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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김나영 Apr 26. 2021

5 < 자연과의 속삭임 >

바람결에 나뭇가지와 잎이 파르르 떨고 있을 때 그것을 바라보며 가슴이 함께 떨려 본 적이 있습니까?

빨갛고 노랗고 앙증맞은 꽃들이 비가 온 뒤 더욱 선명하게 빛을 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울고 싶도록 행복을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와 새소리 그리고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여겨져 마음속에 어떤 알 수 없는 선율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막연하게라도 느껴보셨나요?

만일 그래 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정말로 아름다운 영혼을 지녔군요. 당신은 그렇게 자연과 대화를 나누고 서로 감흥하며 서로의 에너지를 교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연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우리 사람들 간의 대화처럼 그 어떤 미사여구(美辭麗句)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의 존재를 느끼며 같은 파동으로 전율하는 것, 그것이 자연과의 진정한 대화법인 것입니다.


우리가 영혼의 안테나를 세우고 미세한 감각의 문을 열어 하루를 바라보면 그 하루 동안에도 자연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며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하여 줍니다.


새로운 희망을 꿈꾸며 동이 터오는 새벽을 맞이할 때, 계절과는 상관없이 항상 신선한 기운이 감돌며 알 수 없는 벅찬 감동이 밀려옵니다. 온 세상을 어머니와 같은 포근함으로 감싸 안아 주는 듯합니다. 가벼운 긴장감으로 창문을 열면 기다렸다는 듯이 맑은 공기가 스며들어 하루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동력을 불어넣어줍니다. 어머니의 품에서 단잠을 자고 난 아이가 기지개를 켜며 잠에서 깨듯 우리는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아무런 걱정도 하고 싶지 않아 집니다.


아침 해가 솟아오를 때의 장관은 일출봉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어디에서나 똑같은 해가 밝은 빛과 따사로운 온기를 띠고 똑같은 사랑으로 찬란하게 두루 비추어줍니다. 해, 즉 태양은 활기 찬 에너지를 줌으로써 온갖 크고 작은 소망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힘이 되어주는 중요한 에너지원입니다. 같은 태양의 기운을 받고 사는 사람과 동물과 식물들, 그리고 생명이 없어 보이는 물과 흙조차도 각자가 지닌 에너지를 교류하며 서로 상생하는 것입니다. 한 여름의 뜨거운 태양도, 추운 겨울에 의지가 되는 따사로운 햇살도 우리에겐 온몸으로 끌어안고픈 사랑의 대상입니다.


가끔씩 구름 사이로 태양이 비치어 여러 가닥의 광선 줄기를 뻗어 내릴 때엔 신의 은총이 내게 내려지는 것 같은 황홀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나의 마음속에서는 무슨 일이든 다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와 희망이 솟아나기도 합니다.


바람은 또 어떤가요. 봄날 꽃향기를 가득 실은 훈풍이 불면 우리의 마음도 깃털처럼 느껴지는 존재의 가벼움 속에서 무한정 어디론가 함께 날고 싶지 않던가요. 청량한 가을바람을, 두 눈을 감고 깊게 들이마시면 아주 맛이 있게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의 코를 기습해오는 그 시선 한 바람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어떤 부피감으로 느껴져서 마치 물속에서 호흡을 하는 것과 같은 가벼운 질식감을 견뎌야 했던 적은 없나요.


몸살이 나서 아프다고 집안에 누워 지낼 때보다도, 끙끙 앓으면서도 기어이 밖으로 나다니다 보면 오히려 빨리 회복이 될 때가 많은 것은, 자연의 곳곳에 숨어있는 우주의 생명력을 접하기 때문입니다.


길가에 피어있는 무수히 많은 종류의 꽃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는 美의 각축전을 벌이고 모두가 내게 미소를 짓고 손짓하는 것으로 보일 때도 있고, 꽃들이 자기들만의 언어로 끊임없이 무어라 속삭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모두가 나의 상상 속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나의 외롭던 영혼은 그들에게서 분명 많은 위로를 받습니다.

우리가 꽃을 선물로 받았을 때 흔히들 기뻐하는 것은 그것이 지닌 특별한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꽃이 지니고 있는 밝은 기운이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밝은 기운과 감흥을 일으키기 때문이기도 한 것입니다.


