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퇴사여행 in St. Petersburg - 여행자의 특권
여행 하루를 하나의 포스팅으로 작성하던 루틴을 바꿔서,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의 3일 차와 5일 차 기록을 한꺼번에 남겨본다. 왜냐하면 3일 차의 사진이 없다! 일정 상 먼저 귀국해야 했던 동행의 마지막 날이었기에, 함께 거리를 걷고 기념품 쇼핑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한갓진 시간을 보냈다. 일요일이었기 때문인지 정확하게 모르겠으나, 이날 오전에는 왕복 8차선의 넵스키 거리에 차가 통행하지 않았다. 광화문 대규모 집회 참여 시 수차례 느꼈지만, 자동차가 금지된 넓은 차도를 두 발로 걷고 뛰는 기분은 꽤나 짜릿하다.
날개처럼 펼쳐진 카잔 성당 외부가 바티칸을 연상시켰는데, 실제로 바티칸을 본떴다고 들었다. 일요일인지라 예배를 온 신도들로 인해 내부는 몹시 경건했다. 중앙 제단의 왼편 그림 앞에는 기도를 올리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결혼을 하기 위해 방문한 부부도 보여서 신기했다. 성당 내부에서 남성은 모자를 벗고 여성은 머리에 숄 등을 두르는 것이 예의란다. 여행자 신분으로서 기본적인 옷매무새만 단정하게 하고 다녔다.
넵스키 대로 양쪽으로 기념품 샵이 즐비하여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눈이 팽팽 돌아간다. 바가지를 씌울 정도의 가격대는 아니지만, 마뜨료쉬까는 확실히 모스크바의 이즈마일로보 시장이 더 저렴하다. 피의 구원 사원 앞의 야외 매대는 흥정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기념품 샵과 이즈마일로보의 중간쯤으로 보면 된다. 하지만 가게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이 약간 고급지고 관리가 잘 된 느낌이다. 쇼핑은 모름지기 두 발로 걷고 두 눈으로 직접 보며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니, 우선순위를 명확히 해야 후회 없는 쇼핑이 되리라!
상트 페테르부르크 5일 차에는 사람이 적은 곳을 가고 싶었고, 그랜드 마켓 러시아(Гранд Макет Россия)라는 미니어처 박물관을 행선지로 정했다. 시내에서 다소 떨어져 있어서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야 했지만, 그만한 값어치를 하는 곳이었다. 야경을 보러 갔던 홋카이도 하코다테에서 카네모리 아카렌가 창고 쇼핑몰의 작고 앙증맞은 미니어처들에 파묻혀 정신을 차리지 못했었는데, 그랜드 마켓 러시아가 그 추억을 되살렸다.
온갖 종류의 다채로운 장소와 삶이 자세하고 사실적으로 표현된 것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그 크기와 섬세함이 연신 감탄을 자아낸다. 주요 관광지는 물론이고, 해변, 스키장, 선착장, 놀이공원, 시위대, 유람선, 화재 현장, 장례를 진행하는 묘지, 젖소가 가득한 들판, 비닐하우스, 기차역, 승마장, 학교, 공사장, 스케이트장, 군부대, 심지어 가라앉은 보물선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장소와 직업이 앙증맞은 크기로 작은 세상을 꽉꽉 채우고 있다. 다 차치하더라도, 기차가 저 선로 위를 주기적으로 지나간다구요!!
그뿐만이 아니다. 동쪽에서 시작하여 서쪽에 이르기까지, 매 15분마다 밤이 내린다! 천장의 불이 소등되면서 미니어처 세상의 LED 전구들이 반짝거리는 순간, 눈을 뗄 수 없는 황홀한 별세계가 펼쳐진다. 완연히 달라진 색감과 분위기에 사방에서 연신 탄성이 울려 퍼진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화려하기만 한 궁전에서 벗어나 이 환상적인 작은 세상에 필히 방문해야만 한다.
미니어처 세상에 난입할 수 있는 거대한 존재는 오직 먼지를 털어내는 직원의 조심스러운 붓 끝과 진공청소기뿐이라는 점도 즐거움을 선사한다. 소인국에 떨어진 거대한 걸리버의 시야각으로 곳곳을 탐험하며, 소소하고 재치 있는 상황을 발견하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투쟁과 여유, 추위와 더위, 번잡함과 고즈넉함이 공존하는 이 세계의 축소판이 이곳에 있었다.
