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획자의 평범한 결혼준비]
프러포즈를 받고 나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양가 부모님께 결혼 소식을 전하는 것이었다. 9년이라는 긴 연애 기간 동안 이미 서로의 가족과 인사를 나눈 상태였지만, 정식으로 결혼 의사를 밝히는 것은 또 다른 의미였다.
결혼을 결심하고 준비하면서 가장 다르다고 느꼈던 것은 두 집안이 하나로 만나게 된다는 점이었다. 결혼 준비를 하는 대부분의 예비부부들은 당연히 서로 아끼고 사랑할 마음이 가장 높은 우선순위겠지만, 당연하게도 현실적인 조건들을 따지게 된다. 그 현실적인 조건에는 각자의 가족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함께해 왔는지나 그 집안의 분위기는 어떠한지, 각자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지원이 가능한지, 그리고 월평균 수익이나 모은 돈이 있는지도 포함된다.
예를 들어서 신랑보다 신부가 더 잘 살면 신부 쪽에서 바라는 점이 많아질 수 있고, 신부보다 신랑이 더 많은 돈을 벌면 우리 아들이 아깝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이다. 신랑 부모님이 유난해서 신부 쪽에서 시집살이를 우려할 수도 있을 것이고, 신부 부모님의 직업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신랑 쪽에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정말 다행히도 이런 부분에 있어서 전혀 문제없이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워낙 오래 만나기도 했지만, 그렇기에 삶을 대하는 방식이나 가치관 그리고 각 집안의 문화에 대한 이해는 이미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성격이 비슷하기도 해서 둘의 사정만 놓고 봤을 때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양가에서도 오래 만나고 결혼을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크게 우려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미리 조금씩 만나서 인사도 하고 양가의 특별한 이벤트나 명절 때 작은 선물이라도 드렸던 것도 무난하게 소식을 전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프러포즈를 받은 다음 본격적으로 결혼 준비를 하는 것을 알리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특히 예비 시댁에서는 예비 신랑의 몇 달간의 고민과 프러포즈 준비 과정을 이미 알고 계셨다. 예비 신랑의 고향인 지방에 내려가서 여동생과 함께 나에게 프러포즈를 할 때 줄 선물을 고민하기도 했고, 본인은 보는 눈이 없다며 여러 브랜드를 함께 돌아다니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쩐지 프러포즈를 하기 전에 지방에 너무 자주 내려가더라만, 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정식으로 결혼 소식을 전했을 때도 "그래, 드디어 하는구나" 하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셨다. 아들이 9년이나 연애를 했으니 이제 정착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연애 기간이 길었던 만큼 서로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고 있다고 믿어주셨고, 결혼에 대해서도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셨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 아들이 골라온 짝이니까 괜찮은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이다. 그런 무한한 믿음이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이런 집에서 큰 사람이기 때문에 비슷한 사랑과 믿음을 베풀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한 번 더 가지게 되었다.
반면 우리 집에서는 시댁만큼 축하하는 반응이 아니었다. 예비 신랑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는 전혀 아니었다. 예비 신랑 정도면 괜찮은 사윗감이라는 생각도 하고 있으셨다. 프러포즈 전에도 예비 신랑과 우리 집은 연락도 종종 했고, 함께 얼굴을 본 적도 많았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우선 생각보다 결혼을 빨리 하는구나에 대한 아쉬움이 있으셨다. "조금 더 천천히 해도 되는데 왜 서두르느냐" 하는 반응이셨다. 나도 프러포즈를 받을 당시 스물아홉 살이었고 요즘 결혼 연령대를 생각하면 적절하거나 조금은 빠를 수 있었지만 우리 집 입장에서는 아직 어린 딸로 느꼈던 것이다. 직장 생활을 4년이나 한, 어엿한 사회인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리 어머니가 결혼을 했을 당시에 겪었던 어려움이 겹쳐서 보이신 것도 있다. 그래서 서운하기도 했다. 나는 오랜 기간 고민했고, 그렇게 결혼에 대한 확신이 생겼고, 그렇게 잘 만나다가 예비 신랑 정도라면 결혼하고도 충분히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냥 축하해 주고 믿어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는데 마냥 그렇지는 않았던 것이다.
우리 집은 경상도 문화가 아주 진하게 깔려있는 곳이라, 요즘 사회와는 맞지 않지만 딸은 "시집을 보낸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또 하나의 이유일 수 있다. 또, "사위"라는 존재가 어색하고 멀게 느껴져서 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처음에는 예비 신랑이 이런 차이를 보고 서운해했다. 같은 결혼 소식인데 반응이 다르니까 혹시 눈에 차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인지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도 이해하게 되었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식을 키운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걸리는 속도의 차이를.
이 부분이 우리가 결혼 준비를 하면서 가장 많이 각자 서운해했고, 가치관의 차이가 존재하기는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시간이었다. 결혼을 이미 하고 글을 쓰는 지금은 우리 집에서 딸보다 아들 같은 사위가 우선이다. 딸 걱정보다 아들 같은 사위 걱정을 더 많이 한다. 그리고, 예비 신랑도 "딸을 아끼시는 마음을 이제는 너무 잘 알겠다", "내가 더 잘해드려야겠다"라고 말하며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잘해드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보통은 이때 처음 인사를 많이 드리기도 한다. 결혼 의사를 밝히면서 양가 부모님이 처음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오래 만나서 이미 서로 인사를 드린 상태였지만, 정식으로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너무 잘 보이려고 애쓰기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드리고 그걸 유지할 수 있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만 좋은 모습을 보이고 나중에 바뀌면 오히려 실망을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고 진실한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다행히 양가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좋게 봐주셨다. 우리 집에 인사를 드릴 때는 예비 신랑이 나이는 좀 어릴 수 있지만 (다시 말하지만 나이가 그렇게까지 어리지는 않았다. 예비 신랑이 그 당시 28살이었으니까) 오랜 기간 만난 만큼 잘 살겠다는 말을 진지하게 드렸고, 나는 예비 시댁이 좋아할 만한 선물을 함께 사서 들고 내려가서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을 드렸다.
받아들이는 과정에서의 속도 차이는 분명히 존재했지만, 그렇게 프러포즈를 받은 다음 결혼 소식을 전하는 단계가 끝이 났다. 이후부터는, 결혼을 위한 본격적인 정보 전쟁과 소비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함께 확인하면 좋을 체크리스트
▢ 양가 부모님께 결혼 시기와 계획 구체적으로 공유하기
▢ 딸 가진 집과 아들 가진 집의 관점 차이 이해하기
▢ 너무 잘 보이려 하기보다 자연스러운 모습 보여드리기
▢ 평생 함께할 가족의 성향과 문화 미리 파악해 두기
▢ 두 가족의 상황과 다른 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