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별 Sep 17. 2023

저 어제 족발 먹었어요. 사진 보실래요?

스몰토크, 행복은 라지사이즈입니다.


 “오늘 급식 정말 대박이었어요!! “


 “어땠냐고요? 먼저, 괴상한 돌덩이가 있어서 선생님께 여쭈어 보니 (양손을 가위모양으로 만든 뒤 좌우로 몸을 움직이며) 게, 게 아시죠? 게 내장 튀김이라 하셨고요. 네. 진짜요. 게 내장, 진짜 정말 게 내장이요. 엄청나죠? 그 옆에 (두 번째 손가락을 세우며) 마찬가지로 돌처럼 딱딱한 새우튀김이 있었고요. 바다향 (팔을 파도처럼 흔들기) 가득한 샐러드가 나왔어요. 목에 넘기려다 해초가 살아있는 것 같아서 삼키기 어려웠죠. 국이요? 아~ 국은 (두 팔을 겹쳐 엑스 모양) 없어요. 국 대신 카레인데 카레맛이 아닌 카레였고요.(곁의 두 친구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 네? 후식이요? 아 후식도 대박이죠. 얼음덩어리 망고 아이스크림! (안경테보다 더 크게 눈을 뜨며) 아 아이스크림이라 좋다고요? (잠시 멈춤) 물론,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죠. 그런데 언 망고, 망. 고. 그. 자. 체. 가 얼어서 나왔어요. 굶었냐고요? 아니죠 질 수 없죠! 깍두기랑 먹었습니다. 그렇죠? 제가 좀 대단해요!”


 책가방과 실내화 가방 휘날리는 대화에 제대하자마자 복학했던 선배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습기 가득한 지하 과방, 가죽이 해진 소파에 앉아 해맑은 발성으로 군대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듣는 이를 웃게 만들겠다는 장난스러운 눈빛이 닮아서일까. 아니면 무용담식 스토리텔링에 배꼽 잡는 내가 여전하기 때문일까.   


 급식 공유 퍼포먼스가 끝나고 버블티를 받아 든 학생들이 퇴장하고도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어린이 고객님께서 작은 가게 아줌마 심심할까 과장하여 그렇지 분명 건강하고 맛있는 메뉴였을 터인데. 게 튀김에 새우튀김 함께 나오는 초등 식단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뭐였을까? 다른 음식인데 오해한 건 아닐까?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으핫. 귀엽잖아!

시내로 나가야 먹을 수 있는 호화식단인걸!!! 꿍춧빼텃. 발음이 너무 귀여워 몇 번을 소리 내어 읽었다!

 작은 가게가 뭐 그리 귀엽냐고. ‘귀엽다’가 뭐길래 초심 잃고 끼니 잊고 점점 더 빠져 일하냐 물으신다면 ‘나이 들수록 귀여운 게 최고던데요’ 할 것이다.

 나 없는 사이 더 귀여운 이야기 지나갈까 봐 자꾸 근무시간이 늘어나는 사장이다. 나는.




 다시 어린이 고객님들과의 스몰토크.


 (급식의 아쉬움을 버블티로 달래기 위해 왔다는 작은 말 시작. 표정은 생양파를 머금은 듯 구기며) “아 오늘 급식 짜장면 정말 최악이었어요!”

 (짜장면에 실패가 가능한 것인지 가볍게 궁금한 작은 대답) “아니 짜장면이 어떻게 최악일 수가 있는 거예요? 면이 잘못했나요, 소스가 잘못했나요?”

 (사춘기 시작이라 어른에게 길게 설명하기는 좀 번거롭지만, 눈을 크게 뜨며 집중해 주는 아줌마에게 짜장면을 적절히 설명함을 통해 지금의 버블티 맛이 얼마나 중요한지 전달하려는 작은 설명) “면은 그럭저럭이었는데 소스가 진짜 아무 맛 안 나고 정말 이건, 아 그냥, 직접 먹어봐야만 알 수 있는 맛예요.”

 (오케이. 의도 접수했다는 커다란 미소) “아~ 별 수 없이 펄을 많이 넣어야겠네요.”


 슬픈 짜장면을 대신할 버블티를 만드는데 반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운동으로 입학하여 요리로 전공을 바꾸었다는 친구. 앗. 빈손이 아니잖아!

배경 : 특별한 짜장면을 드시고 온 고객님들


 (대학생활 귀한 첫방학에 왜 일부러 여기까지 왔냐는 외침) 으아아아 어쩐 일로요~“

 (운동 더하기 요리는 미모력 상승인가 싶은 고객님) “사장님 생각나서요오~”

 (박카스 박스 눈물로 채우고도 넘치도록 감동한 마흔셋) “아가한테 이렇게 많이 받을 수는 없는데~ 왜 돈을 써요오~”


 박카스 하나 꺼내 뚜껑 열며 고객님 남기고 가신 대학 생활 스몰토크도 다시 열어본다. 바쁜 청춘에 이곳을 찾아주다니. 아득해지려는 순간 노란 비닐봉지를 든 고객님께서 '자기야~'하고 부르신다.


배경 : 짜장면 악몽은 잊고 즐거운 고객님들

 (또 눈을 크게 뜨며 큰소리 내는 사장) “고객니임~ 왜요오~”

 (오락실을 10년 경영했다 하셨던 고객님, 순금 장신구를 구매하셨거나 선글라스를 맞추셨거나 새 옷을 입으셨을 때 종종 들르신다. 아침에 오래 머물다 가셨는데 오후에 다시 방문하셨다.) “아니 고마워서~!”


