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ure Mind Makes Powerful Energy!! -
3 < 좋은 말이 지닌 위력 >
아주 오래전 읽었던, 일본의 저자 에모토 마사루 박사의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이 기억난다. 출판 당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던 책으로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었다. 저자는, 물이 얼었다가 녹으면서 아주 짧은 순간에 생겨나는 결정체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아름다운 결정체의 모습만을 촬영했는데 눈의 결정체처럼 그 역시 어느 한 개도 같은 모양의 결정체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호기심이 발동하였고 마침내 특별한 실험을 하게 되었다. 물의 결정을 관찰할 수 있는 시험관에 좋은 의미가 담겨 있는 <사랑>이나 <감사>라는 말을 적은 라벨과, <미움> <증오> <죽어버려!>라는 말이 적힌 라벨을 각각 붙인 뒤에 시험관에 붙은 라벨의 글자 그대로 들려주었다. 그런 다음 촬영한 결정체의 사진에서 놀랍고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예상대로 좋은 말을 들었던 결정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그런데 나쁜 말이 적힌 시험관의 결정체는 아예 모양조차 만들어지지 않거나 형체가 일그러져 있었고 심지어, <전쟁>이라는 파괴적 의미가 담긴 라벨의 시험관 물은 마치 영화에서 본 것 같은 흉측한 악마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평소에 진동의 원리나 파동, 氣, 에너지의 전달 등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당연히 그러한 사실이 흥미롭고 경이롭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우리가 쏟아내는 무수한 말들이 얼마나 중요하며 그것이 어떤 파장을 주는가라는 것이었다. 나 역시 우리가 누군가에게 말을 할 때 말의 뉘앙스, 톤(어조), 크기 등이 매우 중요하고 그런 만큼 항상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 중의 하나였기에 그러한 현상에 신빙성이 있다고 믿었다. 이 책이 말하는 것을 온전히 믿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생활 속에서 우리가 무심코 뱉어내는 말들로 인해 사랑이 커지게 할 수도, 혹은 미움과 증오를 키우며 서로의 관계를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소통에 대해 집착하면서도 그것을 망치는 것이 정작 잘못된 말투와 마음을 다치게 하는 말들 때문인지 모르는 이들이 아직도 상당히 많은 것 같다.
말이라는 것이 단지 우리의 감정을 기쁘게 하거나 화가 나게 한다는 차원을 넘어, 그것이 좋은 말이건 나쁜 말이건 간에. 생명을 지닌 모든 사물의 에너지 작용을 완전히 변화시켜 버릴 수 있을 만큼 강한 위력이 있다고 오래전 부터 나는 굳게 믿어 왔다.
나는 화초에 물을 주며 휴식을 취할 때마다 화초들에게 나의 마음을 전하곤 한다. 그들이 나의 말을 당연히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여기며 보다 큰 목소리로 말이다.
“잘 자라 주어서 고마워, 나에게 기쁨을 주는 너희들을 사랑해.......”
그렇게 말하고 얼마 후에 보면, 신기하게도 화초들이 저마다 반짝반짝 윤기를 자랑하며 나에게 더 큰 기쁨을 주곤 한다. 단지 ‘오비이락(烏飛梨落)’인 걸까. 아니면 애초에 당연히 잘 자랄 거였는데 내가 그저 한 마디 더 거든 것일 뿐일까. 그저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일 뿐 실제로는 전혀 서로 관련이 없는 것일까.
어려서부터 많은 칭찬을 듣고 자란 사람은 성격도 안정감 있게 형성이 되는 것 같다. 자주 들어왔던 칭찬과 격려대로, 훗날, 그 구체적 칭찬에 부합하는 인물이 될 가능성이 클 것 같기도 하다. 늘 듣던 대로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 자신도 내가 가르쳤던 수많은 아이들에게 칭찬과 사랑이 담긴 말들을 전달할수록 아이들의 능력과 감성이 더욱 발전했던 경험을 수없이 했다. 인격적으로 보다 덜 성숙했고 그저 잘 가르치겠다는 마음만이 너무 앞서 있던 시절에는, 나의 열의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격한 감정과 투박한 어조로 다그치기도 했다. 아이에게 자칫 상처가 될 수도 있는 말을 내뱉고는 곧 후회하기를 반복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혼이 나던 아이들은 단순히 기분이나 감정이 상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아이들은 대적할 수 없는 어떤 안 좋은 기운에 휩싸이는 것 같았고 마치 두뇌의 기능이 마비된 것처럼 먹먹해했다. 그래서 오히려 아주 쉬운 부분에서조차 답답함이 느껴질 정도로 능력 저하를 보였었다.
