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우정 - 다윗과 요나단>
미쳐버린 왕과 그를 섬기는 또 다른 왕
몰락해가는 왕, 그의 아들, 그리고 친구
요나단.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불가능이라고 해야 맞는 말이다. 가당치도 않은 욕심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의 칭송을 받을 수밖에 없던 인물 다윗은
그가 마음을 다해 섬기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그 인물 사울에게서 만큼은
사랑을 받기는커녕 미움을 넘어선 증오에 의해 여러 번 죽임을 당할 위기에 놓였었다.
'다윗을 벽에 박아버리겠다'라고 말하던 사울
불 같고 비이성적이며 살인적인 광기는 점점 침착하고 치밀하게 계산된 살인 음모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블레셋과의 또 다른 전쟁터에 내보내는 일
다윗을 사랑한 그의 딸 미갈을 허락함에 있어 또 따른 위험을 부여하는 일
사위가 된 이후에도 딸이 함께 거주하는 집에 가서 병사들을 시켜 죽이라고 할 만큼의 그 증오는
끝을 몰랐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했을 때, 다윗은 바른 일만 행하고 있었다.
그는 블레셋 거인을 죽여서 이스라엘의 난국을 해결했고,
불안정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사울의 영혼에 안정과 치유를 가져다주었다.
이스라엘이 필요로 하는 사람, 그럼에도 모든 일에 겸손했고 오만하거나 거들먹거리지 않았던 다윗이었다.
그렇게 좋은 일을 하고도 그는 거의 죽을 뻔했던 것.
좋은 일을 함에도 비난을 받거나 최선을 다하지만 느닷없는 심한 반대를 겪는 일은
언제나 혼란스러운 일이다.
잘못한 일에 대해서 벌을 받는 일은 그다지 유쾌하진 않지만 그것으로 인해 당혹스러워하진 않는다.
다윗.
그는 이러한 자신의 심경을 그의 친구 요나단에게 토해 놓는다.
삼상 20:1 다윗이 라마 나욧에서 도망하여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죄악이 무엇이며 네 아버지 앞에서 내 죄가 무엇이기에 그가 내 생명을 찾느냐
다윗에게는 요나단이 있었다.
다윗은 사울의 광기, 발광, 비열함, 증오를 겪는 와중에서도 요나단과의 우정을 통해 흔치 않은 사랑을 경험했다. 요나단은 다윗과 함께 끝까지 자신의 아버지 사울을 위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결국엔 다윗의 도망을 돕는다.
다윗에게 마음이 끌렸던 요나단은 제 목숨을 아끼듯, 다윗을 아끼는 마음이 생겼고, 가까운 친구로 지내기로 굳게 언약을 맺고, 주의 이름을 걸고 한 맹세로 서로의 사이뿐만 아니라 각자의 자손들까지 그 증인이 되도록 하자고 했다.
우정
불혹의 나이를 갓 넘긴 나, 떠돌이 생활과 마음과 주머니의 여유가 핑계가 되어
내겐 친구가 없구나 라고 자주 생각하던 나에게는 이미 낯선 단어이다.
하긴, 사랑이라는 것의 가치도 끊임없이 새기고 살펴야 하는 판에 우정이라니...
우정은 다소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요나단은 다윗과의 우정으로 큰 대가를 감수해야 했다.
아버지로부터의 미움, 왕이 될지도 모르는 자신의 미래 희생
요나단은 기름부음 받은 다윗으로부터 하나님을 알아보았고, 기름부음 받은 자의 당연한 고난과 위험을 이해했는데, 다윗을 통한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졌지만 요나단은 감정적인 보상조차 받지 못했다는 것,
다윗을 피신시킨 이후, 다윗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다는 사실은 깊은 슬픔을 끌어 온다.
그럼에도 요나단은 사울의 궁정에서 이전의 다윗처럼 자신의 일을 다 했다.
아버지를 따라 전쟁터에도 나갔을 것이며, 다윗을 쫓는 일에도 동행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상황이 언약을 무효화시키진 못했다.
우리에게 있어 '사울의 궁정 ; 사랑의 언약을 지키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결혼? 가정? 직장? 문화 환경?
우리도 어렵지만 위와 같이 언약을 지켜내는 경우를 경험한다.
결국 승리하는 것은 우리가 처한 환경이 아니라 우리가 맺은 언약이다.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은 위대한 경험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은
그 사람의 가장 깊은 내면에 있는 것을 굳게 다져주는 것.
시간을 들이고, 그 깊은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 봄으로서 가장 그 사람 다운 것을 알아보고,
인정과 격려를 통해 그것을 굳게 다져주는 일이다.
다윗에게 요나단은 그러한 존재였다.
요나단이 되는 일은 위대한 일이다.
다윗은 요나단이 없었다면, 자신의 소명을 포기하고 단순한 목동으로 돌아갔을 수도 있고, 복수의 칼날만을 가는 인물이 되었을 위험이 크다. 그렇게 다윗 또한 사울과 같은 존재가 되어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의 인생에 있어서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에 반해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군가에게 아주 중요한 존재가 되어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잘 생각하지 못한다.
늘 내가 제일 불행하고, 제일 결핍됐고, 불만족스럽고, 외톨이 같아서...
위대한 요나단의
위대한 일을 느끼며
위대한 존재의 어떤 삶에 대해서 잠시 상상해보는 지금 순간에도
내 안의 내가 비아냥대듯 반응한다.
"내.. 가?"
위대한 다윗에겐
그의 인생의 어느 중요한 지점에
위대한 요나단이 있었다.
나는 다윗인가?
위대한 요나단인가?
아니면...
사울인가?
아니면...
듣도 보도 못한 그 무엇인가로 살고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