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02 K-프러포즈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예비 신랑

[어느 기획자의 평범한 결혼준비]

by 그라데이션
Group 37162.png 결혼준비 프로세스. 우리는 지금 프러포즈 단계에 있다.


프러포즈가 결혼 준비의

시작이었으면 했던 예비신랑

"결혼 준비의 시작은 꼭 프러포즈였으면 했어"


일반적으로 한국의 프러포즈는 결혼이 어느 정도 결정되고 나서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서로의 결혼 의사를 확인하고, 양가 부모님의 동의도 받고, 대략적인 일정까지 잡아놓은 상태에서 마지막 단계로 프러포즈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다. 하지만 우리 예비 신랑은 달랐다.


처음 우리가 결혼 이야기를 나눴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이다. 그 당시에 예비 신랑은 둘 다 취업을 했으니 결혼을 하면 좋겠다고 했고, 나는 모은 돈도 없는데 어떻게 결혼을 할 수 있냐는 입장이었다. 그 때 나이가 26살이었다. 나는 적어도 서른 살이 되었을 때 결혼을 하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고, 오랜 기간 동안 결혼을 전제로 이야기하고 만나다보니 그 나이가 되면 자연스럽게 결혼을 하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확신이 있었던 그는 프러포즈를 결혼 준비 단계에서 가장 먼저 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의 마음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결혼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충분히 나눴지만, 나는 프러포즈는 어차피 일반적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형식적으로 진행되겠거니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와 다르게 그에게는 우리 관계에서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의식이었던 것 같다. 오랜 연애를 한 만큼 더욱 의미 있는 순간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전혀 눈치채지 못한 프러포즈 준비

"우리만의 이야기와 로망을 담아서 말하고 싶었어"


내가 평소에 별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그는, 천문대에서 별을 보고 난 후 차에서 조용히 둘만 있을 때 프러포즈를 했다. 로맨틱한 장소에서 화려한 이벤트를 하는 것보다 우리 둘만 아는 의미 있는 공간에서 진심을 전했으면 좋겠다는, 예전에 내가 스쳐가듯 이야기 했던 것을 기억해준 프러포즈였다.


사실 프러포즈를 받는 날 계획은 그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눈비가 많이 와서 천문대에 가서도 별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비 신랑이 계획했던 별빛 아래서의 로맨틱한 프러포즈는 물거품이 되었다. 아쉬운 마음에 집으로 돌아가기 전, 그는 그래도 준비한 것을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날씨 때문에 계획이 틀어졌지만 그 순간만큼은 우리만의 특별한 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날씨가 좋지 않았던 것도 나름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완벽한 계획대로 되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우리답고 자연스러운 순간이 되었다. 화려한 배경이나 완벽한 상황보다는, 나에게는 진심이 더 중요하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일반인들보다 몸에 열이 많아서 늘 따뜻했던 그의 손이, 프러포즈를 하며 반지를 끼워줄 때 엄청 차가웠던 순간도. 영상이라고는 만들어본 적도 없으면서 오랜 연애 기간동안 찍은 사진을 진심을 눌러담은 편지와 함께 영상으로 만들어 보여준 순간도.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선명히 기억과 마음에 남아있는 것을 보니 말이다.



감동보다 놀람이 더 컸던 순간

"언젠가 할 결혼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하는 건가?"


프러포즈를 받는 날까지도 나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수상할 정도로 명품 브랜드와 가방 가격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보통 남자들이 여자 명품에 대해서 잘 알게 되는 시기가 프러포즈 시기라고 하더니 정말이었다.


그래서 당일에 많이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젠가는 결혼할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게 그날 여행지에서 진행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마운 마음보다도 놀란 마음이 더 컸던 것이다.


예비 신랑의 진심 어린 마음을 받으면서도,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 하는 현실감이 밀려왔다. 그 순간의 복잡한 감정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감동과 놀라움, 그리고 약간의 부담감까지.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프러포즈를 받고 눈물을 흘리는 여주인공을 보고 정말 저런가? 싶었는데 막상 프러포즈를 받으니 생각보다는 얼떨떨한 마음이 들었다.


그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예비 신랑이 오랜 기간 마음의 준비를 해온것에 비해 나는 완전히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결혼이라는 것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해서도 크게 고민하지 않았고, 준비 또한 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저 연인에서 같이 살게되는 것이고, 법적으로 묶이게 되는 것이 아닌가? 했는데 프러포즈를 받고나니 그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싫었다는 것이 아니다. 이제 정말 결혼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설렘만큼이나 현실감이 더 컸던 것이다. 예비신랑에게 프러포즈는 단순히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라, 우리 관계에서 하나의 의미 있는 전환점이었다. 연애에서 결혼으로 넘어가는 상징적인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는 그가 원하는 만큼 반응을 해주지 못했지만 그 날 여행이 끝나고 집에 가는 차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나도 현실에서 마음으로 '이 사람이랑 진짜 결혼을 하는구나'를 받아들였다.



각자만의 특별한 프러포즈 이야기

"모든 연인들은 그들만의 프러포즈가 있다고 생각해요."


나도 프러포즈를 받고 나서보니, 한국의 프러포즈 과정이 조금 이상하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결혼을 약속하는 것을 프러포즈라고 해놓고, 대부분의 예비 부부는 괜히 시간과 노력과 돈을 들여서 이미 웨딩홀까지 다 잡아둔 상태에서 이벤트를 하는가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든 연인들은 결혼을 할 때 그들만의 프러포즈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비교라는 것을 굳이 하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주변에서 결혼을 많이 하고 있어서 프러포즈 받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런 이야기들을 예비 신랑에게 아무 생각 없이 전달했다가 나 또한 모르는 사이에 부담을 줬다고 생각한다.


"누구는 이런 프러포즈를 받았대", "누구는 이런 식으로 했대" 하는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공유했는데, 그게 그에게는 압박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다. 그래서 더 빠르게 준비해서 프러포즈를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프러포즈에 정답은 없다. 화려한 것이 좋은 것도 아니고, 소박한 것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늦게 하는 것도, 일찍 하는 것도 각자의 관점에서 다르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서로의 마음을 진심으로 전하고 받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결혼 준비의 첫 시작을 프러포즈로 시작하게 되었다.



함께 확인하면 좋을 체크리스트

▢ 프러포즈에 대한 서로의 기대치와 생각 미리 대화하기
▢ 주변 사람들의 프러포즈 이야기에 너무 휘둘리지 않기
▢ 완벽한 상황보다는 진심을 전하는 것이 더 중요함 기억하기
▢ 각자만의 특별한 방식이 가장 의미 있다는 마음가짐 갖기
▢ 프러포즈 후 본격적인 결혼 준비 시작에 대한 마음 준비하기
keyword
이전 01화01 결혼은 왜 어려운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