권위주의에 오랜 세월 젖어있다고 여겨지던 어떤 지인이 있었다. 그는 신분이나 직업의 특성상 자신이 정신적으로 타인을 잘 이끌어 주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많은 이들에게 따뜻하고 좋은 말로서 격려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불완전하거나 미흡한 사람들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노력했음에도 결과가 자신의 맘에 들지 않게 되면 무턱대고 우선 질책과 책망부터 해서 무안을 주고 기어이 사기를 꺾어 놓곤 했다. 그는 언제나 칭찬에는 매우 인색했는데 이유 인즉은, 잘했을 때 너무 기가 살면 안 되기 때문에 일부러 그런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상당히 터무니없게 느껴지고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였다.
사실 나의 생각은 그와 매우 달랐다. 기가 살면 좀 어떻겠는가. 즐겁고 기쁜 마음이 되어서 더욱 열심히 하고 싶도록 만들면 더 좋은 게 아닌가. 과정을 놓고 보거나 결과를 놓고 보더라도 격려와 칭찬이 훨씬 좋을 터인데 말이다. 칭찬과 격려가 일에 대한 동기를 더욱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을 그 사람은 깨닫지 못했던 것일까. 그런 그가 오히려 참으로 딱하게 여겨졌다. 더욱이 그 사람은 이른바 올바른 삶을 이끌어가는 지도자적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이기에 말이다.
그런 그를 보며 나는 어떤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늘 그렇게 부주의하게, 혹은 아무 생각도 없이, 그리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말로써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그는 정작 자신이 늘 외롭다고 말하곤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기의 마음을 몰라주니 많이 속상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스스로 만든 인간관계의 부작용으로 어쩌면 자명한 결과라고 여겨졌다.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에서처럼, 담을 높이 쌓아 아이들이 못 들어오게 하고는 스스로 외롭다고 슬퍼하던 거인과도 같았다. 그러한 여파였을까. 그가 가진 더욱 큰 문제는 당시에 늘 어딘가 아프고 건강이 안 좋았다는 사실이다. 표정도 항상 굳어 있고 안색도 어둡고 칙칙했다. 살상 무기와도 같던 그의 말과 행동이 오히려 더 큰 무기가 되어 자신에게 피드백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말은 일종의 소리이다. 소리의 전달 원리에 따라 처음엔 누군가의 입에서 나와, 공기 중에서 진동을 일으키게 되어있다. 그 소리의 입자는 거리가 멀어 저절로 소멸되기도 하고 강제로 소멸시키지 않는 한 반드시 누군가의 귀로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에게 독설이나 욕을 퍼붓는 순간, 그 소리를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신도 역시 듣게 된다. 그것도 누구보다 가장 먼저 듣는다. 자신의 입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귀가 바로 자신의 귀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실을 우리는 망각할 때가 많은 것 같다.
나도 미운 사람이 있을 때가 있다. 그에게 원망 섞인 모진 말을 서슴없이 던지다가, 문득 가만히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후련해지고 싶어서 분풀이하듯 심하게 말했건만, 오히려 마음이 왠지 찜찜하고 편하질 않았다. 그 이유가 대체 무엇이었을까.
상대방에게 비수(匕首) 같은 독설을 쏟아내고 나서 무심코 거울을 본 적이 있는가. 거울 속에서 오히려 그 독화살을 맞고 실신 지경에 놓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독이 묻은 화살이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되돌아와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곤, 무참하게 상처가 나서 누더기처럼 너덜너덜해진 자신의 모습에 절망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자신을 원망하게 함으로써 다시 이차적으로 스스로에게 분노의 칼을 들이대는 격이니 몸마저 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 그는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극도의 증오심과 좋지 않은 기운을 강하게 발산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래저래 나쁜 말을 한 사람은 들은 사람 이상으로 몸과 마음이 상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것이 상습적이 되어 버린 사람이라면 당연히 건강하지 못하고, 특별한 병명도 없이 늘 아픈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좋게 그리고 예쁘게 말하는 사람은 밝고 건강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과학적 근거를 대지 않더라도, 기분이 우리의 건강에 영향이 큰 것은 분명하니 말이다.
