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 사이의 양쪽 발바닥에 잡힌 넓은 물집이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전날 동키를 사용해서 여력이 있는 아부지는 하루치 길을 다 걷기로 하고, 나는 버스를 타고 홀라당 이동하기로 했다. 그대로 에스테야(Estella)에서 만난 뒤, 로그로뇨까지 버스로 바로 뛰어넘는 것이 이날의 동선.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새벽, 풀배낭을 메고 먼저 길을 떠나는 아부지를 배웅했다. 전날 수박을 잘라먹으며 더위를 식혔던 알베르게의 테라스에 앉아 컵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하며 새벽 별을 감상했다. 구글맵의 대중교통 시간에 데인 바가 있는 지라 시간표보다 훨씬 일찍 정류장으로 향했다.
잊을 수 없는 시원한 수박의 맛
의외로 버스가 일찍 왔다. 그러나 에스테야까지 가느냐는 질문에 버스 기사의 고개가 좌우로 흔들렸다. 여긴 팜플로나 방향이므로 반대쪽에서 타라는 바디랭귀지를 대강 알아들었다. 문제는 맞은편에는 버스정류장이 없다는 것. 양방향 도로임에도 한쪽에만 정류장을 세우는 정서는 대체 무엇일까. 물음표와 불만을 삼키며 길 건너 카페에 들어섰다.
카페 콘 레체를 한 잔 시키고는 길이 잘 보이는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남은 시간은 거의 두 시간 남짓. 뭘 해야 할까 고민을 하며 현지인 가족과 강아지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맞은편 정류장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첫날밤 보르다 산장에 함께 묵었던, 대만에서 온 순례자 두 명이었다.
시작점이 동일하여 마을마다 매번 마주치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던 사이였으므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권했다. 한 사람은 시간이 넉넉하니 조금 걸은 뒤 다음 마을에서 버스를 타겠다며 먼저 일어섰다. 남은 한 사람은 나처럼 아예 걷지 않겠다며 눌러앉았다. 결국 이 두 사람은 버스 위에서 다시 만나 에스텔라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이 길을 걷는 속도와 방식은 각양각색이다. 당연히 정답은 없다. 그저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갈 뿐이다. 같이 시작했어도 끝은 다를 수 있고, 잠시 스쳐간 인연을 의외의 동선으로 다시 만날 수도 있다. 저마다의 걸음으로 각기 다른 이야기를 그려가는 것. 이것이 오래된 이 길의 매력 중 하나이리라.
라떼와 닮은 카페 콘 레체
나와 함께 남은 친구 이름은 조이. 직장상사에게 부탁하여 무려 6주의 휴가를 받아냈고, 꿈이었던 이 길에 섰다고 했다. 동행인은 직장동료라고. 호주 워홀도 다녀왔고 한국인 친구도 많아서 이런저런 이야깃거리가 끊이질 않았다. 심지어 키우는 견종도 같아서 더욱 즐거웠다.
동년배 여성의 삶과 가치관은, 한국이나 대만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확고한 비혼주의를 말하며, 우리 세대의 아시아 여성들이라면 다들 비슷한 생각 아니겠느냐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나 혼자도 행복하게 일상을 꾸려나갈 수 있는데, 결혼이 굳이 필요한지 묻는 여성들. 세상 곳곳에서 차오르는 변화에 연대감을 느낀다.
에스테야 성당 외벽에 묻어나는 세월
약간의 우여곡절 끝에, 에스테야 버스정류장에서 무사히 아부지와 재회했다. 동년배 한국인과 함께 걸어서인지, 나와 걸을 때와는 사뭇 다른 표정이 신선했다. 탁 트인 도로를 달리는 버스 위에서 만끽한 풍경과 두 발로 걸으며 마주했을 시야는 완연한 차이가 있었으리라. 그렇게 나와 아부지의 까미노 역시 달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