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세계 3대 미술관, 에르미타주

첫 번째 퇴사여행 in St. Petersburg - 명성엔 이유가 있다

by 누비

뻐근한 몸을 이끌고 기차에서 내렸다. 야간열차를 이용하는 여행객이 많은지, 숙소 직원이 도시 도착 시간을 확인하고는 기차역에 픽업 차량을 보내준다고 했다. 의사소통에 약간 문제가 있었지만, 무사히 택시에 탑승하여 편안하게 숙소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하고 짐만 맡긴 뒤 바로 에르미타주 광장으로 향했다.



ⓒ누비, 에르미타주 미술관
ⓒ누비, 에르미타주 광장



커다란 광장 한쪽을 가득 채우고 있는 민트색의 건물을 마주한 순간, 드디어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당도했음을 온 마음으로 만끽했다. 화려함과 엄숙함을 두루 갖춘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과는 사뭇 다르게, 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광장은 정갈함과 단아함이 돋보인다. 익숙한 일상에서 완전히 분리된 세상. 유난히 푸르른 하늘과 어우러진 에르미타주의 미모에서 쉬이 눈을 뗄 수 없었다.



이른 아침이어서 행인이 적은 덕에 친구와 함께 양껏 인증샷을 찍고 있는데, 옛 궁인 복장의 남자가 다가왔다. 그의 말솜씨에 휩쓸려 친구가 함께 사진을 몇 장 찍고 말았다. 아뿔싸. 역시 돈을 요구했다. 생각보다 큰 요구 금액에 난감함을 표하기도 하고 찍은 사진을 전부 지우겠다고도 했으나, 그는 완고했다. 그러다 결국 정색한 그가 내뱉은 말 한마디에, 사직서를 던지고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회인 여성 두 명은 지폐를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It's my job, Missy." 라니! 분장을 하고 사진을 찍어 돈을 받는 게 직업이라지 않는가.



20190802_012.jpg ⓒ누비, 에르미타주 광장



에르미타주 미술관(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рмитаж) 개장은 오전 10시 반이었기에, 근처 카페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며 몸을 데웠다. 키오스크에서 구관과 신관의 통합권을 구매했다. 에르미타주 신관(General Staff Building)은 위에서 아래로 관람해야 한다는 조언을 사전에 읽었기에, 3층에서부터 걸음을 시작했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있어서 대여했는데, 익숙한 김성주 아나운서 목소리가 반가웠다.



<마르세유의 항구>, 폴 시냑, 1907
20190802_025.JPG <오두막>, 빈센트 반 고흐, 1890
20190802_038.JPG <기타와 바이올린>, 파블로 피카소, 1912
<구성 Ⅵ>, 바실리 칸딘스키, 1913



르누아르, 모네, 피카소, 고흐 등 익숙한 작가들의 작품이 많아서 수년 전 유럽 여행이 절로 겹쳐 보였다. 눈에 익은 화풍 중에서도, 고흐가 사망하기 두 달 전에 그린 작품이 확연히 눈에 띄었다. 실물을 직접 마주해야만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는 특유의 두터운 질감이 여전히 강렬했다. 불안한 심리가 유난히 잘 담긴 작품이어서 한참 바라보고 있으니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칸딘스키의 <구성 Ⅵ> 작품은 첫눈에 반했다. 커다란 캔버스에 담긴 무질서와 조화의 예술이 단숨에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 앞에서 한동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기념품 샵에서 해당 작품의 모조품을 구매하여 방에 걸어두었다. 회화의 매력은 시대가 달라져도 변함이 없다.



신관 관람을 마친 뒤에는 잠시 밖으로 나와서 점심 식사를 했다. 음식 앞에서는 식욕이 먼저이기 때문에, 수많은 사진들 중 식사 기록은 거의 없다. 혼자 여행할 때는 끼니를 거의 챙기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 동행이 먼저 귀국한 이 여행의 후반부에는 뭔가를 먹었다는 흔적조차 없다. 여행에서 먹는 것보다 걷고 보고 쉬는 것이 더 중요한 성향이어서 맛집을 검색하여 찾아가는 행위가 익숙지 않다. 그 나라에서만 즐길 수 있는 식음료 또한 훌륭한 문화라는 점을 알면서도 챙기지를 못하니, 매번 나중에서야 아쉬워할 뿐이다.



ⓒ누비, 에르미타주 구관 (겨울궁전)
ⓒ누비, 에르미타주 구관 (겨울궁전)
ⓒ누비, 에르미타주 구관 (겨울궁전)



에르미타주 구관, 속칭 겨울궁전. 18세기에 건축된 겨울궁전은,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 전까지 러시아 황제 차르가 거주하는 공간이었다. 기재된 역사로 능히 짐작할 수 있듯이, 이 건물은 곳곳이 화려하기 그지없다. 손에 지도를 꼭 부여잡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방들이 미로처럼 어지러이 산재되어 있어서 여러 차례 방향감을 상실했다. 어디에 시선을 두어도 볼거리가 가득해서 수없이 감탄하며 빠르게 지쳐갔다.