 오픈 직후 오셔서 따님 건강검진 끝나기 기다린다 하셨고, 따님 먹일 죽을 끓이셨다 하셨다. 죽 이야기를 지나치려니 “내가 직접 끓였어. 죽을!”하고 강조하셔서 정답을 찾았다.

 “아니 이 미모에 요리까지 잘하셔요?”

 “아니 젊은 사람이 어떻게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하네. 다른 사람들도 다들 요리도 할 줄 아냐고 놀라던데, 내가 요리 못하게 보이지? 신기하네. 젊은 사람이~”

 신묘한 눈을 가진 젊은이가 된 나는 고객님 지갑 속 운전면허증 미소를 함께 감상했다.

 “자기가 몇 살이지? 그래 내가 자기 나이에 오락실을 시작했는데, 그때 내가 이렇게 예뻤겠다”

 고객님 40대를 떠오르게 하며 신통한 안목까지 지닌 젊은이인 나는 사실 ‘오늘의 스몰토크는 좀 기네요’ 생각도 했었다. 꼬였던 마음이 부끄러워진다.

 '이거 맛있다. 진짜 맛있다'를 13회 정도 연속 외치시며 말차버블티를 남김없이 비워주셔서 이미 오늘치 선물을 받았는데! 수박만 한 배 세 덩이에 ‘고’, ‘마’, ‘워’ 쓰여있는 것 같아 나도 '감', '사', '해'를 써보았다.



 

 드라마 엔딩처럼 배가 클로즈업되며 여유는 끝이 난다. 바빠질 시간. 오후의 스몰토크가 줄 서 있다.


 안녕하세요. 와 앞머리 잘랐나요? 왜요 더 예쁜데요! 아 맞아요 딸이 새로 그려준 그림예요. 정말요? 꼭 전할게요. 좋아할 거예요. 감상해 주셔서 감사해요~ 앗 그럼요. 거기 두고 가셔요~ 9시 마감이니까 그전에만 찾으러 오세요. 안녕하세요. 아하하 벌써 다 읽으셨어요? 와 대단하셔요. 그럼요 그럼요 빌려가셔요. 저는 재미있었는데 고객님께는 어떨지 모르겠어요. 오 정말요? 여자친구가 금방 다시 생겼네요. 아 지난번 그 친구랑 다시? 축하해요. 역시! 으앗 휴가 나왔나요? 건강해졌어요~ 어머님께서 정말 좋아하시겠어요. 아버님 커피에 시럽 한 번만 넣으면 되겠지요? 아녜요 아녜요 고객님. 거기 두세요. 제가 가지고 들어올게요. 바빠서 못 봤어요. 제가 해요. 무거워요. 으아 무거운 건데. 죄송해요. 감사합니다! 압! 반에서 1등이라고요? 대단해요 진짜. 일등이라니! 무서운 친구였네요. 축하해요 정말! 네? 초코스무디 드시는 친구분이요? 글쎄 한 달 전쯤 오셨던 것 같아요. 아~ 유학 가셨구나!! 단짝이 떠나 서운하시겠어요. 그래도 요즘 영상통화도 편하고! 으아 아녜요~ 관장님 드세요~ 자꾸 죄송하게요. 그렇지만 저 약식 정말 좋아해요. 감사히 먹겠습니다. 자꾸 신세 져요.


 덜렁거리는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아르바이트 아가에게 말했었다.

 “이렇게 일을 잘하니 창업하면 1,000미터 줄 서는 가게 사장님이 될 거야.”

 그 친구가 답했다.

 “솔직히 일은 자신 있는데 우리 가게처럼 스몰토크는 못하겠어요.”




 첫 장사 시작 전 서현역 교보문고, 영풍문고에 주말마다 달려갔다. 시험날 부족한 공부 대신 가방 가득 책을 밀어 넣던 때처럼 책을 담고 또 담았다. 한 달에 한 번은 광화문과 종로 서점을 찾았다. 펼치지 못한 페이지에 ‘망하지 않는 비결’이 있을까 초조해 책을 잔뜩 짊어져야 안심이었다.

 책으로 긴장을 달래던 초보 자영업자의 초심에는 많은 다짐이 있었다. 한결같아야지. 친절해야지. 눈앞의 손익을 따지지 말아야지. 아끼지 말아야지. 그 비장한 원칙 중 스몰토크는 없었다.

 수줍음 많은 반려견 돌사진에 함께 일렁이고 오랜 칩거 생활을 딛고 이겨낸 취업에 함께 그렁거리고 이별을 삼키며 타는 입대 열차에 함께 울렁일지 몰랐다. 임신-출산-어린이집 등원, 입시-입학-입대-제대로 이어지는 중요한 순간들에 답글 다는 역할은 생각하지 못했다.


 계획에 없던 그 '함께하는 스몰토크'가 작은 가게의 주요 업무가 되었다.


 '함께'라 표현했지만 '진한 함께'는 또 아니다. '비 오네'와 다를 바 없는 짧은 소통. 부담 없는 작은 공감들을 주고받는 관계. 말이 싫으면 눈인사만 전하는 사이. (3년 넘게 매일 만나도 말 한마디 나누지 않은 분들도 많다.)

 



 10살 아가의 야식 족발 자랑에 “아 부럽다”를 나누는 40대. 14년간 주부생활을 하던 새내기 사장이 3년 6개월째 버티기까지 이 소소한 감탄사들이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작고 귀여운 문장을 모으는 즐거움이 나를 더 바쁘게 만든다. 힘들지 않냐 묻는 분들께 이 스몰토크 한번 마셔보시라 권하고 싶다.


"저 어제 족발 먹었어요! 사진 보실래요?"


"스몰토크, 행복은 라지사이즈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