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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별 Aug 14. 2023

초심 잃은 작은 가게

옥경 씨 고마워. 덕분에 바쁘다 말할 자격이 생겼어요.

 “드디어 얼굴 보네. 밖에서 얼굴이 안 보여.”


 우주에서 제일 맛있는 초밥집 사장님, 다온초밥 옥경 씨가 가게에 들어서며 농담을 한다. 장사뿐 아니라 세상만사 초보인 내게 옥경 씨는 늘 든든한 선배가 되어준다. 바지 패션이 잘 어울리고 운동화 마니아이며 한번 본 사람을 잊지 않는 초능력을 지닌 옥경 씨가 웃으면 오래 즐겁다.

 월요일은 초밥이 그리운 요일이다. 다온초밥 휴일이라 방학에 혼자 등교하는 기분으로 출근한다. 카페인 섭취가 3배로 늘어난다. 3배 커피 때문인지 옥경 씨 빈자리 때문인지 월요일은 쓰다.


월요일에는 먹을 수 없어요. 쩝.

 나의 짝사랑 대상인 프로 사장님께서 ‘가게 붐빈다 얼굴 보기 힘들다’ 우쭈쭈 해주시니 초보 사장 마음 우쭐거린다. 선배님 말씀 알사탕처럼 볼에 넣고 돌돌 굴리다 앗! 달콤한 생각이 떠오른다. 아 그냥 바빠서 못하고 있다 생각하자. 옥경 씨가 나보고 바쁘다잖아. 얼굴 보기도 힘들게(옥경 씨가 유독 손님 많을 때 들르나 봐. 아니다. 옥경 씨 대박집 기운 덕에 나까지 바빠지나 봐) 바쁘다는데!

 ‘왜 이리 못쓰고 있는지 반성하고 와라’ 하며 나 자신을 복도 밖에 세워둔 지 오래이다. '북'다운 브런치북을 완성하고 싶다 꿈만 꾸며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 이 녀석, 너 왜 이러냐, 만날 목차와 제목에 첫 문장만 뒤섞다 내일을 맞이하고 마는 바보 멍청이. 중얼중얼 잠드는 내게 옥경 씨의 농담이 위로가 되었다.

 반성을 부르는 반성을 줄여야지. 작은 가게라고 할 일도 적은 것은 아니다. 퇴근 후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집정리 좀 하면 피곤해 쓰러지기도 하고 피곤은 참아지더라도 내일의 일을 위해 좀 자야 한다. 미라클 모닝을 하다 보니 미라클 실수가 생겨 전보다 한 시간 정도 더 자고 있다.




 주부 생활을 그대로 유지하며 사장이라는 이름 하나 추가해 볼까 했던 초심과는 이별한 지 오래이다. '열심히 할 생각이었지만 이 정도까지. 으하하' 점심 겸 저녁을 간단히 해치우며 혼자 웃곤 한다. 초심과는 다르게 나의 생활, 가족의 생활은 모두 작은 가게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작은 가게를 찾아주시는 큰 마음들을 받다 보니 더 열심히. 더 감사하며. 더 바쁘게. 초심을 잘근잘근 씹어먹는 최선으로 임하고 있다. 초심 씹기 덕에 한동안은 밥알 씹는 것도 버거워 삼키기 식사를 했다. (그렇다고 안 먹는 것은 아니다. 덜 씹는 아이들로 차곡차곡 챙긴 덕에 나의 맵시는 점점 더 동그랗게 귀여워지고 있다.)


작은 가게, 어쩌다 이런 문자도 받습니다.


 맥락 있는 열 편 이상의 글로 브런치북을 쓰겠다 가당찮은 포부에 고민만 하다 찰나의 자유시간은 끝이 난다. 목차 마인드맵이 글이 되었다면 벌써 몇 권 썼어야 하는데 멀어진 초심처럼 희미해진다. '언젠가는!' 하며 미루는 이야기가 늘어가는데. 바보 같기는. 옥경 씨 말 믿고 당당하게 바쁘다 핑계 대며 그냥 생각날 때마다 끄적이자. 뭐. 쓰다 보면 나름의 흐름이 살짝 보일지도. 뭐.