나의 집에는 고속도로와 맞닿아 있는 커다란 베란다의 창문과, 반대쪽으로는 시골의 전원 풍경이 그대로 보이는 자그마한 주방의 창문이 있어서,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과 한적한 시골의 삶을 동시에 느끼며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언제나 주방 쪽에 있는 작은 창문입니다. 그곳에서는, 저 멀리, 안정감이 있어 보이는 크기의 산과 그 산에 걸터앉은 온갖 모양의 구름을 볼 수 있습니다. 푸른 초원과, 계절마다 다르게 옷을 갈아입는 논이 있습니다. 봄에는 아무것도 심지 않아 흙냄새가 그대로 묻어나는 건강한 질감의 토양이 밤색의 속살을 드러내며 풍요로운 대지의 유혹을 전해옵니다. 그런 대지에 또 다른 생명이 심어지면 여름에는 푸른 물결이 춤을 추고 가을이 되면 황금빛 물결이 넘실댑니다. 겨울이 오면 산과 들과 논이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서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뿌듯해집니다.

식탁이 놓여있는 쪽의 벽에도 제법 값이 나가는 꽤 이름 있는 화가의 풍경화가 걸려 있습니다. 그 그림은 국제공항에 있는 어느 화랑에서 전시하고 있었는데 자연이 주는 한가로운 풍경이 묘사되어 있어 나도 모르게 무엇인가에 홀린 듯 충동구매를 하고야 말았던 그림입니다. 지금도 그 그림은 저에게 평화로운 안식을 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창문을 통해 볼 수 있는 한 폭의 그림은 돈을 주고 산 그림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아름답고 생명력이 넘쳐서 나의 마음을 압도적으로 사로잡고 맙니다. 그 살아 있는 그림 속에서 나는, 눈으로 우선 기쁨을 만끽하고 그다음에는 심호흡을 하면서 바람결에 실려 오는 자연의 속삭임으로부터 은근하고도 강렬한 기운과 에너지를 전해 받습니다. 역동적인 창밖의 풍경이 에너지 충전기의 역할을 톡톡히 해 내고 있는 것이지요.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또 하나의 큰 선물인 과일을 보면서도 감격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과일이 풍성하게 열려 있는 과수원 길을 지나다 보면 말로는 다 형용할 수 없는 향긋한 냄새에 그만 발걸음이 멈춰지고 한 동안 그대로 서있을 때가 많습니다. 과일 가게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탐스러운 과일들은 보기에도 풍성하지만 각각의 과일이 저마다 다르게 그들만의 향기를 매혹적으로 뿜어내고 있어서 나는 먹는 것 이상의 충만감을 느낍니다.


꽃과 과일이 향기를 내듯 나에게서도 나만의 그윽한 향기가 있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습니다. 아름답고 맑은 생각을 하면서 살면 정말로 좋은 향기가 배어 나올 것만 같습니다. 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서는 어쩐지 꽃향기가 날 것 같습니다. 자연을, 나무와 풀을 사랑하는 사람에게서는 청초한 느낌의 풀냄새가 날 것만 같습니다. 바람과 바다와 흙을 사랑하는 사람에게서는 무채색과도 같은, 혹은 수묵화가 주는 느낌과 같은 향기가 그윽하게 우러나올 것만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향기를 만들고 그 향기로 고즈넉한 매력을 가꾸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너무 진하지도 않지만 다른 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강하게 전해 줄 수 있는 그런 향기를 지니게 되기를 소망해야 할 것입니다. 빛과 소리 다음으로 다른 이에게 강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향기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주의 법칙과 어우러지는 조화로운 것은 어느 것이나 모두 좋은 향기가 납니다. 자연은 우주의 질서를 아주 잘 따르는 고도의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좋은 냄새를 낼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그 질서를 인위적으로 바꾸어 놓으면 흐르는 강을 막아 썩게 하는 격이 되어 결국엔 나쁜 냄새를 풍기게 됩니다.


우리 인간들도 자연의 한 모습입니다. 우리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면서 우주의 큰 기운으로 조화롭게 몸과 마음을 다스린다면 저절로 좋은 향기가 날 것입니다. 몸의 어디가 조금만 나빠도 그 사람에게서는 좋지 않은 냄새가 납니다. 몸의 질서가 깨져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일그러져 있거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 사람을 보게 되면 우리는 마치 악취를 맡은 것처럼 얼굴을 찡그리게 됩니다. 코로 직접 맡을 수 없다 해도 영적인 향기는 우리의 영혼이 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의 속삭임이 우리의 귓가를 어루만지며 다가올 때, 기꺼이 그 맑고 아름답고 향기가 우러나는 자연 속에서 마음껏 헤엄치고 뛰어다니며 놀아야 하겠습니다. 미세한 오감의 감각 세포를 일깨워 눈과 귀로, 코와 입과 몸으로 자연의 신비와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또한 자연의 자정 작용에 따라 우리도 더불어 정화되도록 자연에 나를 온전히 맡기고 자연과 하나 되어 같은 싸이클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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