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둥이 아기, 신생아중환자실 졸업 후 처음으로 입원하다
어제 나연이가 마이코플라즈마 폐렴으로 입원했다. 전날 저녁에 조금 열이 오르긴 했지만 해열제를 먹이니 괜찮았다. 아침엔 열도 안 나고 컨디션이 좋았기 때문에 어린이집을 보냈고 오전에는 할로윈 파티도 하고 잘 놀았다고 했다. 낮잠을 자고 나서 다시 열이 39도 대로 오르기 시작해 선생님께 급하게 전화가 왔다.
해열제를 먹이고 더 지켜볼 수도 있었겠지만 어쩐지 바로 병원에 갔다. 뭔가 이상했다. 나연이는 신생아 중환자실을 퇴원한 이래로 한 번도 이렇게 열이 났던 적이 없는 아기였다. 엄마아빠는 열 보초 한 번을 선 적이 없었다. 작년 7월 15일 최종 퇴원 후 나연이가 열이 난 건 5번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마저도 한 번은 뇌수막염 접종열이었다(그 외에는 접종열도 없었다). 열이 났을 때도 타이레놀 시럽을 1,2번 먹이면 다시 열이 오르지 않았다. 그것도 38도 초반 정도였지 이번과 같은 고열이 난 것은 처음이다.
X-ray를 찍어보니 폐 한쪽 구석이 하얗게 보일 만큼 염증이 생겨 있었다. 열도 39도에서 계속 떨어지지 않고 있어서 바로 입원이 확정되었다. 아픈 아기가 안쓰럽긴 했지만 마음이 무너지지는 않았다. 사실 더 일찍, 더 자주 입원할 것이라 여겼던 아이다. 지금껏 크게 아프지 않고 잘 자라준 것이 오히려 감사했고 기특하게만 여겨졌다.
하룻밤을 나연이와 병실에서 보낸 후 오늘은 남편과 교대해 집에 왔다. 아이를 병원에 두고 혼자 집에 가려니 그제야 마음이 먹먹했다. 생후 141일 만에 신생아중환자실을 졸업해 한 집에서 지내게 된 이후로 아이 없이 자본 적이 단 하루도 없었다. 떨어져서 자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아이가 병원에 있어 보일러 온도를 평소보다 2도 낮춰둔 집은 싸늘하다. 남편도 아이도 없이 나 혼자 있는 적막한 집······. 속절없이, 혼자 이 집에 남겨져 울었다던 그때의 남편 생각이 났다.
6월에 만나기로 한 널 기다리며 신혼집보다 더 넓은 이 집으로 이사했던 날. 아기 방으로 정해둔 방 한 칸에는 미리 받아둔 아기용품들을 차곡차곡 쌓았다. '집이 넓어지니 물 마시러 가는 길이 멀어졌다', '너무 걸어서 발이 아프다'며 남편과 웃었던 첫 번째 밤.
행복한 밤은 하루가 끝이었다. 이사를 한 바로 다음 날 나는 임신중독증으로 대학병원 고위험 산모병실에 입원했다. 2월 말은 교사에게 너무 중요한 시기여서 남편은 일을 쉬고 내 옆에만 있을 수가 없었다. 혼자 넓어진 집에 덩그러니 돌아와, 그렇게 혼자서 한참 울었다는 이야기를 남편은 한참 나중에야 했다.
나연이는 채 일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입원한 그 주 토요일에 재태주수 25주 3일생 670g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아이를 이 집으로 데려오는 데에는 141일이 걸렸다.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브런치 작가신청을 해놓고는 시작을 미루고 있었다. 싸늘하고 적막한 집에 혼자 들어오니 그때 생각이 절절이 나며 오늘은 글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후 141일째 퇴원 후에는 늘 함께 같은 공간에서 잠들었는데 처음으로 엄마가 없는 곳에서 잠들겠구나, 우리 딸. 엄마하고 떨어져 자는 141번째 밤이네. 아빠하고 잘 자렴. 엄마랑 내일 만나자. 언젠가 너에게도 이 글들을 보여줄 날이 오겠지. 너는 정말 잘 버텨주었고 엄마아빠는 그 과정을 이렇게 함께했다는 것을 너에게 말해주고 싶었단다.
늘 사랑해. 엄마아빠한테 와줘서 고마워. 얼른 나아서 또다시 집으로 오자. _2024년 1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