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획자의 평범한 결혼준비]
결혼식 당일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것 외에 청첩장, 신혼여행, 가전, 웨딩밴드 등 결혼 전체와 관련된 것들도 알 수 있다
가족들에게 결혼 소식을 전하는 산을 넘은 것도 잠시, 본격적인 준비를 위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에 직면했다. 결혼 준비에 대한 막연한 정보들은 많았지만 구체적으로 언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순서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답을 정해주지 않았기에 더욱 막막함이 느껴졌다.
'결혼 준비'라는 게 참 모호하다. 마음을 먹는 것부터가 준비인지, 가장 처음 시작은 무엇으로 해야 하는지. 누군가는 함께 살 집을 임장 다니는 것에서 시작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웨딩 반지를 사는 것부터 시작하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나 스드메나 웨딩홀 같은 기본적인 것들은 알겠는데, 그래서 언제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가 걱정이었다.
직업이 PM이다 보니 해야 할 일이 시각화되지 않았던 그때가 가장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평소 일할 때도 프로젝트의 전체 로드맵을 그리고, 마일스톤을 정하고, 각 단계별로 해야 할 일들을 체크리스트로 만드는 게 습관이었다. 그런데 결혼 준비는 완전히 생소한 영역이라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더군다나 한 번 잘못 선택하면 위약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등 되돌리기 어려운 일들이 많아서 더욱 신중해야 했다.
정보를 알아보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카페 같이 인터넷에는 정보가 너무 많았지만 어떤 것이 정확한지 우리 상황에 맞는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특히 각 업체마다 다른 정책과 가격, 서비스 내용을 비교하려면 일일이 문의해야 했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결혼 정보 카페에 가입하면 플래너가 자동 배정되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이게 광고성인지 아니면 우리가 옳은 선택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방향인지 확신도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전체적인 타임라인을 모르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언제까지 웨딩홀을 잡아야 하고 스드메는 언제 계약해야 하는지, 각각의 준비 시기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파악할 수 없었다. 하나를 늦게 준비하면 다른 것들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욱 불안해졌다.
그래서 무작정 웨딩 박람회에 갔다. 여러 업체를 한 번에 만날 수 있고, 전체적인 흐름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웨딩 박람회에 한 번 다녀오고 나니 전체적인 로드맵을 그리는 것에도 도움이 되었다.
보통 웨딩 박람회는 웨딩 업체에서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진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잘 활용하면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가장 처음 갔던 박람회는 일 년에 딱 두 번만 진행되는 웨딩 박람회였다. 규모가 클수록 한 번에 주고자 하는 혜택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볼 수 있는 선택지도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 웨딩 박람회에 갔을 때는 예산이라는 개념도 크게 없었다. 어떤 웨딩홀 스타일을 선호하는지도 몰랐고, 실크 드레스에 그렇게나 많은 종류가 있는 것도 몰랐다. 그래서 상담을 받을 때 무언가 결정하기보다는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박람회에 가면 무조건 상담을 위한 웨딩 플래너 배정을 받는다. 이때도 대략적으로 알고 가면 훨씬 좋다. 우리가 처음 상담했던 플래너분이 정말 친절해서 다양한 정보들을 자세히 알려주셨다. 기본적으로 스드메에 대한 계약 조건들을 알려주시고, 여러 팜플렛을 통해서 이런 선택지가 있는 것도 알 수 있게 해 주신다.
가장 중요한 건 전체적인 흐름이었다. 웨딩홀부터 먼저 잡아야 하고, 그다음에 언제 스드메를 예약해야 하는지 순서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정말 의외였던 것은 혼주 메이크업이나 한복을 거의 1년 전에 예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기 있는 업체들은 그 정도로 일찍 예약이 찬다고 했다.
