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빌딩 But 성소

<6장 성소. 다윗과 도엑>

by 유이한나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를 다윗의 행동.

나름의 주석을 참고하지만 다윗처럼 살았다고 말하기 어려운 시점에서의

이번 장의 다윗의 행동은 선뜻 이해되지 않으며, 나아가

대체 이건 무슨 상황인가...? 하고 되뇌게 된다.

그러나,

이번 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의 중심이 다윗에게 있지 않다고 느꼈다.

성소, 성전, 교회...


하나님과 조금 친밀한 사람이라면

이미 알았을 메시지를 전한다.




다윗은 이제 사울 왕이 자기를 죽이기로 단단히 마음먹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안다.

다윗은 달려간다. 도망이다. 짐을 챙길 시간도 없이 도망쳐 달려간 그곳, 놉.

그곳에는 성소와 제사장이 있었다.

거룩한 곳 성소, 그곳을 지키는 제사장 아히멜렉.

그곳에 도착한 다윗은 그동안의 삶을 중심이었던 하나님을 주목하는 삶, 기름부음과 섬김, 기도의 삶을 끝까지 영위하고 싶었을 것.

도움이 필요했다.


그런데...

다윗은 거짓말을 한다.

무슨 일이냐 묻는 아히멜렉에게 '왕의 심부름 중이다'라는 거짓말과 함께

곧 도착할 무리들에게 필요한 음식을 구한다.

성소에서 엄격하게 구분되어져야 할 제단 위의 빵을 달라고 한다.

아히멜렉은 준다.

다윗은 무기를 달라고 한다.

다윗이 무찌른 골리앗의 검이 보관되어 있었고 그것을 달라한다.

아히멜렉은 준다.


다윗은 허기지고 무방비인 상태로 성소에 들어왔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든든하고

갖추어진 모습으로 성소를 떠났다.



처음에는 다윗과 아히멜렉은 성소는 무엇을 위한 곳인가?라는 것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졌었다.

그러나 곧 다윗의 생각이 이겼다.


성소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거룩한 장소다.

거룩한 장소는?

"삶에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음을 알고 그 무언가는 '다른'것임을 인식하는 장소"


어렵다. 하지만 어렴풋이 느낌이 온다.



이 이야기에 비추어 생각해 볼 때, 성소란 단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관계가 깊어지는 장소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는 어떤 위기의 상황에 성소, 거룩한 장소를 찾는다.

그 속에서 생명력과, 삶을 깊이 있게 하는 힘을 발견한다.

그렇게 우리에게는 달려 들어갈 수 있는 성소가 필요하다.



그때, 다윗과 아히멜렉의 조우 장면을 누군가 지켜보고 있었다.

도엑. 사울의 근위대 대장쯤 되는 신하였으며, 그날 그는 그 어떤 종교의식을 위해 그 자리에 있었다.


아히멜렉이 다윗을 도왔다는 소문이 퍼져 나가자 사울은 제사장 무리 전부를 심문했으나,

제사장들은 다윗의 거짓말이 있었기에 죄가 없다고 항변했으나 사울은 처형을 명령했다

그러나 신하들은 하나님에 대한 충신들이었다. 기름부음을 받은 제사장들을 처형할 수 없다고 불복종했다.


그런데 도엑.

일생일대의 기회로 여긴 도엑은 그 모든 제사장들을 살육했고, 그 마을 사람 전체(여자들, 아이들, 가축들)를 학살했다.




성소, 그 거룩한 장소에 나는 누구와 같은 태도로 다가가며, 앉아 있고, 예배드리는가?

성소는 내게 어떤 곳인가?

교회는 내게 어떤 곳인가?

또한 예배라는 행위의 의식을 치르는 건물, 예배당이 그것인가?


성소는, 성전은, 교회는..

거룩한 처소, 예배당이 아닌

주의 몸으로서의 나 자신과 그러한 자신 각자가 하나로 모여 연합하는 공동체이다.


그러한 성소를 우리는 다윗처럼 여길 수 있어야 한다.

언제나 달려 들어갈 수 있는 곳

나를 품어줄 그곳

내가 기운을 얻고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는 그곳


하나님,

그,

우리 주님이 계신 그곳에 우리는 붙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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