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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김나영 Apr 26. 2021

6 < 진흙 속에 피어난 꽃 >

행복을 가꾸며 살아갈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해서 그에게 언제나 좋은 일만 있는 것일까요? 나름대로 인생의 깊이와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라 해도 원래가 진흙 밭과도 같은 삶 속에 발을 디디고 살 수밖에 없다면 그 역시도 어쩔 수 없이 괴로운 현실과 수시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만이 가장 불행한 현실 속에서 헤매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나에게도 힘겨운 순간이 참으로 많았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슬픔이나 괴로움이 나의 마음을 빼앗을 때는 나 자신이 다른 이들과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되고, 상대적 불행감에 휩싸여 그것 때문에 더욱 힘이 들곤 했습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행복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중년의 부인들이 수다스럽게 다른 사람들에 관한 얘기를 나누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들을 통해 얻어낸 사실이 하나 있었습니다. 집집마다 하나같이 완전한 행복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전혀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이는 가정에서도, 막상 뚜껑을 열고 보면 누구는 자식이 속을 썩여서, 누구는 시부모가 치매라서, 또 누구는 남편이 바람둥이라서, 아니면 자신이 많이 아파서, 또 아니면 경제적인 어려움이 커서 등등, 공평하게도 모두가 한 두 가지씩은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이 강하지 못해서 작은 고통도 헤쳐 나가기 어려운 버거운 짐이 되어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지만, 어떤 사람은 누가 봐도 도저히 참아내기 어려울 것만 같은 고통을 짊어지고 있으면서도 이력이 난 듯 잘도 견뎌내고 삽니다.




항상 웃고 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항상 에너지가 넘치는 것 같았습니다. 그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시샘이라도 할 만큼 그녀는 행복해 보였습니다. 눈도 빛이 났고 얼굴에서도 빛이 났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녀는 불치의 만성 장애가 있었고 병든 노모와 함께 생계를 이어나가야 하는,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지 않은 불우한 처지의 사람이었습니다.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강하게 하고 빛이 나게 한 것일까. 그토록 예쁜 미소는 어떻게 지을 수 있었던 것일까. 나는 그녀와 나의 삶을 비교해보며 어려움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그녀에게 배울게 많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신(神)은 우리가 견뎌낼 만큼의 고통만을 준다고 누군가 말을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밝아지고 강해지면 우리를 힘겹게 만드는 기운에 밀리지 않고 마치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듯 고통을 빛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려면 우선 마음이 밝아져야 합니다. 빛이 있는 곳에는 어둠이 존재할 수 없다는 이치에 기인한 것입니다. 


세상의 고통을 아직 모르는 어린아이일수록 마음이 무척 밝습니다. 어린아이 같은 밝음을 오래 간직하는 사람일수록 고통이 주는 어둠이 마음에 크게 자리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놀다가 다쳐도 잠시 울다가는 금방 모두 잊고 하하거리는 것처럼, 천진한 마음이 있는 사람은 고통의 극심한 순간만 일단 지나고 나면 어린아이가 다친 상처에 무심해지듯, 자신에게서 사라지지 않고 늘 붙어 다니는 고통을 강 건너 불구경하는 마음으로 그저 바라보기만 합니다. 어쩌면 진정으로 강하다는 것의 의미는 고통과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고통에 대해 무감각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사람의 사고력이 성장하는 속도와 똑같이, 고통의 무게도 함께 자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많이 알면 알수록 고통의 색깔은 단순한 것으로부터 복잡한 것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의식이 잘 성장한 사람들은 고통을 승화시키거나 아예 초월해 버리기도 합니다. 어느 날 문득, 과거와 현재의 나를 돌아보면, 크고 작은 고통들이 있었기에 더욱 강해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필이면 나의 뿌리가 왜 진흙 속에서 묻혀 있게 된 것일까.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라도 그곳으로부터 옮겨 심어졌으면 하고 현실을 원망할 때도 있었습니다. 




언젠가 수덕사라는 절을 관광 삼아 둘러보다가 연못의 진흙 속에 핀 연꽃이 어찌나 소담스럽던지 감탄을 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진흙에서 진정 아름답게 꽃을 피울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나의 삶의 화두로 자리할 무렵, 어느 깨달으신 분이 쓴 책에서 아주 설득력 있는 근거들을 통해 진흙 속에서도 과연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그 깨달음에서 더 나아가, 내가 진흙에서는 절대로 살 수 없는 생태적 속성을 가졌을지라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마침내 고결한 꽃을 피워내는 기적을 만들고 싶은 더 큰 희망을 마음속에 다짐했습니다.


힘이 들 때에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봅니다. 그리고는 심호흡을 합니다. 그러면 우주의 大생명력이 느껴집니다. 고통으로 힘겨워 나의 기력이 쇠잔함을 느낄 때마다 눈을 감고 하늘의 큰 기운을 모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서 활짝 웃음을 지으면 정말로 보기 좋은 웃음꽃이 진흙 밭에서 피어나는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사막처럼 메마른 황무지에서 든든히 버티다가 마침내 피워낸 선인장의 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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