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 일, 다윗과 사울>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
- 요한복음 14:12
예수님을 닮는 일, 소위 크리스천이라고 자신을 소개할 수 있다면 그 깊이와는 무관하게 예수님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라는 건 조금은 확신에 찬 나의 예상이다.
예수님이 말하는 당신 자신이 하는 일, 그보다 큰 일은 무엇이며 당신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니...
대체 무슨...
대부분 비유로 설명되던 예수님이 들려주시던 복음은,
상세 설명서를 눈 앞에 대고 친절하게 천천히 읊어줘도, 그래서 이해를 시켜도, 또 다른 궁금증에 의문으로 까지 발전해 버리는 나와 같은 사람에겐
복음은 소귀에 경읽기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는 게 그나마 감사한 일이다.
사울과 다윗, 다윗과 사울
둘 모두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아 왕으로 지명되었고, 현재 왕인자와 앞으로 왕이 될 자로 한 공간에 머물게 된다.
사울은 다윗과는 달리 그 첫 등장이 화려했다.
엄청난 장신에 사랑스러운 겸손을 지닌 인물, '온 백성 가운데 이만한 인물이 없다'라고 소개된다.
왕임에도 하던 농부일을 하는 등 왕의 자리를 특권으로 여기지 않았음이 분명함을 알린다.
그런 사울 왕의 삶이 황폐해졌다.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생각했고, 일을 먼저 생각했다.
사울은 왕으로서의 일을 잘하고 싶어 했고, 그 방편으로 하나님을 끌어들인 것.
하나님을 일에 끌어들인다?
굳이 풀어서 설명하지 않아도, 아니 풀어서 설명하려면 길어지기만 하는 무수한 단어와 표현들이 많을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 지점이 생긴다.
그러나 그 지점 언저리를 흘깃 보는 정도일 뿐 왜? 어떻게? 뭘? 어쨌길래?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할 수밖에 없는 그 지점...
그렇다면, 즉 기름부음 받은 사울이라는 인물이 왕이 되고, 승승장구하다가 어떻게 황폐해지는 삶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는가를 생각하는 건 명확하게 찾아 밝히 알기 어렵다.
필자가 설명해주는 말이 있긴 하나,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 설명을 통해 알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말하는 게 아님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반가울 것이다.
필자는 일에 관하여 경고한다.
'일은 성(性)보다 훨씬 많이 사람들을 유혹에 빠뜨린다'
성경에서 기름을 부음을 받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일을 받는다는 의미이며
그 일이 네게 맡겨졌으며, 그 일을 내가 해낼 수 있다는 의미도 담겨 있음을 분명히 한다.
왕업
일이란 일을 통해 자신의 주권을 표현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본디 인간이 하는 일이란 주권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연장이요, 거기에 참여하는 활동이다.
일에는 존엄성이 깃들여 있다. 왕업으로서의 위엄이 깃들여 있다.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고 20년 동안 왕으로서 인정받지 못했다.
다윗이 왕으로서 한 첫 번 째 일은 나쁜 왕을 섬기는 일이었다.
사울의 궁정에 들어가 종이 되었으나 다윗의 경우에는 종이 되는 것과 왕이 되는 것은 반대의 의미가 아니었다.
다윗의 종으로서의 섬김은 와이 되기 위한 어떤 도제과정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종으로서 섬기는 일 자체가 이미 왕으로서 통치하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긴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김으로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되려 높아진다.
드러나고 눈에 띄는 사회적 지위, 주체성을 가질 수 있는 일정량의 권한,
누군가에게 무시당하지 않을 만큼의 무언가를 만들기 위한 노력,
필연적인 자타와의 경쟁...
작은 자로서 큰 자가 되어가는 일이라는 것
분명히 나보다 못해 보이나 나보다 낫게 여기려 해 보는 것
이 또한 능력, 부, 성품, 인격, 지위, 권한 등 그 무엇 하나라도 내가 가졌다 싶은 느낌이 없다면
생각조차 해보지 못하는 천상의 가치관일 뿐이다.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것 하나 없다 여기는 자신을 품고 사는 이라면
다윗의 종 된 섬김으로 왕의 일을 한다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할 것이다.
필자는 이번 장의 핵심 메시지를 친절한 하나의 문장으로 던져준다.
'왕업을 행하는 사람들은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지 휘파람을 불며 일한다.'
뭔가 명쾌한 메시지로서 들린다.
그러나 나는 이 문장에 대해 꼭 단편적 의미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