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기다린

<7장 광야 - 엔게디의 다윗>

by 유이한나무

사울에게 쫓겨 광야에 들어설 수밖에 없게 된 다윗을 이야기한다.

광야에 대한 단편적 해석, 의미, 비유와는 그래도 조금은 내게 다르게 다가왔노라고 말하고 싶다.




광야에 있은 지 한 시간 정도 지나자, 감각-시각,청각,후각-이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들으며, 더 많이... 믿게.. 된다.

이것이 광야, 즉 그 그토록 우리의 영성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다.


다윗은 광야에서 대단히 의미 있는 세월을 보냈다.

대부분의, 아니 모든 사람은 광야에서 얼마간 시간을 보내기 마련이다.


모든 사람이 갖게 되는 그 광야의 시간,

그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다윗은 스스로 광야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자신을 죽이려 하는 사울 왕을 피해 도망친 것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그곳에서

광야가 진리의 장소, 아름다움의 장소, 사랑의 장소라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간에 속한다.




광야에 있을 때에는 해야 할 임무도, 지켜야 할 약속도 없으며 그 무엇에도 매여 있지 않다.

그저 깨어 있고 그저 살아 있으면 된다. 그것이 전부다.

그곳에서는 흔히 삶이 단순해지고 깊어지는 것을 체험한다.

며칠의 시간을 보내고 난 후, 자신이 좀 더 자신다워지고 정리되고 자연스러워진 것을 느낀다.

광야에는 매우 매력적인 무언가 있다.


광야는 또한 겁나는 곳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위험한 곳이다.

순식간에 우리의 목숨을 앗아가 버릴 수 있는 방법을 수없이 가지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완전히 문명화된 곳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갑자기 광야로 내던져지는 때가 있다.

갑자기 제정신을 잃는 때가 생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우리 내면에, 혹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람에게 일어난다.

우리는 스스로 어찌해야 할지 모른다. 우리는 광야에 들어간다.


눈을 크게 뜨고 있어야 한다. 깨어서...

위험과 죽음에 직면하는 곳이지만, 맞이하는 태도에 따라서는, 하나님의 위대한 신비와 삶의 특별한 소중함에 직면하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세 가지 광야 이야기가 나온다.

모세의 광야, 예수님의 광야, 그리고 다윗의 광야.


모세의 광야 - 우상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분간하는 법을 훈련받았고,

예수님의 광야 -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과 그분의 하시는 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분간하는 법을 배우셔서 우리의 구세주가 될 준비를 갖추셨고,

다윗의 광야 - 완전한 나락에 떨어진 한 젊은이가 신성모독의 삶과 기도의 삶 중 기도를 택하는 모습을 보인다.


광야에서는 '궁극적 근본' 즉 하나님과 대면하게 된다.

이 대면은 시험이요 유혹이다.

하나님과 관계 맺기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거부할 것인가?


다윗은 선택했고 더 나아졌다.





엔게디 근처 광야 동굴, 사해의 절벽에 나 있는 동굴 속에 숨어 있는 다윗.

느닷없이 동굴 속에 들어와 아무거도 모른 채 장비를 풀고, 쭈그려 앉아 대변을 보는 사람, 사울.


이 무슨 우스꽝스러운 상황이자, 다윗에게 일어난 어이없지만 엄청난 기회의 상황인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사울이 완전한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수하의 사람들의 의견을 제지하고 조용히 다가가 사울의 옷자락을 조금 잘라낼 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울을 뒷일을 끝내고 동굴을 빠져나간다.

사울이 조금 멀어져 갔을쯤,

다윗은 멀리서 사울을 부르고, 정중히 예를 갖추고, 어찌 나를 적으려 여기느냐는 한 마디와 잘라낸 옷자락을 보여줄 뿐이다.


다윗은 사울을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라고 부른다. (삼상 24:10)



다윗은 광야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생명의 고귀함, 장소와 사물들 안에서 하나님을 알아보는 법

심지어 사울에게서도 거룩을 알아볼 줄 알게 되었다.




시편의 수많은 다윗의 시에서는 '피난처'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다윗에게 광야는 물리적으로나, 영적으로나 피난처였던 것이다.

스스로 들어간 광야가 아니지만,

그곳은 그에게 궁극적으로 위험한 곳이 아닌 아름다운 곳

거룩한 곳이었다.


우리도 다윗처럼 원치 않게 광야로 들어서게 된다.

누구나 스스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아직까지는...

그러나

그곳을 진정 '광야'라고 부르게 되는 사람은

그곳을 잘 지나오고, 경험할 것이라고는 도무지 눈치챌 수 없는 그 무언가를

품고, 새기고, 가득 안아 살게 된다.


그 이후의 삶이란...

또 한 번의 광야를 지난다 한들, 들어서게 된다 한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쉬운 법. 조금은.


아직 광야에 들어서 보지 못했는가?

감히 단언컨대, 어쩌면 당신은 그곳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광야가 당신을 기다리는 게 아닌,

당신 자신이 언젠가, 조만간, 곧 들어서게 될 그곳, 광야.


광야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광야는 대단한 곳이다.

엄청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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