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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김나영 Apr 27. 2021

15 <꽃에 대한 예찬>

인류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지구 상에 존재해온 꽃이 지금 까지도 우리의 삶 아주 가까운 곳에서 언제나 함께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새삼 감사의 마음이 우러납니다.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도 그렇지만 꽃은 참으로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의 종을 퍼트리고 스스로의 존재를 지켜내기 위해 많은 진화를 거치기도 해왔습니다.

한편으로는 아예 새로운 종을 만들어 내기도 할 만큼의 위대한 생명력이 그들의 DNA 속에 내재되어 있기에 나는 꽃에게서 어떤 에너지를 느끼며 늘 설레는 마음이 되고, 꽃을 대할 때마다 그들의 모습에 도취되어 흥분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온갖 꽃의, 화려하면서도 때로는 소박하게 피어나는 아름다움에 가벼운 탄성이 저절로 나올 때도 많습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고마운 것들이 무수히 많지만 예쁘고 아름다운 꽃들은 다른 고마운 자연과 함께 신이 우리에게 덤으로 주신 선물입니다. 꽃은 보면서도 즐겁지만 기뻐진 마음을 통해 영혼의 방을 들여다보며 예쁘게 장식하는 데 쓰라고 신이 부여해준 인테리어 소품과도 같은 것입니다.


꽃은 대부분이 매우 연약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강력한 무기로 삼아 오랜 세월을 美의 화신으로 군림해 왔습니다. 색맹이거나 마음이 황량해진 사람들, 혹은 꽃에 대한 특이한 알레르기 반응을 가진 사람을 제외하고는 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美에 대한 추구는 아기에게 조차 나타나는 본능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도 아름답고 예쁜 사람이 자기에게 웃어주면 그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니 아이처럼 맑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른이든 남자이든 모두가 꽃이 주는 기쁨을 부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심미안을 가지고 꽃을 잘 관찰하면 신비롭기 그지없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꽃은, <왜 그렇게 예쁜 것일까>.라는 어리석은 질문을 수없이 하면서도 <정말 너무나 예쁘다>.라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는 신비의 대상이었기에, 꽃을 보면서 요리조리 살피기도 하고, 처음 보는 순간에 느껴지는 어떤 이미지를 놓치지 않으려는 의지 덕분인지 나름대로 꽃에 대해 깨달은 것이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나를 흥분시켰던 이유가 꽃이 지닌 화려함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꽃의 모양과 색깔이 주는 이미지와 각각의 고운 자태에서 교훈을 발견하곤 합니다.


오상고절이라 했던가요. 털실로 만든 방울처럼, 수많은 꽃잎들이 하나하나의 정성으로 겸손하게 오롯이 피어나 노란 가을을 이루어주는 황국화는, 소담스러운 꽃 봉오리를 늠름하게 받치고 서있는 줄기가 보기만 해도 위풍당당합니다. 그 어느 잔치에 나가도 결코 뒷전에 머물지 않으며 주빈이 되고도 남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을 시들지도 않고 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꽃은 최선을 다해 노란빛을 발하며 진한 국화 향을 피워냅니다. 여느 꽃들처럼 요란하게 피어 곧 시들어 버리거나 하지 않습니다. 노랑 빛이 주는 명랑함과 굳건한 의지와 기상이 그 어느 꽃보다 당당해서 마치 고고한 선비를 보는 것만 같습니다. 나는 국화꽃으로부터 용기와 당당함을 배웁니다.


희고 우아한 옷을 입은 꽃의 여왕 백합화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습니다. 강렬한 백합의 향기는 온 세상에 진동하여 그 황홀함에 취하게 합니다. 그런데 흰 옷 속에서 파르르 떨고 있는 꽃술은 무척이나 붉습니다. 그녀의 정열이 느껴집니다. 백합 여왕의 진정한 바람이 고귀한 순결인지 은은함 속에 감추어진 사랑의 정열인지 혼동을 일으키게 합니다. 그녀는 홀로 순결한 여인이면서도 한여름의 태양처럼 뜨거운 사랑을 할 줄 아는 정열의 여인인 것만 같습니다. 어느새 나는 그녀를 닮아가고 있습니다. 나도 언제나 순결한 소녀이고 싶지만 은근한 정열의 여인이고 싶기도 하니까요. 백합화는 두 가지를 모두 지니고 있기에 홀로 꽃의 여왕으로 남는 가 봅니다.


