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자신과 다르다는 걸 보면 못 견딘다.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욕하고, 깎아내리고, 틀렸다고 단정 짓는다.
성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얼굴부터 굳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자식이 그런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도,
자기 체면이 더 중요하다는 듯 화부터 낸다.
그럴 땐 정말 묻고 싶어진다.
그 아이를 낳은 건 부모 아닌가.
그럼 세상에서 제일 먼저 감싸야할 사람도, 부모여야 하는 거 아닌가.
이해가 안 가면 가만히라도 있지,
왜 그 다름을 못 견디고 상처부터 주는 걸까.
정체성은 스스로 선택하는 게 아니다.
어떻게 태어날지는 누구도 고를 수 없다.
그런데도 일부 사람들은 마치 선택 가능한 일처럼 말한다.
“왜 그렇게 살아?”, “왜 굳이 밝히는 거야?”
그 말 뒤에 깔린 건, ‘나랑 다르니까 틀렸다’는 판단이다.
그 판단엔 묘한 우월감이 섞여 있다.
남과 다른 삶을 산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더 정상이고 바른 것처럼 느끼려는 마음.
사실은 그게 더 위험하다.
이해하지 못하면 그냥 모른 채 두면 될 일이다.
왜 모른다는 이유로 상처를 주고, 죄인 취급을 하나.
가족 안에서는 그 상처가 더 깊어진다.
세상 모두가 등을 돌려도 부모만은 내 편일 거라 믿는 마음.
그 기대가 깨질 때, 아이는 두 번 무너진다.
어떤 부모는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며 자식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 든다.
하지만 자식을 그렇게 낳은 건 부모다.
부모라는 이유로 자식의 인생을 통제하려 들 거면,
처음부터 자식을 키울 자격도 없었어야 한다.
정작 가장 힘든 건, 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먼저 의심하고, 부정하고, 두려워한다.
남들은 학교, 취업, 결혼 같은 고민을 할 때
이들은 제일 먼저 “나는 누구인가”부터 고민해야 한다.
그 혼란이 몇 년, 어쩌면 평생 갈 수도 있다.
자기 존재를 들키지 않으려고 눈치를 보고,
말투 하나, 옷차림 하나에도 조심한다.
잘못한 게 없는데도 죄인처럼 살아야 한다.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숨거나 버텨야 하는 삶.
그걸 모른다면, 적어도 쉽게 욕하지는 말아야 한다.
욕하는 이유를 들어보면 대부분 억지에 가깝다.
그런 모습을 보면 참 못나 보인다.
사람은 누구나 다르다.
어떤 다름은 눈에 띄고, 어떤 다름은 감춰져 있을 뿐이다.
문제는 다름 그 자체가 아니라,
그걸 못 견디고 욕하면서 우월감을 느끼려 드는 태도다.
자신이 모른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
불편하다고 해서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
그런 사람일수록 타인을 욕하면서 스스로를 지킨다.
그건 이해심이 없는 게 아니라, 자기 안의 불안을 못 다스리는 거다.
우리는 누구도 누구를 재단할 자격이 없다.
이해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지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그 다름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
그게 최소한의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