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1장 - 이야기, 다윗과 예수님>

by 유이한나무

'다윗 -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필자는 본인의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들은 성경 이야기,

그중 다윗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함에 있어 필자의 어머니가 이야기'꾼'이었다고 첫 문장을 시작한다.


같은 이야기도 너와 나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 각기 다르고, 그 반응 및 전달력 또한 다르듯

이야기'꾼'의 면모를 갖출 수 있다는 건

언제나 자녀들을 향해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했을 때

빠른 막힘에 자주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내겐 실로 부러움 그 자체였다.


신앙적 상상력을 더한 이야기

왜곡과 변질이 없는 이야기

전체의 중심에 예수가 있는 이야기


다윗 이야기는 인간으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장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배우고 이해하기 위한 기본 토대라고 말한다.


"인간적(human) = 그리스도인다운(Christian)"



여기서 잠시!!

신앙적 상상력에 관하여..


내게 현재 섬기고 있는 교회 공동체를 만나게 된 계기는 특별하다.

나는 결혼과 함께 정착한 지역에 새로운 교회를 만나야 했고, 아직 굵은 머리를 가지고 있던 내게 웬만한 교회는 다 건방져 보였고, 꼰대스러웠다.

아내의 지인 언니로부터 소개받아 찾아간 교회, 교회는 개척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예배는 크게 임팩트가 없었다. 예배 후 돌아오려는 찰나, 개척된 지 얼마 안 된 교회에서 예배 후 소모임이 있다고..


"바이블톡톡(Bible Talk Talk)"


일정 분량의 성경 본문을 인도자가 읽어주고, 3회에 걸쳐 누군가 그 본문을 이해한 대로 말해본다.

괄호 넣기로 본문을 다시 한번 살핀다. 이후 자유로운 질문과 그에 따른 인도자의 설명과 해설과 말씀.


성경이라는 건 일독 한번 해보지 않았으며,

누구나 알만한 성경 속 유명 이야기 또한 편집된 기억 말고는 전무했던 내게,

생각 한 번 해본 적 없는 성경 속 그 시대의 다양한 배경(환경, 당시 국가 정세, 종교, 문화)을 바탕으로 등장인물의 나이와 성경 속 시간의 흐름을 이해하기 시작하는데, 그때의 신기한 체험은 내 생애 전환점이라 가히 말할 수 있다.


더 감사한 건 그때의 예배후 소모임이 그날이 첫 시작이었다는 걸 얼마 후에야 알게 됐다. 임팩트 없는 예배라며 머리 굵은 나를 그대로 살게 할 수도 있었던 그 날...





다윗 이야기에는 성경 속에 흔하다 할 수 있는 기적이라는 것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보통의 우리는 성경을 대할 때 소위 어떤 '영적 원리' 나 '도덕적 지침' 혹은 '신학적 진리'를 뽑아내려는 나쁜 습관에 빠져드는 일에 일침을 가한다.


"복음의 방식은 다름 아니라 이야기다."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상상력을 가지고 거기에 참여할 때 우리는 더 넓고 더 자유로우며 더 정연한 세계에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줄 전에는 몰랐다! 그 모든 의미도 전혀 깨닫지 못했다!"



성경에는 한 인간으로서 성숙하는 방법을 배울만한 모델이 특이할 정도로 없다는 말에 갸우뚱.


나는 생각한다.

그간 많은 성경 속 인물의 이야기를 설교 및 큐티 외 다양한 통로로 들으면서

무엇을 생각했었나?

무엇을 배웠나?

무엇을 다짐했나?

무엇을 느꼈나?


아마도, 필자의 말처럼 '너는 아직 덜 되었다', '너는 아직 멀었다'라는 것을 바탕으로

나름의 모방을 시도한 후 얼마 가지 않아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부지간에 흘려버렸을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을 때 가장 살아 있다.'


다윗은 인간이다.

불행한 아버지였고,

신실하지 못한 남편이었고,

시적인 재능을 지녔던 미개한 족장이었다.

성공하는 삶에 대해서는 특별히 배울 게 없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었던 인간으로서 일생을 통해 넘쳐나는 체험과 증언이 있다.


'그의 전 생애는 하나님과의 대면이었다.'



다윗의 이야기는 예수님 이야기의 한 축이다.

대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지닌 신적인 요소보다는 인간적 요소를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더 어려움을 겪었다'



말씀을 듣고, 예배를 드리며, 성경 일독을 넘어 통독을 해보려 하며

내가 목적하는 바는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라는 삼위일체를 부르짖으며 기대하는 바는

단연코 기도로 쏘아 올리는 바람의 이루어짐일 텐데,

그 성취의 날 또한 코 앞에 다가오기를 스스로 정하게 되는 오류 속에서 신적 요소를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현세를 사는 다윗의 생애와 그 이야기가 주는 충격은

40을 이미 넘어선 내게 그동안의 삶에서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져왔던 일들에 대한 답(?)을 준 것이다.


범접할 수 없는 압도적인 존재로서의 신.

신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감히, 그리고 어이없게도 오랫동안 밀당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전조와 징후와 예기와 준비와 예언과 약속을 통해 자신을 잠기게 하셨고

나와 같은 인간들이 그분의 길에 자유로이 참여토록 초대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식'


다윗은 두드러질 정도로 너무도 인간적이었다 말한다.


싸우고 기도하고 사랑하며 죄를 짓는 다윗

야만적인 철기 시대 문화의 도덕과 관습의 제한을 받는 다윗

여덟 명의 아내를 둔 다윗

분노하는 다윗

빗나가는 다윗

마음씨 좋은 다윗

춤추는 다윗 등...



현세를 사는 다윗의 열정, 힘, 전심전력하는 자세, 오로지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태도를 엿보는

시편 18:29


참으로, 주께서 나와 함께 계셔서 도와주시면

나는 날쌔게 내달려서 적군도 뒤쫓을 수 있으며,

높은 성벽이라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내게도 열정, 힘 전심으로 전력하며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태도가 있는가?


언젠가, 아니 조만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꼭 하고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전지적 시작 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