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은

<2장 - 이름, 다윗과 사무엘>

by 유이한나무

다윗이 훗날의 왕으로서 기름부음을 받는 과정과 그 의미를 짚는다.

신앙적 상상력이 더해진 필자 어머니의 이야기는 매우 선명하게 그려진다.


턱수염이 무릎까지 내려온 노인, 사무엘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느긋함의 선지자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베들레헴의 들에서 뛰노는 아이들이 동네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무엘의 방문

흥겨운 예배와 하나님 앞에서의 축제를 위해 왔다는 사무엘

마을 중앙광장 무대의 큰 의자에 앉아 있는 사무엘

이새의 아들들을 하나씩 면접하는 사무엘

거드름 피우는 장남 엘리압, 지적인 체하는 속물 둘째 아비나답, 잔뜻 멋을 부린 셋째 시므아

결국 선택되지 못한 아들들과 실망하는 이새와 군중, 그리고 의아한 사무엘

막내 (히브리어 '하카톤')라 불리던 무 존재감 다윗의 등장과 '호명(呼名)'


다윗은 하카톤이라 불렸다고 한다. 아버지인 이새로부터도.


하카톤

하찮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뉘앙스가 깔린 말로서, 중요한 자리에는 나서지 말고 빠져야 할 인물


다윗은 '양치기'였다. 농장에서 가장 힘이 덜 드는 일, 잘하지 못해도 별 해를 불러오지 않는 일을 하는 존재였다. 양치는 일을 해야 했기에 사무엘이 방문했을 당시, 베들레헴으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었을 것이며, 누구도 다윗이라는 이름이 아닌 막내(하카톤)의 존재가 사무엘의 방문과는 무관하다 여기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

그렇기에 결국 그 막내(하카톤)가 사울을 이을 왕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에도 크게 관심 갖고 지켜본 사람이 없었을 것이라는 소개.




상상을 더한 이야기는 이해와 납득을 하기에 그다지 어려운 내용이 아니었다.

비할 바가 아니라 생각되지만 비유를 들자면,

현 우리나라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정치에 대해 나름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일반화할 것 없이 나라면

나의 지역구의 후보는 누구이며, 그가 당선되기를 당연 바랄 것이고

지지하는 정당의 유명 후보들은 누구인지를 궁금해할 것이다.

그런데 선거가 이뤄지기도 전 내가 예상하던 후보가 공천되지 못했을 경우

또는 선거 후 낙선을 했을 경우

그래도 정치에 관심이 있다 여긴 나조차

선거에, 그리고 내가 가진 한 번의 투표권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게 사실이다.




그렇게 다윗은 '다윗'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다윗은 단순한 평신도에 불과했다. 꼬마 목동이었다.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것이 아니었다. 즉, '사역으로' 부름을 받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런 다윗이 부적절하다는 암시는 없다.

다윗 이야기 속에서 그는 약동하는 생동감을 가지고, 대담무쌍하게, 창조적이고 예술적으로 사랑하고 기도하며 일하는 인간으로 그려진다.


그런 다윗이...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을 입은 왕으로서 지명되었다.


이러한 점은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 이름 없는 서민, 변변치 못한 사회적 지위와 신분

즉 지구 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는 이야기일 수 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일 수 있지만,

사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잘 모르며 알아도 크게 관심이 없거나 실제로서의 체감을 느끼지 못하고 체감하고 싶지 않으며, 그럴 여유도 없어 보인다.


다윗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은 나에게

나의 신분, 위치, 처지, 능력과 무관하게, 그 어떤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당신이 명하신 제사장으로서 사는 삶으로 초대하시고

그렇게 하나님과의 관계 맺기를 끊임없이 제안하신다.


언제나 하나님은 나와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단순했다.


나를 기쁘게 하려 하지 말고, 나를 기뻐하라.

나에게 너를 이야기하고 네게 들려주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라.


그러나 나는, 그리고 대부분의 우리는


'아 네~ 그렇군요. 근데 잠시만요, 제가 좀 바빠서...'

‘그 일은 감사하구요, 다른 일이 좀 생겨서...’


압도적으로 크신 하나님의 존재를

아주아주 많이 제한한다.

그 능력을, 성품을, 선하심을 적정선에서 제한한다.




다윗

구약 성경에서 600번 이상, 신약 성경에서 60번 이상 반복되어 나타나는 그 이름.

하나님은 구체적인 이름을 가진 개인들과 관계를 맺는다.


다윗의 기름부음을 소개하는 이야기에서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그의 이름이었다.


우리는 각자 이름이 있다.

그저 세상에 태어나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가져야 하니까, 불려야 하니까 지어진 이름이 아닌

그 이름이 지어지기 전 이 세상에 피조물로서 존재 자체로 나타나진 우리 자신이 있었고, 그 정체성을 이루는 그 어떤 이름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다윗의 이야기가 다윗이라는 이름이 불리며 시작되었듯이


나와 우리의 이야기는 언제든 시작될 수 있다.

이미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


나와 우리,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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