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방식에서 발견한 두 직무의 차이점
해외에는 없고 국내에만 그렇게 불리는 직무가 있다. 바로 "서비스 기획자"라는 친숙한 직무이다. 서비스 기획자를 굳이 영어로 표기하자면 "Service Planner"보다는 "Service Designer"에 가깝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해외에서는 Design을 시각적인 표현뿐만 아니라 설계적인 부분도 포함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외국에서 서비스 기획자와 가장 유사한 직무는 Product Manager라고 정의할 수 있고, 그렇기에 비교적 최근부터 많은 IT 기업이 해당 직무로 채용을 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첫 커리어는 "서비스 기획자"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그렇기에 회사에서 두 직무에게 어떤 역할을 요구하는지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 글은 두 직무가 완전히 다르다는 내용이 아니라, 국내 기업에서 "서비스 기획자"라고 불리는 채용 공고와 "Product Manager"라고 불리는 채용공고에서 어떤 점을 강조하면 되는지나 어떤 역량이 필요한지를 정리한 글이라고 말하고 싶다. 많은 취준생 분들이 물어본 질문이자, 나 또한 이 직무를 구분할 수 있나? 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던 질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언제나 그렇듯 정답은 아니겠지만 주변 케이스와 나의 경우를 합쳐서 정의하자면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Product Manager, 즉 PM과 서비스 기획자가 있는 조직의 모습을 살펴보면 모든 케이스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PM은 주로 목적 조직, 서비스 기획자는 기능 조직에 존재한다. 여기서 추가로 설명하자면, PM과 PO는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두 직무가 함께 있는 몇 안 되는 기업을 제외하고는 각각 요구하는 역량은 같다. 국내에서 PO 하위 조직에 PM이 있다고 생각하는 인식과 다르게 실리콘 밸리에서는 PM 하위 조직에 PO가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 글에서는 두 직무를 통칭해서 PM이라고 부르려고 한다.
PM과 서비스 기획자가 존재하는 조직의 구조에서 다른 점은 또 존재한다. PM이 있는 조직은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규모가 크지 않는 기업일 가능성이 높아서인지 애자일 방법론을 많이 채택한다. 물론, 실리콘밸리의 매우 큰 회사들도 애자일 방법론을 적용시킨다. 국내의 많은 스타트업들이 그러한 방법론을 그들의 조직에 적응시키고 싶어 하기 때문에 신생 기업이 애자일 방법론을 더 쉽게 도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서비스 기획자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국내에만 있는 개념인 만큼, 정통 대기업에서 비교적 많이 만나볼 수 있다. 그래서 워터폴 방법론을 쓰는 경우에 서비스 기획자가 있을 확률이 높다.
이러한 구조적인 차이가 있어서, PM은 보통 한 사람이 맡게 되는 책임의 범위가 넓고 서비스 기획자는 좀 더 좁고 탄탄한 범위를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이 두 직무는 역할 부분에서는 어떤 다른 점이 존재할까?
먼저, PM의 경우에는 문제 정의부터 문제 발굴 그리고 해결 방안을 비교적 넓게 고민해야 한다. 그렇기에 고객 중심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넓은 청사진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비교하자면, PM의 업무는 큰 기업의 상위 기획자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큰 기업에서는 제품의 크기와 시스템의 단위가 다르기 때문에 맡는 제품의 사이즈는 작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의사결정의 범위가 넓다는 부분이 가장 눈에 띄는 역할이다.
그렇기에 데이터를 통해 의사결정을 하거나, 제품과 관련된 모든 리스크를 검토하거나, 너무 당연하게도 개발자나 디자이너 그리고 영업, 마케팅, 리걸, 외부 협력업체와 소통해야 한다. 전략 기획의 역할도 필요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더 키워나가기 위해 직접 발로 뛰어야 하기도 한다. 물론 모든 PM들이 애자일 하게 그리고 바텀업 방식으로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전사의 전략이 있고, 그 안에서 제품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좀 더 크게 가져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PM은 제품을 탄생시키고 검증하고 자리 잡게 하는 모든 사이클에 기여하는 역할을 한다.
서비스 기획자도 물론 사용자에 대한 이해를 데이터 기반으로 하거나, 제품을 둘러싼 의사결정을 하는 존재이다. 차이가 있다면, 서비스 기획자는 대부분 워터폴 구조에 존재하기 때문에 전사보다는 좀 더 작은 규모의 조직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서 PM보다는 더 문서를 많이 다룬다는 점도 다르다. 물론 스타트업에서도 문서를 빡빡하게 써야 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지만 그보다 훨씬 섬세한 영역에서의 문서 작성이 필요하다. 스토리보드나 기능정의서, IA, 플로우차트, 와이어프레임에 이르기까지 하나를 바꾸면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더 꼼꼼하게 제품을 개선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다.
그 외에는 PM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즉, 서비스 기획자는 서비스의 설계와 관련해서 더 디테일을 챙기는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두 직무는 어떤 역량을 가진 사람이 어울릴까? 이 또한 정답은 아니겠지만 여러 채용 공고와 실제로 일을 해본 입장에서 정리하자면 위와 같다.
PM은 좀 더 도전적이고 주어진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자 하는 성향이라면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 것이다. 데이터를 통해 의사결정을 하고, 갑작스러운 변화나 문제 상황에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으면 좋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제품과 관련된 임팩트를 넓게 예측하고, 섬세한 영역보다는 섬세하게 작업할 수 있는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역량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비스 기획자는 논리적이고 꼼꼼할수록 사용자의 UX를 놓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좀 더 정해진 환경에서 문서를 기반으로 소통하고, 이해관계자들이 각자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한다. 기존에 있는 것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고 (물론 이것은 PM도 마찬가지다) 작은 것을 놓치지 않는 섬세함이 있는 사람들이 좀 더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쓰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다른 듯 같은 이 직무를 직접 일해 보면서 나름의 정의를 내리기까지는 거의 2년 정도가 걸린 것 같다. 그만큼 국내에서는 두 직무를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어떤 직무는 무조건 이러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각 회사에서 두 직무에 대한 채용 공고를 만날 때 이러한 성향을 좀 더 선호하거나 조직적인 구조가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참고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