄 수 없었다. 출구 쪽의 기념품 가게에서 엽서를 비롯한 이것저것을 구매하고 밖으로 나오기까지 꽤나 오래 걸렸다. 다음 일정으로 이동하면서 점심식사를 했다. 어느 호텔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까르보나라를 먹었는데, 맛이 신통치 않아서 별도의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이어 방문한 곳은 트레치아코프 미술관 (Государственная Третьяковская галерея).
매표소 대기줄이 꽤 길어서 힘들었다. 러시아의 미술관이나 궁전 등의 내부를 관람하러 들어가기 직전에는 언제나 널찍한 보관소가 위치해 있다. 두꺼운 외투와 부피가 큰 가방은 맡기지 않으면 안내원의 제지를 받을 수 있다. 물건을 맡기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처음에는 어색했으나, 가벼운 차림의 관람이 이내 편안해졌다. <트로이카> 등을 비롯하여 다양한 회화 위주의 작품들이 즐거운 충족감을 선사했다.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아서 정신없이 구경하다가 너무 늦게 미술관을 나섰다. 다음 일정으로 래디슨 유람선을 사전에 예약해두었기 때문이다! 고리키 공원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공원 입구에서부터 선착장까지 달렸다. 한적하게 여유를 즐기고 있는 공원의 사람들이 다 쳐다볼 정도로 열렬하게. 덕분에 늦지 않게 선승할 수 있었지만, 숨을 고르느라 한참을 헉헉 대야만 했다.
평소 유람선을 즐기지는 않지만, 모스크바의 유명한 건물들이 모스크바 강 주변에 있어서 시티투어 버스 같은 개념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강바람이 꽤나 쌀쌀하긴 했지만 (놀랍게도 한여름에 속하는 8월 1일이었다!) 며칠 전 만나고 온 건물들을 다시 한번 마주할 수 있어 기뻤다. 2시간 반의 소요 시간 동안 모스크바를 향한 작별을 고하며 허한 마음을 갈무리했다.
굼 백화점에 들러서 마트도 구경하고 유명한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붉은 광장과 볼쇼이 극장의 야경을 마지막으로 만끽한 뒤, 숙소에 맡겨둔 캐리어를 끌고 택시에 올랐다.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도 질리지 않는 그 야경은 3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여전히 아른거린다. 부디 평화가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모스크바에서 상트 페테르부르까지 가는 방법은 여럿 있다. 하지만 러시아 기차 여행에 대한 로망이 있는 사람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야간열차. 그냥 야간열차도 아니고, 붉은 화살. 특별히 시설이 좋다거나 깔끔하다는 그런 현실적인 이유가 아니다. Red Arrow. Красная стрела. 그저 붉은 화살에 탑승해봤다는 것, 그 로망이 유일한 이유이자 목표였다. 가격대가 있는 1인실로 마음이 기울고 있었는데, 천운처럼 맞이한 동행 덕분에 편안하게 2인실을 택하여 인터넷으로 예약을 완료했다.
출발 30분쯤 전에 기차에 올라 세수하고 취침 준비를 했다. 넓은 객실은 아니지만 침구가 개별적으로 포장되어 있어서 깔끔했다. 간단한 다과가 준비되어 있는 것도 좋았다. 아침 식사를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테이블 위에 종이가 구비되어 있었고, 출발 직후에 승무원이 해당 주문서를 회수해 갔다. 기내식 다운 애매한 맛이었으나, 기차 여행의 로망을 실현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늦은 시간에 출발했기에 창 밖 풍경은 시커멓기만 해서 이내 잠에 들었다. 덜컹거림은 꽤 심했지만, 소음이 크지 않았기에 피곤한 몸은 금세 잠으로 물들었다. 딱딱한 시트 위에서도 숙면을 취했고, 문득 눈을 떠 커튼을 걷어보니 창문 너머는 자연만 가득했다. 붉은 화살에 몸을 맡긴 채 러시아의 한적한 기찻길을 달리고 있는 이 순간이 현실이라니. 피곤함도 잊은 채 멍하니 창 밖에 시선을 둘 수밖에 없었다.
여행은 2년 반 전에 끝났는데, 이 여행기는 이제야 모스크바를 떠났다. 이 여행 이래로 해외여행을 한 번도 가지 못한 덕분인지, 사진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괜스레 가슴이 벅차오른다. 조만간 또 다른 여행을 후련하게 떠나기 위해서라도, 상뜨 여행기는 근시일 내에 마무리하고 말리라.
모스크바 4일 차
7월 말-8월 초라고 하여도 러시아는 춥다!
스카프와 가디건은 필수! 니트도 가능!
러시아 미술관 방문 시 두꺼운 코트와 부피가 큰 가방은 반드시 맡겨야 함
시내는 차가 꽤 막히므로 이동시간 주의 필요
고리키 공원은 상당히 넓음
야간열차 경험이 없다면 1인실/다인실은 후기를 찾아본 뒤 본인 성향에 맞는 선택 권장
4일 차 경비 약 6,700루블 : 성 바실리 대성당 (1,000루블) + 트레치아코프 미술관 (500루블) + 래디슨 유람선 (1,200루블) + 식사/간식 (3,000루블) + 택시/기타 (1,000루블)
До свидания, Москв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