수줍은 소녀처럼 도란도란 모여서 초가을 바람에 하늘거리는 길가의 코스모스는 멀리서 손짓하며 반기는 것처럼 희고 붉은 꽃잎을 살랑살랑 흔들어 댑니다. 코스모스는 욕심도 없어 보입니다. 예쁜 꽃잎에 비해 꽃잎을 떠받치고 있는 줄기들은 가녀리기 그지없습니다. 어쩐지 보호본능마저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비바람이라도 갑자기 불면 제 몸을 스스로 지탱하기도 어려울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결코 약하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함이 있습니다. 겸손한 자들은 겉보기에 유순하고 그 어떤 전투적 자세도 엿볼 수 없기에 어찌 보면 아무런 힘도 없어 보이지만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강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겸손은 진정 파워 있고, 여유 있고, 풍요로운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코스모스를 영어 사전에서 찾으면 우주(cosmos-질서와 조화 구현으로서의 우주)라는 뜻이 있습니다. 왜 그런 이름을 갖게 된 것일까 궁금할 때도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생각해보니 아마도 우주의 마음을 가장 많이 닮아서가 아니가 싶습니다. 코스모스는 우주처럼 욕심 없이 텅 빈 마음으로 자신을 내어주기만 하는 겸손한 마음을 닮았고, 가장 조화로운 이치가 그 꽃에 서려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더 이상 스스로 낮출 것도 없습니다. 열등감을 지닌 사람이 거만하게 행동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결코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나는 코스모스처럼 언제나 유연하게 흔들리며 모든 사람과 화합하고 싶습니다. 겸손의 미덕으로 다른 이들과 사랑을 나누고 싶습니다.


물기를 머금은 장미의 매력적인 아름다움은 겹겹이 말려 있는 잎 속에 어떤 비밀이라도 숨어있을 것처럼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는 베일에 감추듯 나만의 비밀을 간직하고 싶게 해 줍니다. 가끔 나도 모르게 스스로 도취되어 다른 사람에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드러냈다 싶어 질 때는 약간의 후회가 밀려오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장미 꽃봉오리를 떠올리며 진정 매력이 있으려면 장미꽃처럼 너무 속을 다 드러내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마음에 아로새기기도 했습니다.


여름 햇빛 아래에서도 당당한 해바라기를 보며 극기와 인내를 배웁니다.


아침을 열어주는 나팔꽃과 해 질 녘에 피어나는 분꽃을 통해 성실함과 유종의 미를 배웁니다.


들에 조용히 피어 발길이 머물게 하는 이름 모를 들꽃을 보며, 작은 것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배웁니다.


꽃은 시각과 후각을 자극하며 즐거움을 주기에 주는 이의 마음도 기쁘고 받는 이의 마음도 기쁘게 합니다. 볼수록 정교한 구조와 생장의 메커니즘을 지닌 꽃은 적절한 온도와 물과 공기 속에서 가장 잘 자라나고 좋은 빛깔로 피어납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아름답게 빛나게 되는 것은 우주의 신묘한 섭리와 좋은 기운 때문입니다.


봄이 되면 온갖 꽃들이 산과 들을 아름답게 수놓는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한순간에 동시에 피지는 않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어느 봄날에, 자신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며 피어나는 꽃들이 하도 예쁘고 감격스러워서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계속 관찰하다 보니 그들은 철저하게 서열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꽃은 자기가 피어야 할 때와 져야 할 때를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봄을 제일 먼저 개나리꽃이 알려주며 들판을 노랗게 밝혀주고 나면 진달래꽃이 수줍은 새색시처럼 조금은 음지쪽에서 조용히 앉아 피어납니다. 그러나 목련이 피는 시기가 되면 진달래 역시 조용히 자리를 내주고 물러갑니다. 목련이 지고 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철쭉이 피어나고 그러다가 또 벚꽃에게 자리를 내어 줍니다.

그리고는 장미, 튤립, 라일락, 등이 릴레이를 하듯 바턴을 이어갑니다. 그들은 세상의 영화를 오랫동안 누리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서로 시샘하지도 안습니다.

봄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시사철 모든 꽃들이 다 그렇게 순서를 지키며 피고, 지고, 합니다. 제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자신에게 허용된 시기에만 피어나고 조용히 다음 순서의 꽃들에게 세상의 시선을 받는 영광을 물려주고 떠나며 조화롭게 자연의 질서에 따릅니다.


우리가 나서야 할 때와 가만히 있어야 할 때를 잘 알고, 누려야 할 때와 물러나야 할 때를 잘 안다면 우리들의 세상도 참으로 아름다울 것입니다. 권력과 영화를 오래 누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꽃에게서 질서를 배운다면 그들에게서 더 이상 추하고 역겨운 작태는 보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어떻게든 계속 누리려고 온갖 부패를 일삼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는 그들에게 환멸을 느끼게 됩니다.

꽃이 잠시 동안 값지게 피어나고는 다시 다음 해를 기다리며 물러나기에 진정 아름다울 수 있듯이 다른 사람들에게 진정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기를 바란 다면 잠시 영웅처럼 살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놓아버릴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지금도 나는 국화꽃의 그윽한 향기를 맡으며 글을 씁니다. 왠지 국화처럼 맑은 차 한 잔이 마시고 싶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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