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에서 0으로

100, 완벽인줄 알았는데 만족이었네.

by 몽글포실냔냐

글감 – 수

100. 완벽이 아닌 만족의 수

스무 살 여름, 어린이집 캠프 인솔 아르바이트를 하던 날이었다. 게임이 끝날 때마다 사회자는 아이들에게 크게 외쳤다.

“좋아! 백점!”

환호와 칭찬의 말이었지만, 내 마음은 어쩐지 불편했다. 꼭 100이어야만 할까? 잘했어, 고마워, 재밌다 그런말도 있는데 왜 굳이 100점이어야 할까?

어릴 때부터 나에게 100이라는 숫자는 불편한 수였다.

완벽해야만 할 것 같고, 90점을 모자라게 보이게 하는 수.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에는 100점을 동경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다다를 수 없는 아득한 수. 닿았다가도 다시 떨어지면 멀어지는 수.

그래서 더욱 100점이라고 외치는 말이 불편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엊그제, 초등학교 1학년 딸이 처음 본 받아쓰기 시험에서 100점을 받아왔다.

“엄마 나 받아쓰기 시험봤는데 100점이야.”

“와.. 하나쯤은 틀릴 수도 있었는데 어떻게 100점을 맞았어?”

“그냥.. 100점 맞았어. 그런데 내 짝꿍은 0점을 맞았어. 그래서 다시 고쳐서 써야 했는데 눈물이 맺히는 걸 봤어.”

“아이고.. 친구들이 보는데 받아쓰기 0점 맞은거 고쳐쓰려면 너무 슬펐겠다. 너도 받아쓰기에 너무 부담 갖지마. 100점 아니여도 돼. 틀릴 수도 있는거야...”

“엄마, 나도 알아. 꼭 100점이 아니어도 된다는 거..”

어린 시절 100점에 대한 부담감, 완벽에 대한 부담감이 컸던 나는

점수로 평가 받아야 하는 딸이 나처럼 힘들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 마냥 기뻐해 주지 못했다.

그런데 그날 밤 딸은 자기 전 엉엉 울며 말했다.

“엄마 나도 100점 맞고 싶지 않은데 100점 맞게 돼. 엄마 나도 친구들처럼 교실에서 장난도 치고 말썽도 부리고 싶은데 그게 잘 안돼. 그래서 학교에 가면 너무 힘들어.. 나도 생각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생각이 너무 많아. 으앙”

아이는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고 하던가..

100점을 맞고도 불안해 하는 우리 아이는 나의 불안을 고스란히 가져간 듯 했다. “엄마는 네가 100점을 맞든 그렇지 않든 언제나 네 편이고, 너를 사랑할 거야. 그말이었어.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리고서 잠든 딸을 보며 생각했다.

그냥 그대로 100점을 맞아왔을 때 함께 행복해 해 줄걸.. 그리고 90점을 맞아와도, 0점을 맞아와도 100점을 맞은 것처럼 그냥 그 순간 행복해하면 아이는 나처럼 불안하지 않았을텐데...

나의 100에 대한 불안이 아이까지 불안하게 만들었구나..

그날 이후 나는 100이라는 숫자를 오래 들여다 보았다.

가만히 100을 들여다 보니, 완벽인줄 알았던 수 100은 사실 비움의 수였다.

99. 가득 가득 채워 넣었다. 더 이상 노력할 수 없을 것처럼.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것처럼.. 하지만 99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 그 순간 100이 된다. 그리고 100은 완벽이 아니라 만족이 된다. 충분함으로 넘쳐 흐른다. 그러면서도 99였던 십의 자리와 일의 자리를 다시 0에게 내어주고 비워낸 100은 다시 시작하는 수 101을 안다. 이미 충분하지만 충만함을 넘어 0으로, 겸손의 자리로 자신을 다 비워내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충만함이 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우리는 모두 100이다. 우리의 존재는 0과 100사이의 그 어느것이 아니라 100이다. 모자람없이 이미 충분하다. 그러나 왠지 70, 80, 99인 것만 같아서 우쭐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지만 아니, 모두가 100이다.

그리고 스무 살의 나는 알지 못했지만, 오늘의 나는 그 때 아이들에게 100점을 외치던 게임 진행자분의 마음을 알것만 같다.

“너는 0점이 아니라 100점이야,

조금 실수해도, 다시 해봐도, 틀려도, 그래 태어난 자체만으로 여기 있는 자체만으로 너는 100점이야. 너는 충분해.”

받아쓰기를 할 때도 기본으로 10000점을 주고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10001점, 10002점...10010점.. 그 뒤에 더해지는 것은 작은 덤일 뿐. 문제 하나 더 맞히고 더 틀리는 일이 인생을 바꿀만큼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 받아쓰기의 정답보다 더 중요한 앎일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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