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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별 Dec 03. 2020

수능 전날 마흔 아줌마가 '힝' 하고 운 이유

감동 권리금은 없나요?

“저 이제 못 와요.”


캐럴을 크게 틀었던 탓인지 처음에는 잘 안 들렸다.


여럿이 와서 마주 보며 웃음을 뿜던 친구들.

연유 커피를 우르르 줄이어 주문하거나

마카롱 하나씩 쪼르륵 주문하던 친구들.

체격을 보면 성인 같고 미소를 보면 중학생 같은 귀여운 친구들.


그 친구들 중 동그란 안경을 쓰고 말보다 미소가 먼저이던 학생이, 어제 저녁 혼자 들어섰다.

밖은 어두웠고 학생의 안경에는 살짝 김이 서렸다.


뚱카롱 2개.


말을 걸면 어색해할 것 같아 조용히 포장하는데

카운터 가림막 건너에서 캐럴을 타고 목소리가 들려온다.


- 네?

잘 못 들었다.


눈이 마주치고 학생은 목소리도 입모양도 좀 더 크게 다시 말해준다.

- 저 이제 못 와요.


어머 깜짝이야. 왜 갑자기 눈물이!

눈물은 목젖 정도에 꾸역꾸역 걸어두고 웃으며 대답한다.


- 아 수능 보는구나. 다른 동네에 살아요?

- 네 동천동이라......”

- 고생 많네~ 오늘 바쁠 텐데 일부러 얘기해주러 오고 고마워요.”

- 친구들도 이제 못 오겠네 ~

- 네......


몇 마디 더 나누며 문까지 배웅했다.

- 내일 잘해요~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힝”


어둠에 섞이는 검은 패딩 뒷모습에

차렷하고 긴장했던 눈물들이 정말, "힝" 소리를 내며 튀어나왔다.


힝. 크리스마스 캐럴과 함께이니 어둠도 찬바람도 모두 선물이었다.




상가 임대차 계약서를 썼던 것이 딱 일 년 전이다.

작년 12월, 계약서 특약사항을 꼼꼼히 살피며 이런 감동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거리두기 강화 기간이라 추워야 맞는데 마음속 온기는 옹기종기 가득이다.

오늘도 7평은 맙소사!

주민등록증 나왔다며 수줍게 자랑하는 고객님.

카페 글 보았다며 친정엄마표 파김치를 건네시는 베이비펌 고객님.

다이어트 중 치팅데이로 영광스럽게도 우리가게를 찾아주신 고객님.

정말 '달아서' 주는 것이지 아무 의미 없다며 단감 두 개를 꺼내시는 고객님.

고글, 쫄쫄이 복장(자전거 라이딩 복장인데 정확한 명칭은 모름)으로 방문하셔 샤인머스캣 한송이를 두고 가신 고객님.


'커피 1500원, 버블티 1900원, 마카롱 1000원부터' 라 적고 시작한 이 가게에

고객분들은 돈보다 더 큰 것을 지불하고 가신다.


오든 말든 '완벽한 남'에서

앞으로 못 올 것이란 인사 정도는 남기고픈 '어설픈 남' 이 되었음에

수능 볼 아이는 물론이고 수능 볼 먼 친척조차 없는 마흔 아줌마는 눈물이 고였다.

 



바닥 권리금, 시설 권리금, 매출 권리금으로 나누어 생각하고

그 합을 총 권리금으로 계산한다고 책은 말했다.

내가 받는 이 감동들의 크기를 권리금으로 환산한다면 어마어마할 텐데!

 

어제, “사장님은 손님도 많은데 다 기억하세요?” 하는 분이 계셨다.

“고객님처럼 좋은 분만 기억하는데요!" 대답하며 서로 하하하.


이렇게 매일 차곡차곡 쌓이는 감사와 감동들.


지금 주민등록증을 처음 받아 든 친구들이 일하게 될 때, 그 앞에 시현이나 준우가 고객으로 서게 될  수 있다.


혹시 모르지.

조금 더 담아 보낸 마음이 우리 아이들 앞에 먼저 도착해

'감동 권리금'이란 이름으로 부풀고 있을지도.


우리 아이 수능 전날, 단골 가게 사장님의 한마디에 흔들리던 마음이 평온해질지도 모르잖아.

 



수능 전날 동천동 사는 학생은 어떤 마음으로 잠들었을까.

오늘 아침 컨디션은 어떨까.

 

다음에는 꼭 사인을 받아두어야지. 곧 유명해질 터이니!!

가게에 어울리겠다며 멋진 그림을 선물해준 친구와 경찰대 지원하는 피부 뽀얀 친구, 아이스티에 꼭 에스프레소샷 넣어 마시는 눈이 큰 친구, 김동률  목소리의 아메리카노 친구와 아무리 추워도 초코 스무디만 시키는 과묵한 친구.


수험생 친구들이 "시험 끝나고 자주 올게요" 하면

"서울 가서 놀아야지 왜 동네에서 놀아 시험 잘 보고 오지 마요 오지 마~" 하는 동네 카페 아줌마는, 단골손님들의 수능 대박을 기원하며 수능 아침을 시작한다.


오늘치 감동 권리금이 이미 입금된 기분이다.


어제의 "저 이제 못 와요." 덕에

오늘의 7평은 좀 더 따뜻할 것 같다.


( 개구진 생각 하나 :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도

“저 이제 못 와요.” 하며 안녕을 고한다면

가는 길 허기져 돌아오지 말라고

커피에 버블티에 마카롱에 뚱카롱에 양 손 가득 챙겨 보낼 터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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