세세하게는 부케나 스냅 같은 것들도 미리 하고 싶은 곳이 있으면 다 알아보고 잡아야 한다는 것도 새로운 정보였다. 단순히 큰 업체들만 미리 예약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디테일한 부분들까지 모두 계획적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인스타그램 같은 SNS를 보면서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야 한다는 조언도 유용했다. 막연히 '예쁜 결혼식'을 원한다고 하는 것보다는, 구체적으로 어떤 분위기와 스타일을 선호하는지 명확히 하는 것이 업체 선택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우리는 첫 번째 박람회에서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다. 대신 그날 박람회를 둘러보면서 결혼식 당일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것 외에 청첩장, 신혼여행, 가전, 웨딩밴드 등 결혼 전체와 관련된 것들을 좀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동일한 웨딩 박람회를 6개월 뒤에 또 방문했다. 이 때는 실제로 우리가 생각했던 업체에만 방문해서 할인 혜택을 비교해 보고, 계약을 진행했다.
개인적으로는 박람회를 200% 활용하기 위해서는 예산을 확실히 정해두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 대한민국 평균 스튜디오 + 드레스 + 메이크업에 드는 비용이 350만 원이었는데, 추가금을 포함해서도 그것보다 더 쓰고 싶지 않다고 확실히 말해뒀다. 그랬더니 플래너분도 우리 예산에 맞는 현실적인 옵션들을 제시해 주셨다.
예산이 명확하지 않으면 업체에서도 어떤 수준의 서비스를 제안해야 할지 모르고, 우리도 적정한 가격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특히 박람회에서는 다양한 가격대의 패키지들을 제시하는데 우리 기준이 없으면 선택하기 더 어려워진다.
또한 박람회에서는 당일 할인이나 특별 혜택을 많이 제시하지만, 이런 것들에 너무 현혹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원래 가격이 적정한지, 다른 업체와 비교했을 때는 어떤지 충분히 검토해봐야 한다.
박람회에 가니까 전체적인 로드맵이 보였고, 어디에 어떻게 돈을 써야 하는지가 시각화되기 시작했다. 체크리스트가 진짜 엄청 많았는데, 해야 할 일이 많은 것보다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어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결혼 준비 6개월 전에 해야 할 일들, 3개월 전에 해야 할 일들, 1개월 전에 해야 할 일들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보였다. 웨딩홀과 스드메처럼 큰 계약들은 6개월 전에, 청첩장이나 답례품 같은 것들은 3개월 전에, 최종 확인이나 디테일한 준비들은 1개월 전에 하면 된다는 큰 틀이 잡혔다.
각 항목별로도 어떤 업체들이 있고,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야 하는지, 대략적인 가격대는 어떻게 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특히 스드메의 경우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이 각각 별도로 계약할 수도 있고 패키지로 묶어서 할 수도 있다는 것, 패키지가 보통 더 저렴하지만 선택의 폭이 제한될 수 있다는 것 등 실용적인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박람회에서 얻은 또 다른 유용한 정보는 업체마다 성수기와 비수기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웨딩홀의 경우 봄, 가을이 성수기지만, 스튜디오는 날씨가 좋은 시기를 선호하고, 드레스숍은 시즌에 따라 신상품이 나오는 시기가 있다고 했다.
또한 각 업체의 예약 마감 시기도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기 있는 웨딩홀은 1년 전부터 예약이 찬다고 하지만, 스드메는 3-6개월 전에도 충분히 예약 가능한 곳들이 많다고 했다.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우선순위를 정해서 준비할 수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예산 배분을 더 현실적으로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각 항목별로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드는지 알게 되니, 어디에서 절약하고 어디에 투자할지 판단할 수 있었다. 또한 전체 예산 내에서 우선순위를 정해서 중요한 것부터 차례대로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결혼 준비가 생각만큼 막막하지 않다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해야 할 일이 많고 복잡하지만, 체계적으로 접근하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박람회에서 만난 플래너분의 조언처럼, 한 번에 모든 걸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말고 단계별로 차근차근 준비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 준비의 전체 로드맵을 그릴 수 있게 되었고, 이제 본격적으로 각 단계별 준비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함께 확인하면 좋을 체크리스트
▢ 박람회 방문 전 대략적인 예산과 선호 스타일 정해두기
▢ 첫 방문에서는 정보 수집에 집중하고 당일 계약 피하기
▢ 전체 결혼 준비 타임라인과 우선순위 파악하기
▢ 각 단계별 성수기와 예약 마감 시기 확인하기
▢ 여러 박람회 비교해 보고 우리에게 맞는 곳 선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