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퇴사여행 in St. Petersburg - 밝고 화려한 여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자마자 겨울궁전을 만났으니, 다음 일정은 응당 표트르 대제의 여름궁전이리라. 여름궁전은 시내에서 택시로 1시간을 달려야 도달할 수 있다. 대중교통도 있고 배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얀덱스 택시를 여행 내내 애용했다. 10시 반쯤 도착해서 부두까지 갔다가 돌아왔는데,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모든 관광객이 모인 듯한 인파에 깜짝 놀랐다. 덕분에 11시에 개시되는 분수는 제대로 시야에 담지 못했다.
여름궁전 페테르고프(Петергоф)는 러시아 황제들이 여름에 사용하던 별궁으로, 당대 절대왕정의 상징이다. 러시아의 베르사유 궁전이라고도 불린다지만, 휘황찬란한 사치와 향락의 사교계보다는 고즈넉한 왕족의 별장 분위기가 앞선다. 물론 궁 내부는 방마다 눈이 돌아가게 화려하지만, 적어도 외관은 그러했다. 정원의 조성과 관리가 잘 되고 있다는 점과, 드넓은 내부를 운행하는 차량이 있다는 점이 베르사유와의 또 다른 공통점이다. 방문 시기가 8월 초여서 그랬는지 몰라도, 여름다운 낭창한 매력이 사방에서 흘러넘쳤다.
여름궁전 기준으로 왼편의 정원을 크게 산책했다. 커다란 호수 너머 아늑한 박물관(Дворец Марли)이 꽤나 사랑스러웠다. 핀란드 만이 보이는 바닷가도 걷고, 특이하게 해자가 있는 에르미타주(павильон Эрмитаж, "비밀의") 건물도 구경했다. 시원시원한 길과 나무들이 걷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기분을 선사했다.
궁전 바로 앞에 서서 아래 정원을 내려다보는 시야가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워서 넋을 잃고 한참을 서있었다. 화려한 분수가 잘 정돈된 정원 한가운데의 반듯한 운하와 이어지며 그 끝의 바다와 만난다. 시원하고 탁 트인 정경을 양껏 담아내는 순간,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으로 꽉 막혀있던 내면의 응어리가 스르르 녹아내렸다. 수많은 나무가 있는 아래 공원(Нижний парк)과 깔끔하게 정리된 위 정원(Верхний сад)이 각각 공원과 정원이라고 명명되는 이유가 있었다.
여기서 바보짓을 하나 했다. 여름궁전의 Palace 티켓은 아래 공원 안에서만 구매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아래 공원을 이미 나선 후에야 알게 됐다. 이 먼 곳까지 어떻게 왔는데 궁전 내부를 보지 않는 건 억울하지 않은가! 결국 아래 공원 티켓을 재구매하여 다시 입장한 뒤, 긴 줄을 기다려 궁 안에 들어섰다. 작지 않은 금액이지만, 여름궁전의 관리에 조금이나마 후원을 했노라 자기 위안을 하며 웃어 넘기기로 했다.
여름궁전 내부는 각기 다른 컨셉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방들의 특이한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중국과 일본에서 가져온 물건들로 꾸민 방이 서넛 있었고, 다양한 러시아 전통 의상을 입은 초상화로 사방의 벽이 꾸며진 방도 신선했다. 저마다의 개성이 담긴 방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특색 있는 벽지들과, 그 벽지에 맞춘 창문의 커튼이 시선을 빼앗았다. 일관성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러시아의 궁전들을 보고 있노라면, 가장 극렬하게 공산주의를 추구했던 이 나라의 역사가 새삼 아이러니하다.
창문 너머 건물 밖의 평온한 일상을 엿보는 구도를 특히 좋아하는데, 여름궁전 창문의 틀 안에 담기는 정원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햇빛이 비치고 푸른 하늘이 선뜻선뜻 보이는 날씨가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전반적인 날씨를 능히 짐작케 했다. 여름궁전을 쭉 둘러보니, 예카테리나 대제의 미적 감각을 향해 재차 내적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이러한 공간에서 이토록 넓은 시야를 지닌 삶을 살다 보면 권력에 당연스레 도취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권력자들이 왜 권력에 익숙해지고 이를 당연시하는지, 인간의 감정적 논리를 다시금 곱씹어보게 만드는 곳이었다.
택시를 타고 다시 시내로 돌아오는데 차가 꽤나 막혔다. 전날 야경 투어에서 만났던 피의 구원 사원으로 직행. 모스크바의 성 바실리 대성당을 연상시키는 외관의 돔들도 사랑스러웠지만, 사원 내부는 구석구석 모든 곳이 세밀하게 아름다웠다. 사원의 모든 장식과 그림들이 모자이크로 구성되어 있는데, 음영을 표현하고 입체감을 부여하기 위해 섬세하게 다듬어 넣은 전부 다른 모양의 모자이크 조각들이 경이로웠다.
중앙 예배당의 호화로운 조각과 문. 어두운 내부임에도 화려한 색감을 뽐내며 번쩍이는 문과, 들여다볼수록 더 깊이 감탄하게 되는 섬세한 그림들이 자꾸 시선을 붙들었다. 19세기말 알렉산더 2세가 피습당한 장소에 세워진 이 살벌한 이름의 사원이 건축되기까지 20여 년이 걸렸다는 점이 전혀 놀랍지 않다.
벽면과 기둥은 물론이고 천장까지 빼곡히 채워 넣은 모자이크 그림들이 어마어마하게 화려하여 압도적이었다. 성 바실리 성당과 마찬가지로, 피의 구원 사원 역시 쏙 뽑아서 소장하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다. 바르셀로나의 사그리다 파밀리아 이후로, 이토록 사랑하게 된 성당들이 생겨서 행복하다. 다음 방문에서는 외관까지 완벽한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온 세계를 위협하는 독재자의 탐욕 때문에 요원한 소망이 되어 버렸다.
6시쯤 Chuck이라는 레스토랑에 가서 스테이크를 먹었다. 칵테일 블러디 메리를 여기서 처음 먹어봤는데, 핫소스가 생각보다 너무 매워서 많이 마시질 못했다. 강렬한 첫인상 덕에 블러디 메리라는 이름만 들어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그 거리가 떠오른다. 거하게 식사한 뒤, 상어 크림을 비롯하여 이것저것 구경하고 돌아왔다. 화려한 러시아 왕조의 흔적과 그 역사를 돌이켜보게 하는 작금의 현실에 대한 고민이 짙게 남은 하루였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2일 차
택시비가 저렴한 편, 일주일 이용한 얀덱스 비용 정산하니 원화 15만원 남짓 (인당 7만원)
여름궁전 분수 가동은 11시 전에 자리 잡기!
여름궁전 티켓 구매는 사전 확인 필수
피의 구원 사원 내부는 꼼꼼히 볼수록 놀라움
6일 차 경비 : 여름궁전 (1,500루블) + 식사/쇼핑/택시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