나쁜 말은 우리의 몸만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아름답게 가꾸던 마음의 정원 즉 영혼에도 커다란 상처를 내고 만다. 깨끗이 씻은 야채를 다시 구정물에 적신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 어쩌면 우리의 영혼이 손상되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바다 같은 마음으로 가급적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도록 여러 장치를 동원한다 해도,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도인이 아닌 이상 우리의 영혼이 다치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계속 영혼의 상처가 쌓인다면, 마침내 온갖 부정적 생각에 휩싸이거나 우울증 같은 증상으로 확대될지도 모른다.
모이기만 하면 다른 사람 흉을 보는 사람이 있었다. 분위기에 휩싸여 나도 모르게 동조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유난히 흉보기를 좋아하고 그것이 습관처럼 굳어버린 그 사람을, 어느 날 문득 바라보니, 자신이 그토록 흉을 보던 사람과 어느새 점점 닮아가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의 뇌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해 나쁘게 말할 때, 그 나쁜 말을 먼저 들은 자신이 그것을 무의식의 창고에 저장해버리게 되는 것 같다. 그것이 서서히 자기 암시적 작용을 하게 되고 결국 우리의 모습 또한 그대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흉보면서 닮는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이 일리가 있다. 아마도 그러한 원리가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참 동안 다른 사람 흉을 보고 나면 왠지 마음이 공허해지는 것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왜 그런 걸까. 우리의 의식이 그야말로 신이 나게 흉을 보거나 욕설이 섞인 비방을 하는 동안 그 소리를 듣고 있어야 했던 우리의 영혼은 오히려 내내 불편했던 건 아닐까. 그래서 돌아서고 나면 마치 누군가로부터 책망이라도 들은 것처럼 깊은 후회감이 밀려오게 되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리의 영혼이 양심이라는 경로를 통해서 자신의 불편함을 전해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반대로, 사랑의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기꺼이 칭찬하고 격려를 해주면 어떨까. 역시 마찬가지로, 칭찬을 할 때에도 소리의 전달 원리가 작용하며 자신이 먼저 그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칭찬을 들은 사람 못지않게 기뻐지게 될 것이다. 그것도 역시 마찬가지로 칭찬을 들은 사람의 기쁜 감정이 전해져서 그런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상대방을 어여삐 여기며 좋은 점을 칭찬해주고, 상대방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자신에게도 참으로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라는 우리의 옛 속담처럼 서로에게 좋은 것만은 분명하다.
칭찬에는 단순한 소리의 전달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마음과 좋은 기운이 그 안에 내포되어 전달되기에 어떤 사람들에게는 칭찬이 마치 생명초(生命草)와도 같다. 우울증과 무력감으로 다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작은 칭찬과 격려의 말조차 그를 소생시킬 수 있다. 그런 칭찬은 아부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아부의 말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저 듣기 좋은 말을 나열하는 것일 뿐이며, 진심의 마음이 담겨있지 않기에 칭찬만큼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 진동과 파장이 미약해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다. 칭찬에는 따뜻한 마음, 좋은 어조, 예쁜 말의 표현이 깃들어 있어야 제대로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그 마저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요즘처럼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교류하는 SNS 소통에서는 감사하다며 혹은 멋지다며 하트 하나만 보내주어도 상대방을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세상이니까 말이다.
기왕에 말로서 소통을 하고 싶다면, 밝은 음성으로 부드럽게 말해야 상대방의 마음을 녹이고 훈훈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과 배려와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으면 그 음성의 톤과 억양이 보다 곱고 아름다울 가능성이 크다. 원래 성격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며 퉁명스럽게 타박하는 어조로 말을 하면, 그 목소리와 말투 자체가 주는 거친 파장이 듣는 당사자는 물론이고, 곁에서 얼결에 그 소리를 듣게 되는 사람들까지도 함께 불쾌하게 만든다. 그리고는 본인마저 병들게 만든다. 게다가 속마음은 안 그렇다며 둘러댄다고 해도 많은 관계 속에서 몰상식한 모습이 드러나게 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거친 파장이 우리의 영혼까지도 갉아먹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영혼이 황폐해지는데도 아주 무심하게 방치하는 행위이다. 영혼이 진정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타고난 목소리의 음색과는 상관없이 좋은 마음을 담아 말하는 습관을 지녀야 한다. 듣기 좋은 톤으로 다정다감하게 말하는 연습을 틈틈이 할 필요가 있다. 좋은 의미가 담긴 말과 좋은 마음이 담긴 말, 그리고 좋은 톤과 억양까지 갖춘 말은 싱그러운 꽃향기처럼 공기 속에서 진동하며, 마침내 사람들의 마음에 사랑의 씨앗이 되어 살포시 자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씨앗들이 언젠가는 그들의 마음 밭에서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