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위대한 동화

<4장 상상력 - 다윗과 골리앗>

by 유이한나무

크리스천이 아니어도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

이 유명한 성경 속 이야기는 사실 가장 위대한 동화이자

놀라운 상상력을 가졌던 다윗의 당연한 삶의 한 부분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엘라 골짜기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 대치하고 있는 두 나라


이스라엘과 블레셋

두려움과 증오와 오만이 뒤섞여 당장이라도 피바다로 변할 것 같은 분위기

그런데 어떤 위험도 느끼지 않는 듯

엘라 골짜기의 무릎을 꿇고 앉아 시냇가의 돌멩이 몇 개를 주워 드는 다윗


다른 이보다 어깨 위 정도는 더 컸다는 이스라엘의 왕 사울

2미터가 훨씬 넘는 장신의 거인 골리앗

그 둘 사이에 무릎을 꿇고 앉은 다윗

놀랍게도 다윗의 얼굴엔 옅은 미소마저 감돈다.




어떤 일이 있었으며,

어떻게 다윗은 저렇게 태연히 행동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내 기억 속의 이 위대한 이야기는 단순하다.

다윗이 물맷돌을 던져 골리앗의 투구 사이 얼굴을 맞추고 쓰러진 골리앗의 칼을 빼앗아 들고 그의 목을 내리쳤다는 것


이 위대한 이야기가 그 오랜 세월 동안 단 한 번의 깊고 호기심 가득한 질문 없이

그러려니... 그랬겠거니... 라고 여겼던 것에 대해 난 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윗 이야기의 주제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진짜 나 자신이 되고 성장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첫째, 이새의 아들 중 이름도 없는 하카톤이라 불리던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는 일,

즉 우리 자신은 하나님이 그분의 목적을 위해 선택하고 뽑으신 존재라는 사실


둘째, 왕으로 부름 받지만 왕의 궁정으로 뛰어 들어가 일을 하는 다윗

하나님의 목적이 삶 가운데 펼쳐지는 장소가 왕업을 수행하기를 배우는 우리의 일터라는 사실


그럼 이제 셋째, 우리 곧 그 이전에 나의 상상력이 골리앗에게 사로잡히거나 그러던지 말던지가 아닌 하나님께 사로잡혔어야 한다는 사실



블레셋과 대치하고 있던 이스라엘인들은 골리앗에게 압도당한 타락한 상상력뿐이었다.

그들은 작고 이름 없던 하카톤, 다윗을 보잘것없는 존재로 여겼다.

다윗의 형제마저 자신들에게 먹을 것을 챙겨 찾아온 동생을 업신여겼다.


악한 것에 의해 우리의 상상력이 지배당하고 그 사고방식이 결정되는 순간, 우리는 선한 것과 참된 것,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없게 된다.


다윗만은 예외였다. 특별했다.


블레셋, 골리앗,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은 오로지 하나님께만 사로잡힌 상상력,

그런 다윗이 엘라 골짜기에 등장했고, 다윗은 이스라엘인들이 이교도 거인 앞에서 웅크리고 있는 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이스라엘인, 이들은 하나님의 군대가 아니었던가? 오로지 하나님과만 관계를 맺는 그 세계,

다윗만이 알고 있는 그 세계에서는 저 거인 따위는 대수롭지 않은 존재였다.


베들레헴 언덕과 풀밭에서 양을 돌보면 다윗, 양을 지키며 사자와 곰과 싸우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시고 가까이 계신 분이신지를 깊이 체험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철저히 연습해 온 다윗에게는

사자의 포효보다 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 훨씬 더 실제적이었다.


다윗은 전장에 와 본 적이 없다.

그 엘라 골짜기 시냇가에 와 본 적이 없다.

블레셋의 거인을 본 적이 없다.


다윗은 어떻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던 것일까?

그는 왜 이 특별한 자세, 무릎을 꿇을 수 있었던 것일까?

주변 상황을 살필 수 없는 행동, 전장에서 상상할 수 없는 행동,

그 무엇이 그토록 다윗이 대담하게 저 거인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게 만든 것일까?


사실 다윗은 사울로부터 얻은 왕의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칼을 차고 나아갈 수 있는 영광을 얻었다.

그러나 이내 곧 모두 벗어던진 것이다.




지금까지의 삶을 사는 동안 우리 모두는 직접적인 연관이 있거나 없거나

가끔이라도 눈을 돌려 바라볼 수 있었던 어떤 분야의 전문가들의 이야기나,

따를만한 사람의 조언이나, 충고 등을 꽤 많이 겪게 된다.

조금 나긋해진 성격에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여유가 생긴다면

이런 순간은 더 많다고도 볼 수 있다.

그 어떤 이들이 하라는 대로 해보는...그런 순간들...


필자는 이렇게 말한다. 내 정곡을 정확하게 찌르는...


"그러고 나면 우리는 얼마 못가 도무지 움직일 수 없게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관습적으로 남들을 따라 살 것인가?

풍부한 상상력을 지니고 무릎으로 살 것인가?


별 볼일 없는 전문가들에게 기대고 의지며 살 것인가?

하나님의 창조, 성령님의 기름부으심, 예수님의 구원을 입은 존재로 살 것인가?




'달려가는 다윗'


쿵쾅거리는 걸음으로 이스라엘 진영으로 걸어 나오는 거인을 향해

다윗은 달려 나간다.

그 거인도, 이스라엘인들도 당황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다윗의 물매가 두어 번 빙빙 돌더니 돌멩이 하나가 날아가 거인의 이마에 깊숙이 박히고

이내 쓰러졌으며, 곧 목숨을 잃는다.





가장 위대한 동화,

이 성경 속 이야기를 동화라고 표현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동화, 대체로 어린 시절 읽게 되는 이야기로서 그 이야기 속에서 배우는 교훈과 의미가

평생토록 선명하거나 희미하게 남는다.


다윗의 전 생애 이야기 속에서

기적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돌아보면 나는 그동안 이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제목의 성경 속 이야기,

그 장면을 하나의 기적으로만 여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오롯이 철저한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하나님의 창조물로써 기름부음을 받아 그분의 통치 안에서 순종하며 살아온 다윗은

기적이 아닌 현세에서의 당연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사람,

즉 온전한 인간으로 살았다.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물리친 이야기


오직 기도에 흠뻑 젖어 있는 상상력만이 그 날 엘라 골짜기에서 있었던 그 거룩한 역사를 알아볼 수 있다.


그 거룩한 역사를 수많은 기적의 에피소드 중 하나로만 알았다니...

미비한 호기심은 사실, 내 일생에 여러 방면으로 날 부끄럽게 한다.


나는 상상하고 싶어 했다.

그 무엇이든 상상하는 걸 즐겼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오래가지 못하는 것, 이건 그 어떤 것도 성장시키지 못한다.


온통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잠겨 있게 할 수 있는 것,

다윗의 인간됨, 즉 나의 인간됨이 강력하게 발휘될 수 있게 하는 것.


상상력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현실을 제대로 직시할 수 있는

그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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