ⓒ누비, 에르미타주 구관 (겨울궁전)
ⓒ누비, 에르미타주 구관 - 황금공작시계



이토록 엄청난 양의 전시품들이 예카테리나 2세의 수집품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 놀랍다. 겨울궁전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을 고르라면 대제에게 바쳐진 파빌리온 홀의 황금공작시계다. 특정 시간에만 작동되며 공작새가 날개를 펼치며 화려한 위용을 뽐낸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직접 보지는 못했다.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에 버금갈 만큼 계속 사람들이 모여있어서, 사진 찍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이어 러시아의 에르미타주 미술관까지 방문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진진하게 관람한 곳은 다양한 종류의 전시품을 보유한 대영박물관이었다. 루브르는 어떠한 방향을 선택해도 관람 동선이 엉망진창일 수밖에 없는 건물이어서 몹시 피곤했다. 하지만 앞선 두 박물관은 대부분의 전시품이 제국주의의 약탈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어서 관람이 즐겁지만은 못했다. 그 점에서 조금 낫다는 평을 받던 에르미타주를 보유한 러시아가 현재진행형의 침략국이 되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누비, 성 이삭 성당



숙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사전에 신청한 백야나라의 야경 투어에 참여하기 위해 성 이삭 성당 앞으로 향했다. 작은 봉고차를 타고 상뜨의 주요 야경 스팟을 편하게 이동하며 볼 수 있다는 점이 만족스러웠다.



ⓒ누비, 표트르 대제 청동기마상



러시아 출신이 아닌 공후의 딸로서 러시아 황태자와 결혼을 하고, 표트르 3세로 즉위한 남편을 폐위시킨 뒤, 스스로 제위에 올라 다방면에 족적을 남기며 러시아의 '대제'로 기록된 예카테리나 2세. 그가 시할아버지이자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러시아 제국의 수도로 만든 표트르 대제에게 이 청동기마상을 헌납하며 입지를 확고히 한 것은 마땅한 전략이었으리라.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근간을 만든 두 대제가 도시 곳곳에 살아 숨 쉰다.



ⓒ누비, 에르미타주 야경



바실레오스트롭스키 섬으로 가서 뱃머리가 달린 독특한 형태의 로스트랄 등대(Ростральная колонна)와 스핑크스를 구경했다. 스핑크스 두 점의 턱이 부러져 있었는데, 진품을 의미한다고. 프랑스가 이집트에게서 구매할 예정이었는데, 프랑스혁명이 일어나 무산되는 바람에 러시아가 사 왔다고 한다. 겨울에는 네바 강이 얼기 때문에 그 위로 사람들이 걸어 다닌다는 생생한 증언도 들었다. 7월 말까지만 해도 백야로 인해 건물의 불빛이 훨씬 늦게 켜졌다는 이야기도 신기했다.



ⓒ누비, 피의 구원 사원 야경
ⓒ누비, 에르미타주 광장 야경



토끼섬과 오로라 호 등을 구경한 다음, 피의 구원 사원과 에르미타주 광장의 야경까지 둘러봤다. 모스크바와 마찬가지로 높은 건물이 없는 이 도시의 담백하고 고요한 야경을 즐길 수 있었다. 귀국 전에 네바 강을 따라 야경을 감상하는 유람선도 탔는데, 운하의 도시인만큼 배를 타고 보는 시야가 훨씬 다채롭고 아름답더라.



그러고 보니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물이 많은 도시임에도 물비린내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꼬질하고 쿰쿰한 마약 냄새가 가시질 않는 암스테르담이나 고여있는 물이 풍기는 꼬릿한 냄새가 곳곳에 배어있는 베네치아와 다르게 말이다. 바다에 인접해있는 세 도시의 차이점을 새삼 궁금해하며, 상트의 첫날을 마무리해 본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1일 차

관광객을 호시탐탐 노리는 길거리 예술인(!)의 마수는 잘 피해 다니자!

물론 독특한 추억을 남길 찬스일 수도..

드넓은 에르미타주 관람 전 체력 비축 필수

하루를 온전히 투자해도 괜찮을 에르미타주

황금공작시계 작동은 사전에 시간 확인하기

8월 초에도 강바람은 쌀쌀하니 따숩게 입자

5일 차 경비 : 에르미타주 통합권 (700루블) + 야경투어 (34,000원) + 식사/간식 + 붉은 화살 (모스크바~상트 기차, 한화 약 1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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