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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또 다른 퇴사, 또 다른 여행

프롤로그 | 백수가 너무 행복한 전직 회사원

by 누비

두 번째 퇴사 이후 두 달이 넘게 놀고 있다. 뒷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여유롭고 태만하게 빈둥대는 중이다. 이력서에 담기지 않을 새하얀 공백기가 불안해야 마땅하건만, 요일 감각마저 잃어버린 한갓진 마음은 안락하기만 하다.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이 좋아졌다는 말을 건넨다. 스트레스와 번뇌와 과로에서 벗어난 몸은 더 이상 비정상적인 오류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 푹 자고 잘 먹고 운동도 하며, 때로 따분하지만 아주 안정적인 하루들을 채워나간다.


이 담백한 일상에 곧 종언을 고한다.


어차피 죽음에 도달하는 순간까지 일해야 할 터다. 그렇다면 하루라도 젊을 때 행복한 추억을 잔뜩 만들어둬야 하지 않겠는가. 이 기회에 십수 년 간 품고 있던 여행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지워보기로 한다.


무려 70일을 여행 기간으로 잡았다. 구속도 제한도 없는 삶이란 이렇게 자유롭구나. 뒷일은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라는 무책임함도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안일함이리라.


기간이 짧지 않은 만큼, 여행 중간중간 글을 써볼 예정이다. 열심히 글을 쓰겠다 호언장담 해놓고 방치한 전력이 있어 민망하지만, 이번만큼은 허언이 되지 않도록 신경 쓸 계획이다.


사유와 성찰이 주된 목적인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 여행이다. 기록을 남겨야 고민이 깊어지고, 진하게 고민해야 자아의 그림자라도 구경할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일단은 무사 완주가 목표지만.


순례자들은 대개 이런 말을 한다고 한다. "까미노가 나를 불렀다" 라고. 종교도 없고 신을 믿지도 않는 나로서는, 순례길을 향한 동경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까미노는 어느 순간 마음속에 존재했다" 라고.



조만간 시작한다, 순례길 여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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