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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김나영 Apr 26. 2021

4 < 바람이 머물다 가는 곳 >

올여름에도 여지없이 태풍이 불어 곳곳에 엄청난 규모의 피해를 입혔다. 당장의 먹을 것, 입을 것, 침구류 등의 부족으로 고통받고 모든 것을 잃은 채 상심에 젖어 있는 수재민의 모습을 지켜보며 마음이 아파오지만,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나의 약함에도 탄식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하늘이 내리는 재해라고는 하지만 사람들의 노력으로 그나마 최소한으로 피해를 줄일 수는 없는 걸까 생각하던 중, 추운 겨울 동짓날의 따끈한 팥죽과도 같은 아주 훈훈한 뉴스를 접했다. 뉴스의 내용은, 우리나라보다 앞서 있었던 일본의 태풍 피해를 보고 기지를 발휘한 어느 섬의 공무원 이야기였다. 그는 마을 사람들의 ‘별나게 군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150척이나 되는 배를 모두 육지의 안전한 곳으로 정박시키고 위험한 곳을 미리 보수하는 등 여러모로 안전을 꾀했다. 오랫동안 아무런 피해가 없던 곳이어서 모두가 방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불과 두어 시간 만에, 정말로 태풍과 함께 해일이 그 마을을 덮쳤다. 다행히 마을은 조금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단 한 사람의 예견과 노력으로 광포한 태풍의 분노를 비껴갈 수 있었다는 의로운 기사를 다룬 뉴스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 뉴스를 듣던 순간, 생뚱맞게도 나는 이러한 상황들 속에 우리의 삶을 대입시켰다. 우리의 인생이 어떤 운명적 힘에 의해 짜여인 각본대로 그대로 갈 수밖에 없다 해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자신의 노력으로, 혹은 어떤 방어 장치들의 도움으로 모두의 불행을 최소화하고 행복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거라는 다소 상투적 결론을 도출해 냈다.


태풍이나 모진 비바람이 아니라, 봄날에 꽃내음이 묻어있는 따사로운 바람이나 청아한 가을날의 상큼한 바람이 코끝을 스치면 나는 짜릿한 전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마음까지 시원하고 쾌적하게 해주는 고마운 바람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삶이라는 배를 타고 항해를 하는 데 있어서는 항상 그렇게 순풍만 부는 것이 아니라, 황량한 겨울의 매서운 바람이 가슴을 휑하게 훑고 지나가는 것처럼 힘든 고비의 순간이 다가올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찬바람이 불어도 나는 그 바람을 기꺼이 맞이합니다. 그 바람이 나를 더욱 강하게 해 줄 거라고 믿으며 차라리 코로 심호흡을 합니다. 그러나 도저히 견디기 힘들 만큼 거센 바람이 불면 잠시 바람을 피해 있을 곳을 찾습니다. 그곳은 지나는 길목에 있는 작은 카페일 수도 있고 허기를 달랠 수 있는 분식집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늘 나에게 편안함을 주는 친구의 집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이 나에게 있다는 것에, 커다란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나는 무엇인가로 마음 안에 분노를 가득 지니게 된 사람을 바람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어느 때에는 거친 바람이 내게서 잠시 머물며 그 세력이 약해지고 따뜻해져서 순풍으로 바뀌기를 꿈꾸기도 합니다. 내가 감히 그 큰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 때로는 무모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바람은 자그마한 온기에도 녹아드는, 실제로는 유순한 성질을 지닌 것처럼 내 안에서 잦아들 때가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바람이 지치고 힘이 들 때 머물다 가고프게 하는 작은 바위이고 싶습니다. 그 바람이 작은 바위를 할퀴고 상처를 낸다 해도 바위는 바람을 통해 더욱 강해져서 어지간한 바람에는 끄떡도 안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바람이 되어도 머물고 싶은 바위가 어느 곳에 있어 주었으면 합니다. 말없이 그 자리에 있어 주다가 온 몸으로 나를 맞이 해주는 그런 바위를 만나고 싶습니다.

나의 바람의 세력은 약해질지라도 너무나 작아져서 완전히 사그라들지는 않도록 살펴주며, 다시 날아갈 힘을 불어넣어준다면, 나의 生은 평생토록 그런 바위가 있음에 감사를 느끼며 살아갈 것입니다, 새로운 생명이 따뜻하게 담겨 있는 바람으로 거듭나게 함으로써 삶의 환희를 느끼게 해주는 그런 바위가 오늘도 나는 그립습니다.


우리는 모두 바람이 머물다 가는 작은 바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어떤 풍파 속에서도 의연하게 버티며 바람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는 특별한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바람막이가 되어줄 수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혼자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독불장군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를 감싸주는 마음이야말로 하늘이 기뻐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이 바라는 진짜 사랑입니다.


그 어떤 바람도 머물다 갈 수 있는 바위가 되려면 그만큼 위대한 바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크기만 할 것이 아니라 단단하고 강하며 지탱하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자신의 바위 밑동이 보다 단단한 토양에 기반을 두어야 할 것이며 든든하게 뿌리를 박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과 마음이 우선 건강하도록 돌보며 강인하고 올바른 정서와 정신을 지니도록 해야 합니다. 위와 같은 것들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인생에 대한 진정한 카운슬러가 될 수 없습니다. 모두가 전문적인 상담가가 되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살면서 내 가족, 내 이웃에게 힘이 되어주고 그들을 올바른 길로 향하도록 도와야 할 때가 있기에 어느 정도의 카운슬러的인 소양을 지니고 있을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슬픔과 분노로 나에게 다가온 사람에게 수많은 말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도록 나의 어깨를 내어주며 바위처럼 묵묵히 있어주기만 해도 좋을 것입니다. 따스한 눈길로 조용히 바라보기만 해 주어도 그는 충분히 휴식과 위안을 얻어 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많은 말들을 통해 위로하는 일은 자칫 공허한 메아리처럼 허공을 떠돌 뿐, 지치고 기운이 쇠잔한 그를 진정 편안히 쉬게 할 수 없습니다. 어설픈 설득과 형식적인 위로는 그를 더욱 거센 바람이 되게 하거나 황폐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절망의 나락에서 구해내기도 어렵습니다. 그렇게 되느니, 차라리 묵묵히 자리하고 앉은 하나의 바위가 되어 바람이 조용히 머물다 갈 수 있게 해 주고 그에게 새로운 기운이 생겨나도록 마음으로 빌어주는 것이 더 좋습니다.


태풍이 불어도 미리 예감하고, 누가 뭐 래든 묵묵히 방비(防備)를 하던 그 공무원처럼, 소신을 갖고 삶의 바다에 부는 태풍의 피해를 막아 사람들을 위험으로부터 구해내겠다는 굳은 의지를 우리의 마음에 새기고, 환란을 예방하고 시련 속에서 서로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굳건한 바위가 되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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