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산토 도밍고 데 칼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 도착. 부르고스(Burgos)
여러 이유로 이날 역시 나는 버스를 타고 아부지는 걸었다. 나는 도밍고에서 바로 버스를 타고, 아부지는 벨로라도(Belorado)까지 걸은 뒤 버스를 타고 부르고스에서 만나기로 했다.
글을 쓰는 동안 함께 한 아침식사
이날 브런치에 여행기 첫 글을 발행했다.
이른 체크아웃 시간에 쫓겨 배낭을 바리바리 싸들고 카페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휴대용 키보드로 기억 속 기분을 끄적였다. 별 내용은 없어도 글을 발행했다는 사실이 주는 해방감이 아늑했다. 감정을 언어로 갈무리하는 행위는 생생히 날뛰던 느낌을 매듭짓고 다음 걸음을 내딛을 수 있게 한다.
생각 이상으로 너무 힘들었노라고, 왜 이 고생을 자처했는지 모르겠다고 고해하는 한탄글을 쓰며 스스로의 마음을 되짚고 다독였다. 어차피 길은 여전히 발 밑에 있고, 나는 이 길을 이미 걷기 시작하지 않았는가. 엎질러버린 물을 어떻게 물들이고 흘려보내서 추억으로 박제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보다 생산적이리라.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 대성당
피레네를 부상 없이 잘 넘을 수 있도록 도와줘서 고맙노라 인사한 뒤, 두 동강 난 스틱 한 쌍을 길가의 쓰레기통에 망설임 없이 던져 넣었다. 생장에서 구매하여 열흘 남짓을 아주 알차게 사용했는데, 버리기 전에 사진 한 장 남기는 것도 잊었다. 그만큼 정신이 없었다, 초반의 이 길은.
극악한 배차 간격 덕에 시간이 너무 남아서 결국 버스 정류장 벤치에 죽치고 앉아서 멍을 때렸다. 그러던 중 순례자 하나가 다가와 제 가방을 잠시 봐달라 부탁했다. 어렵지 않았기에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그가 케이지 하나를 들고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얼핏 보니 아주 작은 생명체 하나가 담요 안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가격표 택을 떼지도 않은 새 케이지
사정은 이러했다. 로마에서 온 이 여성은 어제 걷는 도중 이 작은 아기고양이를 만났다. 걷지도 못하는 3개월 남짓의 아이를 그냥 둘 수가 없어서 걷는 것을 멈추고 로마로 돌아간다. 자신이 사는 집은 동물이 허용되지 않아서 직접 키우지는 못하겠지만 일단 치료를 한 뒤 입양처를 알아볼 예정이다. 이 길을 더 못 걷는 건 아쉽지만, 이것이 내 까미노다.
딱딱하게 굳어있는 마음을 단숨에 녹여버리는 인류애 가득한 사연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잠시 버스를 함께 타고 가는 동안 고양이에 대한 걱정을 나누며 위로와 응원을 건넸다. 까미노를 걸으며 너와 고양이를 위해 기도하겠노라 약속했고, 그 약속을 끝까지 지켰다. 잘 지내리라, 믿는다.
부르고스의 순례자상
까미노를 걷는 이유를 길 자체에서 찾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까미노를 걷는 순례자들과의 만남이 여러 이유를 만들어줬다. 저마다의 목표와 가치관을 지닌 다양한 이들이 이 길을 걷는 모습을 보고 느끼고 공감하며 많은 생각을 했다.
예기치 못한 만남과 인연, 다채로운 이야기와 삶이 있는 길. 이것이 까미노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라는 깨달음을, 길을 걷기 시작한 지 열흘 만에 비로소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