다시 상트 페테르부르크 시내로 돌아가는 버스에 탔다. 화창하고 푸르른 하늘 아래에 어여쁜 색감의 건물이 눈에 띄어 어딘지 확인도 하지 않고 바로 하차벨을 눌러 거리로 내려섰다. 하늘색 건물과 금빛 돔이 우아하게 어우러진 러시아 정교회 성당(Николо-Богоявленский морской собор)은 동화책 속으로 들어선 듯한 충만감을 선사했다. 다양한 예술가가 살고 있다는 아파트 지구(Дом Р. Г. Веге)의 특색 있는 회색빛의 외양 역시 소설 속의 한 장면 같았다.
티 없이 맑은 날씨 아래 선선한 강바람을 만끽하며 산보하듯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는 평일 점심 직후의 일상적인 거리에서 차분한 여유를 온몸으로 들이마실 수 있는 것이 여행객의 가장 큰 특권. 한 걸음 한 걸음이 일상 속의 비일상, 행복 그 자체다.
마린스키 극장(Мариинский театр) 근처 식당에서 느긋하게 점심을 먹은 뒤, 유스포프 궁전(모이카 궁전, Юсуповский дворец на Мойке)으로 향했다. 예술 애호가인 귀족 집안다운 예술적인 면모가 가득했는데, 그중에서도 궁전 내부의 극장이 작지만 화려했다. 예술가를 대저택으로 초대하여 자신만을 위해 공연하도록 만들 수 있는 권력과 돈이라니. 포켓볼을 칠 수 있는 당구대도 신기했지만, 하단 사진처럼 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무늬의 방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날의 마지막 일정은 성 이삭 성당(Исаакиевский собор). 근엄한 외양을 지닌 성 이삭 성당 역시 내부는 어마어마하게 화려하다. 크기부터 압도적인데, 휘황찬란한 샹들리에와 기둥의 조각들, 천장의 벽화들을 보고 있자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 어마어마한 러시아 최대 크기의 정교회 성당을 위해 얼마나 많은 돈과 노력과 삶이 녹아내렸을지 상상하니 아찔하더라. 유럽의 여타 성당들에서는 만나볼 수 없는 사치스러운 호화로움이 러시아 성당의 개성이자 매력이다.
성경을 담아낸 벽화나 예수의 부활을 표현한 중앙 제단의 스테인드글라스도 대단하지만, 가장 압도적인 것은 다름 아닌 돔이다. 바깥에서 볼 때도 거대한 금색 돔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지만, 내부는 그보다 더하다. 찬란한 금빛의 12 사도가 둘러싸고 있는 메인 돔은 웅장하면서 고압적이다. 창 너머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의 양과 각도까지 의도된 듯, 고개를 한껏 젖혀 위를 바라보는 인간이 스스로 존재를 왜소하게 느끼도록 만든다. 거대함으로 개인을 짓누르는 종교의 전략은, 가톨릭도 천주교도 러시아 정교회도 다를 바가 없다.
다행히도 성 이삭 성당의 전망대의 탁 트인 시야가 억눌렸던 숨통을 부드럽게 풀어준다. 크게 한 바퀴를 돌며 사방을 감상할 수 있는데, 모스크바와 마찬가지로 높은 건물이 많지 않은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전경을 두 눈 가득 담아낼 수 있다. 하나의 도시에 오래 머무르니, 여유가 자연스럽게 피어올랐다. 다급하게 일정을 좇으며 해치우듯 목록을 지워나가는 여행보다는, 게으를 정도로 느긋하게 섞여드는 일상 같은 여행이 보다 길고 깊게 영혼에 새겨진다고 믿는다. 피부에 닿던 햇볕, 폐 깊숙이 들이마신 공기, 그 찰나들이 여즉 생생하므로.
상트 페테르부르크 3일&5일 차
말라야가(조지아 음식) : 둘이서 12만원이라는 거액 투자, 입맛에 맞지 않아 만족도 낮았음
다꾸러는 돔 끄니기 방문 필수!
공항 갈 때 숙소에서 호출해 준 택시여도 사전에 금액 합의 반드시 완료할 것
저녁 11시 이후로는 주류 구매 불가 (주류 냉장고를 자물쇠로 잠가 두며, 제복 입은 경찰이 앞을 지키고 서서 제지함)
그랜드 마켓 러시아 꼭 가기!
마린스키 극장에서 발레 보고 싶다
유스포프 궁전에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성 이삭 성당 내부/전망대 티켓은 기계에서 일괄 구매하는 것이 편함
성 이삭 성당 야간 전망대에서 야경 볼 수 있음
성 이삭 성당 앞에서 유람선 야경 투어 홍보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출발 위치 사전 확인 추천
5일 차 경비 : 그랜드 마켓 러시아 (690루블) + 유스포프 궁전 (700루블) + 성 이삭 성당 내부 및 전망대 (450루블&750루블) + 식사/버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