 넣어만 두기에 작은 가게의 일상은 너무도 귀엽다. 작은 초심으로만 운영하기에 작은 가게는 넘치게 귀엽다.




 월수금. 마감 5분 전 뛰어오는 남학생들이 있다. 네다섯일 때도 있고 더 많을 때도 있고. 삶아둔 블랙펄이 소진되어 아쉬워할 때도 있는 친구들이다.


 지난주 월요일.

 우르르 달려와 음료를 주문하는데, 앞친구가 펄추가(500원). 두 번째 친구가 더블펄 추가(1,000원). 세 번째 친구 펄추가와 더블펄 추가 중 고민. 아직 뒤에 두 친구가 기다리며 친구들의 주문을 재촉하는 중. 펄의 양이 아슬아슬해서 말했다.

 (500원 환불을 부탁하는 사장) “지금 펄이 많이 남지 않아서 지금 주문부터는 기본펄 하나만 가능해요. 맨 뒷 친구는 블랙펄 기본 양도 안될 것 같은데 혹시 더블펄 추가 친구가 500원만 환불받으면 안 될까요? “

 (귀여운 허세 충만한 중2 고객님) “동전 쓸 일 없어서 안 돼요~“

 (더 귀여운 뒷 고객님들) "아 이 OO", “나 못 먹냐!”

 (귀여운 허세 충만한 중2 고객님) "그럼 내 다리 사이로 지나갈 수 있냐?"

 (평소 학생들이 음료 흘려도 허리 구부리지 말라 내가 닦겠다 하는 사장) "아니 무슨!!!!!"

 나의 놀람이 끝나기도 전에 선풍기 강풍에 책장 넘어가는 속도로 휙 한 친구의 무릎이 바닥을 스친다.

 (절대 가학적이거나 폭력적이거나 일방적이거나 공포스러운 분위기 아님을 전합니다)


 더블블랙펄 친구는 500원 동전을 들고 친구의 블랙펄 한 국자를 허락한다. “아 수치스러워”하면서도 신이 난 마지막 학생. 직전의 사태에 당황하여 멍하던 나는 마지막 친구의 희열이 담긴 포효에 고마우면서도 어깨가 무거워진다.

 더 열심히 삶아야지. 더 정직하게 삶아야지. 더 맛있게 삶아야지.


 모든 친구들의 음료가 전해지고, 무리 중 한 명이 말한다.

 “야 그래도 이렇게 나눠 먹으니 좋다~”

 격한 장난 뒤의 교과서 같은 한마디가 마음에 새겨진다. 이런 문장을 선물 받다니.

 더 열심히 살아야지. 더 정직하게 살아야지. 더 맛있게 살아야지.


 아이들 뒷모습에 인사를 남기는데 어둑하고 고요하던 가게 밖 도로에 단발머리 여고생들 목소리가 들려온다. 쉬는 시간 전력질주로 넓디넓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사 먹던 못난이 만두가 생각났다. 학교 매점의 못난이 만두는 10분의 휴식을 더욱 휴식답게 삼킬 수 있게 하는 상징물이었다. 잠깐의 쉬는 시간을 진정 쉬는 시간으로 누리기 위해 택한 간식이 내가 만든 버블티라니. 교복 입고 툭하면 책상에 엎드려 눈물 뽑아내던 단발머리로 돌아가는 밤.


 그리고 수요일.

 중2 남학생의 수치를 막기 위해 마감 직전에 맞추어 펄을 삶는다. 우르르 친구들이 버블티 대신 다른 간식을 고르면 삶은 펄을 그대로 버릴 수도 있겠으나 별 수 없지. 끓여야지. 늦게까지 공부하는 중학교 2학년 아가들의 “이렇게 나누어 먹으니 좋다~“를 듣기 위해, "아 수치스러워"를 듣지 않기 위해. 초심 잃은 작은 가게의 타피오카펄 담긴 솥은 마감 직전에도 끓고 있다.




