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훈을 좋아한다
칼의 노래같은
소설 보다는
“라면을 끓이며”
“연필로 쓰기”
같은 산문집을 좋아한다
그의 글에는
되도 않는 수식이 적다
간결하지만
그 무게가 엄청나다.
무술고수가
적은 움직임으로
상대방 몸 전체를
날려 버리는 듯한
그런 필력을 갖추고 있어서
너무 감탄스럽다.
이제는 앞에
“돌아가신”이라는
가슴 찢어지는 수식어를
붙여야 하는 우리 아부지
나이대라 더욱 정감도 간다.
상술한 두권의 산문집은
모두 아부지께 보여드렸다.
나는 전자책을 좋아한다.
노인이 안경 안쓰고
글자크기를 키워서
편하게 볼 수 있는 이 기능은,
늙은 부모를 둬 보지 않은
자식은 상상이 힘들만큼
혁명적이다.
아이패드는 상대적으로
조작도 쉽고
지금 같은 여름날
삼베는 아닌 합섬섬유지만
그런 흰색 칠부
여름 바지를 입고
위에는 난닝구만
입으신 아버지가
싸구려 거치대 위에
아이패드를 놓고
이 책을 읽으셨던 모습이
기억난다.
책 내용중에 나오는
과거의 이야기들을
내가 집어 내어
“이때는 진짜 이랬어예?”
이런식으로 물으면
대답을 해주셨다.
이제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모습이 되었다는 것이
미칠노릇이다.
그런 추억이 있는
김훈의 신작 산문집이
나왔다.
나하고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동생이지만
김훈은 좋아했다.
그래서 동생한테 그 소식을
들었다.
나는 미니멀리즘이라는
꼬부랑 이름을 붙일 정도는
아니지만,
되도록 짐을 줄이고 싶어 한다.
그런 취지에서도
전자책이 딱이다.
반면,동생은 전자책을 아주
경멸한다.
종이를 손으로 넘겨가며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할말하않이다.
그냥 그런가보지.
신작 소식을 듣고
검색을 하니
전자책은 미발매였다.
사정이야 알 수 있겠다.
전자책은 출판사에 이익이
거의 남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되도록
종이책을 많이 판 후,
전자책을 내는 기조이다.
너무 사고 싶지만 꾹 참고
서점 사이트의 미리보기를
눌렀다.
초반에 전쟁때 쓰던 철모를
똥바가지로 쓴 에피소드도
너무 재미가 있었지만
“앞글”이라는 부분의 첫 문장에서
정말 머리를 한 대 맞은듯 했고
김훈 선생님 계신 방향을
알면 절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 문장은 이것이다
“핸드폰에 부고가 찍히면 죽음은
배달상품처럼 눈앞에 와 있다”
어떤 내공을 쌓으면,
아니 어떤 천부적 재능을 가지면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단 말인가?
단언컨데 이런 문장력은
단련으로 얻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만한 바탕을 가진 사람은
수련으로 닿을 수 있겠지만
타고난 재능 없이 어찌 이런 경지의
글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저 문장이 내 가슴에 박힌
이유는 불과 몇년전
내가 겪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복이 있다.
초딩때 친구가 네명이나 있다.
이제 거진 40년이 다 되어가는
긴 우정의 관계가 세상에 네명이나
있다는 것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근처에 살았을뿐이였는데
그 인연이 이만큼 이어지다니..
그런데 4년전,
당시에는 오후에
출근 하던때인데
출근 준비를 슬슬 해볼까
하던 여유 있는 시간에
카톡이 울렸다.
열어보니
“아부지 돌아가싰다”
는 건조한 문장밑에
카톡 부고 양식이 떠 있었다.
그 친한 친구중 한놈의 문자였다.
“아부지가 돌아가시다니?”
이건 마치
“짜장면 나왔습니다”
“버스 도착했습니다”
와 같은 취급의 문장이잖아.
아부지한테는 그런 말을 하면
안되는것이다.
그런데 그게 벌어졌다니.
진짜 멍해져서
계속 의자에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냥 아는 사이에서 들리는 부고와
절친의 부고는 이리도 달랐다.
그런데 여기서 통탄할 일은
딱 그로부터 2년 후,
우리 아부지가
똑같은 그 병원에서
돌아가시게 됐단 것이다.
그럴일이 생길지는 꿈에도
모르고,
나와 내 친구들은
다 같이 조문을 갔다.
조문을 가서 상주인
그놈이나 우리나
아~~~아무 말도
못했다.
맞절만 한 다음,
식사 테이블로 안내를
받는 동안도
상주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고,
시간이 좀 지나고 상주가
우리 테이블에 왔는데도
우리는 서로
아무 말을 못했다.
도저히 그 누구도
뭐라 말 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런 소리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어쩌다 돌아가셨느냐?”
이것도 장례식에 가면
상주가 수십번 듣게 되는 말이라
삼가하라고 하니 할 수 없었다
정말 한참을 뻘쭘하게
있다가 상주가 그냥 시시껄렁한
소리를 겨우 꺼내서 말문이 트였었다.
다시 김훈의 산문 첫문장으로
돌아가자.
너무 엄청난 필력에 혀를 내 둘렀지만
그 문장에 바로 이어지는
문장들은…
문장력이 어떻다는 것이 아니라..
할배의 한계가 들어난달까?
디지털 세계를 잘 모르는
그런 느낌이 들어서 안타까웠다.
문자가 전송 되는 것은 동시라거나
뭐 시시콜콜한 이야기라
그 사실이 맞고 틀리고를
따지는 것도 책잡힐 일이긴 하지만..
그게 또 내 눈에 밟히는 것
또한 사실이였다.
나 개인적으로
지금은 마음 편히 책을
읽을 상황도 안되고
읽는다 하더라도
눈만 읽게 되지
그게 머리에 들어가지
않을것이 뻔하지만
어찌되었든
“전자책 발간 알림”을
꾹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