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하루 쉬지 않고 뇌를 가동한다.
숨 쉬고, 보고 듣고 말하고 먹는 모든 행동은 뇌가 작동해야 가능하다.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우리는 뇌를 쓸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졌다.
기계도 너무 자주, 많이 쓰면 고장 나기 마련이다.
뇌도 마찬가지로 과도하게 소모하면 결국 망가지지 않을까?
덜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는 ‘보는 것’과 ‘생각하는 것’을 인간의 의지로 조절하는 것이다.
둘 다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렵다.
예전의 나는 쓸데없는 생각이 많았다.
내일 뭘 입을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늙는 게 두렵고, 치아를 자주 닦으면 닳아 없어지는 건 아닌지…
지금 돌이켜보면 대부분 불안에서 비롯된 고민들이었다.
그 시절은 꽤 괴로웠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자기 전에도 여러 생각들로 쉽게 잠들지 못했다.
머릿속엔 온갖 생각이 둥둥 떠다녔다.
그래서 연습했다. 생각할 때만 생각하기.
길을 걸을 땐 걷는 데 집중하고, 일을 할 땐 일에만 몰입했다.
생각할 일이 있으면 시간을 따로 정해 놓고 그 시간에만 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서 많이 편안해졌다.
다만 멀티태스킹이 어려워진 단점은 생겼다.
하지만 세상은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포기하는 구조이기에 아쉬움은 없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비로소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이 많아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생각이 많으면 행동도 조심스러워지고, 때로는 기회를 놓치거나 오해를 사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논쟁을 싫어하고 상대를 편하게 해주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늘 긴장 속에 산다.
하고 싶은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하고, 자주 자신을 설득하거나 합리화한다.
오래된 기억을 어제 일처럼 생생히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들을 관찰하며 느낀 점은, 감정에 약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논쟁에서 마음이 상할까 두려워 피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해도 찝찝한 기분이 남는다.
과거의 일도 그 당시의 감정 그대로 기억하기에 쉽게 잊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자신이 받은 상처의 무게를 알기에, 타인에게는 더 조심스럽게 말한다.
하지만 감정을 오래 품은 사람들은 종종 그 감정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부정적인 면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의심이 많거나 비관적으로 흐르는 경우도 있다.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방어적 태도조차 때론 자신을 더 힘들게 한다.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듯한 모습이 보일 때도 있다.
나는 괴롭거나 민망한 일이 생기면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눈다.
혼잣말로 속을 풀고, 나를 합리화하고 흉도 본다.
그렇게 나를 다독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상처받은 기억에 매여 있거나, 속상한 일이 쉽게 잊히지 않거나,
오래된 후회에 갇혀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누군가에게 기대기보다 내가 내 편이 되어주길 바란다.
그때 그 감정을 위로하고, 그 순간엔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스스로 말해주자.
그렇게 상처로부터 조금씩 벗어나 편안함을 찾아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