 7월 1일 동네에 알라딘 중고서적이 문을 열었다.

개업 첫날밤 방문하고 다음날 방문하니 점장님께서 “어제 오셨었지요?”하셨다. 점장님의 눈썰미 담긴 매장은 구석구석 깔끔하고 예쁘다. 후로도 종종 들르는 나의 쉼터이다. 지난 일요일 준우랑 책을 읽고 사고팔고 하는데 점장님께서 “오늘은 자제분과 오셨네요.”하셨다. 앗 한 달이 넘게 지났는데!

 내향인답게 매우 수줍었으나 한편으로는 책을 좋아하는(좋아할 것이라 예상되는) 분께서 기억해 주시니 살짝 찌릿했다.


 부끄러움과 즐거움을 선물하신 알라딘 점장님께서 지난주 우리 매장을 두 번이나 방문하셨다. 첫 방문은 오리지널 버블티. 두 번째는 펄 추가 초코 버블티. 처음 들어오실 때 한눈에 알아본 내 눈은 당황하여 흔들렸지만, 다행히 점장님께서 마스크 쓴 나를 알아보지 못하셨는지 뚝뚝하고 딱딱하게 음료를 받아가셨다. 두 번째 오셨을 때에는 알아보셔서 더 모른 척하시는 걸까 싶기도 했으나 쭉 모른 척하기로 했다. 퇴근 후 휴식을 위해 고객으로 오신 점장님께 업무의 연장 같은 순간을 투척할 수는 없지.


 책은 내게, 초심 대신 내 중심 모두를 갈아 넣고 있는 작은 가게 일정이 여행이라 느끼게 해주는 친구다. 온종일 펄을 삶으며 책에 빠져 있는 나와 온종일 책을 만지며 버블티를 좋아하시는 점장님. 정반대이지만 마치 같은 여행 패키지 일행이 된 기분이다. (혼자만의 착각)




 수요일 뒤 금요일.

 밤 단체 주문 2건으로 펄이 부족했다. 블랙펄도 소진되고 체력도 소진된 밤이었다. 8시 56분 비를 맞으며 달려 들어온 아가들에게 펄 마감 소식을 전하자니 미안을 넘어 죄스러웠다. 온몸으로 죄송해하는 내게 “아~(아쉬운 표정을 잠시 띄우다) 괜찮아요.” 해주는, 담백한 허세의 중학교 2학년 아가들. “다 같이 못 먹으면 오히려 좋아”를 남기며 아가들은 화이트펄(최애 블랙펄 대신) 음료를 들고 빗속을 달린다.


 분명 따로 걷는데 손을 잡고 걷는 것처럼 보이는 뒷모습.


 ‘다 같이 못 먹으면 오히려 좋아’라니. 나도 좋다. 나누어 먹으니 좋고 다 같이 못 먹으면 오히려 좋다는 문장이 담긴, 귀여운 명언집 같은 이 작은 가게가 좋다. 손잡지 않아도 찰싹 달라붙은 사이들이 다녀가는 이 공간이 좋다. 친구들과 교복치마 찢어질까 무섭게 달려가며 먹던 못난이 만두 같은 버블티를 만드는 이곳이 좋다. 눈코입귀이마 안 예쁜 곳 없는 옥경 씨와 같이 울고 같이 웃는(자영업은 울 일도 웃을 일도 많은 세계이다, 특히 초보사장에게) 이 가게가 좋다. 세계문학전집 중 가장 중후한 종이향이 나는 책 같으신 알라딘 점장님 찾아주시는 이 작은 가게가 좋다.


김 동그라미 안에서 서로를 끌어안아요. 다온의 타코 군함.


 "너무 좋아 초심만큼만 열심일 수 없어요. 너무 귀여워 초심만큼만 빠질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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